100원이라도 싼 곳 찾아 하루 종일 종종걸음
  • 일본 오사카·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4.3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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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 속옷 전문 보따리상 120시간 동행 취재

3월18일 오후 일본으로 향하는 보따리상 10명이 부산 국제여객터미널에 모였다. 기자와 동행하기로 한 이혜경씨(여·39)도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부산 해운대에 매장을 두고 일본 유명 브랜드의 여성 속옷을 판다. 직접 입어본 후 구매를 결정하는 여성의 기호에 맞추려면 온라인 쇼핑몰보다 오프라인 매장이 낫다고 생각했다. 인근이 아파트촌이어서 30~40대 젊은 주부들이 주요 고객이다. 오후 3시 여객선에 오른 이씨는 동료 보따리상들과 이야기보따리부터 풀었다. 같은 물건이라도 싸게 살 수 있는 정보를 교환했고, 요즘의 소비 흐름도 수첩에 적었다.

오사카까지는 배로 18시간. 5박6일 일정이지만 왕복하는 배에서 이틀을 소비한다. 또 항구에서 숙소까지 오가는 시간을 제하면 이씨가 실제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시간은 3일 정도다. 여객선은 다음 날 오전 오사카 부두에 닻을 내렸다. 이씨는 숙소로 향했다. 전철로 40여 분 걸려 도착한 숙소는 한 방에 4명이 사용하는 민박집이다. “항공편보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교통비와 화물 운송비를 줄이려면 배편이 낫다. 민박집은 하루 2만~5만원으로 호텔보다 훨씬 저렴하다.”

ⓒ 시사저널 노진섭
ⓒ 시사저널 노진섭
첫날은 가격 비교, 둘째 날부터 구매

숙소에 짐을 부리자마자 이씨는 잰걸음을 놓았다. 그런데 도매상으로 바로 가지 않고 인근 쇼핑가부터 들렀다. 서울 명동거리처럼 소매 점포가 2~3km 늘어선 곳에 그릇가게, 의류매장, 음식점 등이 뒤엉켜 있었다. “속옷과 무관한 점포를 훑어보는 이유는 소비 트렌드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후 3시를 넘겨 점심을 때운 후 오사카 최대 도매상(판비 테라우치)으로 갔다. 미리 사업자등록증을 제출하고 상인임을 입증해야 등록카드를 받아 출입할 수 있다. 이 매장에 있는 상품에는 소매가와 도매가가 적혀 있다. 상인은 일반 소매점에서 4만원짜리 비옷을 2만5000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고, 거래 실적이 좋다면 추가 할인을 받아 2만2000원에 살 수 있다.

그는 여성 속옷을 사지 않고 가격만 수첩에 적었다. 이따금 스마트폰으로 가격을 비교했다. 대신 남성 팬티를 사고 잡화 코너에서 손수건과 같은 소품을 구입했다. “제품 한 개에 100원 차이가 나도 물량이 많아지면 그 차액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가격 비교가 중요하다. 또 속옷을 사러온 주부는 남편 속옷이나 아이들 옷도 사고 싶어 하기 때문에 구색을 갖춰야 단골을 만들 수 있다.”

제품 통관 준비로 밤샘 작업

그는 종일 걸어 다니느라 부은 다리에 파스를 붙이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은 오전부터 가격이 가장 싼 매장에 들러 눈으로 점찍어둔 속옷을 사기 시작했다. 늦은 오후 그는 떨어진 체력을 카페인음료로 버텼다. ‘돈키호테’라는 상호를 붙인 잡화점에서는 과자류를 샀다. 그는 “꼭 속옷이 아니더라도 손님이 부탁한 제품을 사다주는 서비스를 해야 입소문이 좋아진다”고 상술을 귀띔했다.

그 다음 날은 기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아웃렛으로 향했다. 국내에 없는 디자인의 제품을 고르기 위해 일본 속옷 브랜드인 와코루 매장에서만 2시간을 보냈다. “브래지어 끈이 흘러내리는 등의 불편함을 여성이라면 누구나 경험한다. 라비쥬르·피치존 같은 일본 고급 브랜드 속옷은 한국인에게 낯설지만 착용감이 좋고 품질이 우수해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그날 저녁 그는 저녁을 먹지 못했다. 한국으로 가져갈 제품을 상자에 넣고 송장을 작성하느라 다음 날 새벽 3시를 넘긴 후에야 짐 더미 사이에서 새우잠을 잘 수 있었다. 4월22일 오전 숙소에 도착한 트럭에 짐을 실어 부두로 보내고 자신도 전철을 타고 오사카 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짐에 송장을 첨부해 배에 실었다. 오후 3시가 넘어 부산행 여객선에 오른 그는 객실에 몸을 누이고 긴 잠에 빠져들었다.

 

“온라인 쇼핑몰, 대박 꿈 버려야” 

보따리상은 수익성이 좋은 편이다. 게다가 쇼핑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보따리상은 천직 같아 보인다. 수입한 제품을 온라인 쇼핑몰에서 팔면 목돈을 들이지 않고 쉽게 수익을 남길 수 있을 것도 같다. 이런 생각에 보따리상 창업에 뛰어들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오랜 경험을 가진 보따리상의 충고다. 소인수씨(가명)는 “일본 현지에서 제품을 사오기는 쉽지만 국내에서 파는 것이 문제”라며  “일반 상인은 온라인 쇼핑몰에 광고비로만 하루 100만원 또는 한 달 1500만원을 쏟아붓는 ‘프로’ 상인을 당해낼 재간은 없다”며 섣불리 뛰어들지 말 것을 당부했다.

보따리상은 규모만 작을 뿐이지 엄연한 무역업이다. 따라서 물건과 거래처를 발굴하고 통관해서 유통하고 판매하는 절차를 익혀야 한다. 보따리상을 위한 정식 교육기관은 없지만, 일본창업연구소(cafe.naver.com/limdk325) 등 민간인이 운영하는 단체를 활용하면서 충분한 연습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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