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침실에 멜로물을 채워라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04.30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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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호르몬’ 많이 분비하게 해…스킨십 유도 일등 공신

아무리 잘생긴 미인이라도 자주 보면 시들해진다. 아름다운 경치라도 매일 보면 싫증나듯 말이다. 왕위까지 던져가며 자식이 둘이나 딸린 평민 출신의 이혼녀 월리스 심슨 부인과 사랑에 빠졌던 영국의 에드워드 8세도 훗날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고 한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겸 소설가인 버나드 쇼는 “미인이란 처음 볼 때는 매우 좋다. 그러나 사흘만 계속 집 안에서 상대해 보면 더 보고 싶지 않다”고까지 했다.

오늘의 미인은 내일의 ‘평범녀’가 된다. 결혼한 부부도 마찬가지다. 결혼해서 대략 1년쯤 지나면 배우자의 외모는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고, 서로 익숙해졌다고 생각되는 어느 순간 멋진 외모와 상관없이 싫증을 느끼기도 한다. 아이들 이야기가 아니면 딱히 할 말도 없고, 함께 산책할 때도 더는 손을 잡지 않는다. 부부간에 심각한 문제는 없지만, 퇴근 후 TV 앞에만 앉아 있는 배우자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그렇다고 싫증날 때마다 다른 사람으로 바꿔가며 살 수도 없는 일.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 일러스트 임성구
여자는 멜로, 남자는 액션 좋아하는 이유

전문가들은 싫증을 느낄 틈이 없게 관계를 변화시키라고 말한다. 화려한 궁궐 생활을 버리고 출가한 와카(和歌, 일본의 전통적인 정형시)의 대가 요시다 켄코는 수필집 <도연초(徒然草)>에서 ‘남녀가 서로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면 불안 요소를 안고 사는 것이므로 이때는 따로 살면서 가끔씩 만나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다. 주말부부처럼 말이다. 그렇게 지내게 되면 세월이 흘러도 관계는 끊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이 켄코의 설명이다. 결국 충분한 시간차를 두고 사랑을 회복하라는 얘기다.

부부 금실이 좋아지려면 액션물보다 멜로물을 보라고 충고한다. 흔히 TV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제는 ‘신데렐라’류의 멜로물 아니면 폭력이 난무하는 액션물이다. 사건의 변화가 심하고 통속적인 흥미와 선정성이 있는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멜로물은 대체로 여자들이 좋아하고, 격투기 따위의 거친 연기를 주로 다루는 액션물은 남자들이 보고 싶어 한다.

‘신데렐라’ 주인공이 ‘백마 탄 기사’ 같은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구태의연한 이야기에 왜 여성들은 재미있어 하며 끝없이 빠져들까. 그것은 그러한 이야기가 여성의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인간 감성의 본질은 자연이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의 합일점을 모색하는 휴머니즘이 멜로물의 직접적인 소재가 되는 것이다. 특히 감성을 중시하는 여자에게는 멜로물이 안성맞춤이다.

감성적인 멜로 영화를 시청한 커플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를 보면 영화를 보고 난 뒤 남녀 모두에게서 황체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 분비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감성적인 여성 쪽이 남성보다 10%나 많이 분비됐다. 프로게스테론은 ‘배려 호르몬’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게스테론이 많이 분비될수록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커져 친밀감을 높인다. 멜로 영화가 안정제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우리는 대개 유행가 가사나 소설, 시집 또는 작가들이 꾸며낸 멜로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사랑을 배운다. 사랑이 무엇인지 학교도 부모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사랑 때문에 열병을 앓고 오랜 시간 고민에 빠지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사랑을 배울 곳이 없어서 간접 경험을 하고자 여자들이 멜로드라마에 더 빠져드는 게 아닐까 싶다.

여성에게 액션물은 성관계 방해물

반면, 남자는 스포츠를 좋아하고 시원한 액션물에 잘 빠져든다. <매트릭스>를 보면서 총알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온몸으로 느끼고,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이 바로 자신을 해코지하기라도 하는 듯 공포감에 휩싸인다. 여자들이 보기엔 때리고 찌르고 내동댕이치는 거친 싸움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에 남자들이 그렇게 열광하는 까닭은, 남자는 감성적인 것보다는 행동적인 것에 더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액션영화를 볼 때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농도가 높아진다. 특히 등장인물이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무기 등으로 폭력을 휘두를 때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평소보다 30%까지 높아져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남편과 함께 액션영화를 보는 아내는 상대를 생각해 어쩔 수 없이 영화를 보긴 하지만, 뇌에서는 그나마 조금 분비되던 테스토스테론 호르몬마저 줄이라고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지루함을 느껴 저절로 입이 벌어지면서 하품을 쏟아내게 된다.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남편이라도 아내와 함께라면 멜로드라마를 봐야 부부관계가 더 좋아지고 가정의 평화도 지킬 수 있다.

직장에서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아내와 텔레비전을 본다면 멜로물을 보도록 하자. 만약 아내의 뜻을 무시하고 액션물을 본다면 남편은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분비되면서 흥분해 성관계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아내는 졸음만 쏟아져 곁으로 오는 남편이 귀찮게 느껴질 것이다.

멜로드라마는 다르다. 물론 액션영화처럼 남편을 성적으로 자극하지는 않지만, 남녀 모두에게 프로게스테론의 분비를 촉진시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샘솟게 하고 스킨십을 나누고 싶도록 한다. 이때 아내에 대해 부정적이던 마음인 ‘아니’가 ‘허니(honey)’로 바뀌면서 점점 아내를 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다. 아내와 함께 은은한 정을 나누며 평화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괜히 부부싸움만 일으키지 말고, 이유를 막론하고 멜로물을 즐겨라.

지금껏 유치찬란하고 빤한 이야기라고 굳게 믿고 있던 멜로물을 마음의 벽을 허물고 함께 공감하는 대화의 매개체로 승화시켜보자. 그러면 부부간에 정이 새록새록 돋아날 것이다. 부부가 함께 보는 프로그램 하나가 부부유별(夫婦有別)에서 부부유친(夫婦有親)으로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편집자 주 2011년 6개월간(1~6월) <시사저널>에서 연재된 ‘성(性)에 숨어 있는 과학’ 시즌2가 격주로 연재됩니다. 어려운 과학 이야기를 쉽게 풀어쓰는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는 청소년 과학 잡지 <Newton> 편집장을 지냈으며, <시사저널>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과학 칼럼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뭔가를 배우는 여성은 행복하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대니얼 길버트 교수는 “싫증이 나지 않으려면 다양성과 시간을 잘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연극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한두 달에 한 번 공연을 볼 짬을 낼 수 있다면 매번 연극을 보는 것이 낫지만, 매주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중간에 콘서트나 뮤지컬을 섞어 보는 게 행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 중 하나로 새로운 것을 배워보자. 뭔가를 배우는 것만큼 생활에 활력소가 되는 일도 많지 않다. 일상에서 탈피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기고, 짜릿한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특히 오랫동안 남편에게 의존하며 살아온 여성이라면 자기 힘으로 무엇인가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면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두 가지 나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배우니 심심함이나 싫증을 느낄 새가 없다. 게다가 취미와 정서가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고만고만하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평범한 자신의 삶이 크게 억울할 게 없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배우는 여성이야말로 가정과 사회, 더 나아가서는 국가를 강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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