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내세워 북·미 대화 막아선 안 돼”
  • 전북 익산·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3.05.0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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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의 ‘개성공단 사태 해법’

그동안 우리들이 잠시 잊은 듯했다. 한반도가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4월27일 차량 위에 짐들을 잔뜩 싣고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귀환하는 개성공단 우리측 기업 관계자들의 모습이 비친 TV 화면을 지켜보던 국민들 표정은 어두웠다. 이 장면은 전 세계에 전파를 탔다. “21세기판 피난 행렬을 보는 것 같다”는 비감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TV 뉴스를 통해 이 장면을 지켜본 정세현 원광대학교 총장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1월 통일부장관에 임명됐고,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까지 2년 6개월간 장관직을 계속 수행했다. 개성공단은 김대중 정부에서 협상이 진행됐고, 노무현 정부 때 착공식과 준공식이 이뤄졌다. 그 산파역을 담당한 이가 바로 정 총장이다. 5월2일 전북 익산에 위치한 원광대 총장실에서 정세현 총장을 만나 위기에 빠진 개성공단 사태의 해법을 들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개성공단 탄생의 산파역을 담당했던 입장에서 지금의 사태를 바라보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2004년 6월 개성공단 준공식을 끝내고 다음 날 통일부장관 이임식을 하고 물러났다. 금강산 관광 사업이 이명박 정부 들어 첫해인 2008년 폐쇄될 때처럼, 개성공단 사업 역시 박근혜정부 임기 첫해인 이번에 또 그런 운명을 맞지 않을까 굉장히 불안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개성공단을 가리켜 북한의 ‘달러 박스’라고 말하는데, 이는 개성공단의 깊은 뜻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적대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시켜주고, 그것이 평화적 관계로까지 연결되는 그 매개체에 경제가 깔려야 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개인적 관계에서도 경제적으로 서로 밀접한 연관성이 있으면 아무리 불쾌한 일이 있어도 참고 대화로 풀려고 하지,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법이다. 더구나 거기가 군사지역이다. 군사지역을 경제 협력 지대로 바꾸는 실험을 하는 곳이다. 그게 정착되기 전에 중단 위기에 봉착하게 되니까 허탈함 정도를 넘어 걱정이 앞섰다. 이제 통일을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개성공단의 폐쇄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는가?

처음과 달리 지금 북한의 태도를 보면 다소 희망적인 듯하다. 우리 쪽보다 오히려 북쪽이 폐쇄만큼은 막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지금 이 시간(5월2일) 현재 7명이 (개성공단에) 남아 있는데, 나는 그 인원이 남북 양쪽 모두 개성공단을 폐쇄로 몰고 가지 않으려는 숨은 뜻이라고 생각한다. 크게 우려하지는 않으나 공장이 재가동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그게 좀 걱정이다. 5월7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메시지가 나오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본다.

지금 북한의 정확한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북한은 정말 폐쇄를 원치 않는다고 보는가?

만약 북한이 완전히 문을 닫으려고 한다면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까 다 나가라” 해야 맞다. 이를 다시 군사지역으로 바꾸면 된다. 앞서 말한 7명이 남을 필요도 없이. 지금 북한이 주장하는 인건비 지급 등의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걸 북한이 모를 리 없고 시간이 꽤 걸릴 일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서도 그러는 걸 보면 협상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나름대로의 계산된 행동이 아닐까 생각된다.

일각에서는 “개성공단을 통해 자본주의 물결이 들어와 체제 위험성이 가중되는 만큼 김정일 위원장이 생전에 후계자인 아들 김정은에게 ‘향후 폐해가 심해지면 폐쇄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유훈으로 남겼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단 1%의 가능성도 없는 추측성 분석이다. 개성공단을 만들 당시 북한 군부가 얼마나 심하게 저항했는지 아는가? 금강산 개발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로서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곳은 북한 인민군의 군사지역이다. 공단으로 개발된 지역은 6600m2(2000만평)에 6만5000명 정도의 병력이 주둔하던 곳이다. 남한의 오산까지 이르는 장사정포가 배치된, 중요한 전진기지이기도 하다. 북한 군부가 “남조선 적들이 우리 깊숙이 들어와서 군사적으로 무슨 장난을 칠 줄 아느냐”고 반발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때 그런 군부의 반발과 저항을 누르면서 밀어붙인 이가 김정일 위원장이다. 군부를 향해 “지금 그런 것 따질 때가 아니다. 그쪽에서 뭔가 배워야 우리 경제도 희망이 있는 게 아니냐”며 내리눌렀다. 그것은 김정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그가 10년 만에 자기를 부정하는 유훈을 남겼다면 북한 간부들 입장에서는 수령님과 장군님이 스스로 오판을 자인했다는 얘기가 되는데, 북한에는 ‘수령 무오류의 원칙’이란 것이 있다. 김정일을 승계한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김정일의 오류를 절대 인정할 수 없다.

ⓒ 시사저널 임준선
김정일 위원장의 의지가 확고했다는 뜻인가?

북한은 단순히 부지 내주고 근로자들 임금 받아 챙기면서 달러나 좀 벌자고 이를 허용한 게 절대 아니다. 북한의 개성공단은 우리의 1970년대 마산수출자유공단 개념을 옮겨놓은 것이었다. 1970년대 당시 우리는 근로자의 노동력만 있었을 뿐, 자본도 기계도 기술도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마산에 부지를 내주고 일본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그게 우리 민족 정서상 가당키나 한 일이었나?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지 얼마나 됐다고 일본 밑에서 다시 일을 한다는 말이냐 하는 반발이 있었다. 그래도 박정희 대통령은 밀어붙였다. 할 수 없었다. 앞으로 먹고살기 위해서, 당장은 굴욕이지만 향후 경제를 위해서 일본에 부지를 내주고 우리의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는 대신 일본 자본을 끌어들이고 기술을 배우고자 했다. 결국 그게 원동력이 되어 오늘날 우리의 경제가 이렇게 발전한 것이다. 김정일도 똑같은 논리였다. 지금 당장은 좀 굴욕적일 수 있지만, 봉제 산업 등 노동집약적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공장 부지와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 남한의 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여 경제를 일으켜보자는 속셈이었다. “우리도 그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우리도 배우면 외화를 벌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김정일의 생각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정확한 말 그대로인가?

이는 기록에도 다 나와 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정몽헌 회장과 협상할 때 뭐라고까지 얘기했느냐 하면, 정 회장이 “처음 1~2단계에서야 작은 규모이니까 근로자 공급에 큰 문제가 없지만, 3단계로 확대되면 근로자가 30만명 가까이 필요한데 가능하겠나”라고 묻자 김 위원장이 “3단계가 완공될 정도면 그때의 남북 관계는 지금과는 상당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때는 남북 간 군사 긴장도 현저히 완화될 것이다. 그렇게 커진 개성공단 때문에라도 긴장 관계가 지속될 수 없다. 그러면 우리 군대 그렇게 다 필요 없다. 지금은 서로 적대적이니까 병력이 필요하지만, 향후 (개성공단이) 발전하면 (병력들) 제대시켜서 공급할 테니 정 회장 선생은 걱정 말고 개발을 서두르시오”라고까지 했다. 그랬던 사람이 10여 년 지난 뒤에 “야, 이거 위험하니 폐쇄하라”고 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렇다면 지금 북한 군부가 김정은 제1비서를 움직여 개성공단 폐쇄를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 북한에 강경파와 온건파가 맞서 싸우고 있다는 분석은 전형적인 미국식 분석 방법이다. 미국이 1970~80년대 중국을 분석했던 방법이 그랬다. 1989년 천안문 사태 때 내가 중국 학자들에게 “강경파들이 득세해서 시위대를 깔아뭉개고 한 게 맞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의 대답이 “마오쩌뚱이든 덩샤오핑이든 그 앞에 강온파가 어디 있나? 최고 정책 결정권자가 한 번 결정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거기에 대해 토를 달지 못한다”고 하더라. 그게 답이다. 물론 처음부터 군부가 반대했으니만큼 빌미가 생길 경우 개성공단을 원상회복하고 싶어 할 수는 있겠지만, 김정은이 버티고 있는 한 그런 말을 입 밖에 내기 어려운 것이 북한 사회다.

그렇다면 김정은 제1비서의 목적은 뭐라고 보는가?

김정은이 개성공단에 강수를 두는 것은 그 자체에 목표가 있는 게 아니다. 북한의 목표는 단 하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북·미 수교를 이루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때문에 경제도 안 되고 핍박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향후 계속 이 상태면 죽도 밥도 안 된다고 보고 있다. 2008년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힐러리 국무장관은 “북한이 비핵화만 이루면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 체결 그리고 경제 지원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북한으로서는 고무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당시 MB(이명박) 정부는 ‘비핵 개방 3000’이라는 확고한 방침을 정해놓고 그 이상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화협정을 꺼내는 건 섣부르다고 반대한 것이다. 한국의 반대로 북·미 수교에 대한 기대가 깨지니까, 2009년 4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5월 2차 핵실험을 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유엔의 대북 제재가 이어지고. 과거의 한·미 관계라면, 한국이 반대한다고 해서 미국이 눈치를 봤을까마는 이제는 한국의 위상이 커진 만큼 한국이 반대하고 나서면 미국으로서도 무조건 밀어붙이기가 어렵다.

MB 정부와는 달리 지금의 박근혜정부는 어떤 입장을 갖고 있다고 보는가?

내가 1977년 박정희 정부 때부터 통일부에 몸담으면서 역대 정권에서 다 일했다. 그 경험으로 볼 때,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정책 감각과 식견의 차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YS(김영삼) 정부 때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내가 3년 이상 했다. 당시 대통령 주변 외교안보 라인은 물론, 비(非)외교안보 라인 사람들의 대북관도 YS의 대북 정책으로 반영되더라. 당시 YS는 북·미 대화도 못 하게 했다. 그때는 미국이 밀어붙였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정부가 YS의 대북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4월26일 약 26시간 정도의 시한만 남겨두고 ‘최후통첩’하는 것이 그렇다. 당시는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을 떠나면서 “6자회담 전에 양자회담, 4자회담도 할 수 있다”고 말했고, 실제로 중국과 협의를 한창 진행하던 중이었다. 그 시점에 개성공단 근로자 전원 철수라는 긴박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보고 혹시 ‘북·미 대화를 막으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에 개성공단 문제가 꼬여버렸다.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빠지고 북·미끼리만 대화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은 일 아닌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자존심 생각할 단계가 아니다. 그것은 대의를 버리고 소아적인 것에 집착하는 것이다. 북·미 간에 먼저 판을 짜야 한다. 핵문제 해결에서는 우리에게 결정권이 없다. 미국만이 그것을 들어줄 수 있다. 평화협정을 할 수 있는 자격이 현재 미국에만 있지 않나. 그나마 평화협정을 위한 4자회담에라도 나가려면 우선 북·미 양자가 만나야 한다. 그런데 그런 모양새가 불편하다고 해서 막는다면 나중에 더 큰 후회를 하게 된다. YS가 섣불리 북·미 대화를 막았다가 경수로 비용만 엄청나게 부담하는 결과를 낳았듯이 말이다. 슬기롭고 전략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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