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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짝을 뽑을 순 없응께 할 수 없이 지지할 뿐이지라”

광주 민심 르포…“민주당은 힘내야 할 때마다 분열” 비난 고조

광주│엄민우 기자·양창희 인턴기자 ㅣ 승인 2013.05.14(Tue) 15: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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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내려갔다. 주민들을 만나 “지지하는 정당이 있는가”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은 없다.” 대답은 단호했다.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예전에는 있었는가?” “민주당이었지라”라는 말이 돌아왔다. 광주에서 30년째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박 아무개씨의 대답이다. 박씨는 “당분간 정치에는 관심을 끊으려고 한다. 거의 ‘멘붕’ 상태”라고 말을 이어나갔다. 광주 망월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기자가 박씨와 나눴던 대화다.

 민주당은 호남의 ‘여당’이었다. 호남에서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호남이 심상치 않다. <시사저널>이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호남 지역 성인 남녀 10명 중 7명이 ‘향후 지지하는 정당이 바뀔 수도 있다’고 답했다.

취재진은 5월7일과 8일, 민주당 본거지인 ‘5월의 도시’ 광주를 찾아 호남 민심을 취재했다. 현장에서 들은 광주 시민들의 민주당에 대한 실망의 목소리는 통계 숫자로 볼 때보다 훨씬 적나라했다. 광주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양동시장에서도, 번화가인 충장로에서도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계파 싸움에 대한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 질문 던지기가 무섭게 당의 무능력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아예 안철수 무소속 의원으로 화제를 돌려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7일 오후, 광주 서구에 위치한 양동시장으로 향했다. 양동시장은 광주에서 가장 유명한 재래시장이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이곳 시장 상인들이 시민군을 지원했다. 말 그대로 광주의 역사가 집약돼 있는 곳으로 광주 민심을 얻고자 하는 선거 후보라면 한 번쯤은 꼭 들러야 하는 곳이다. 2002년 대선 때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거운동을 하며 이곳에서 국밥을 먹어 화제가 됐다.

   
양동시장 상인들은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을 숨기지 않았다. ⓒ 시사저널 최준필
“민주당에 대한 기대도 실망도 없다”

가구점을 운영하는 40대 상인 임 아무개씨는 “이제는 실망할 것도 기대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임씨는 “몇십 년간이나 (민주당을) 밀어줬는데 먹고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이제는 확실히 보인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은 골수 지지자의 마음까지 돌려놓을 정도로 강했다. 양동시장 끝자락에서 만난 김 아무개씨(63·자영업)는 “1987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서울 보라매공원 유세에 참석했다”며 자신을 열성적인 민주당 지지자로 소개했다. 그는 “옛날에는 무조건 민주당이었는데, 이제는 인물만 보고 투표할 것이다. 새누리당이라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은 젊은 세대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히 현재 민주당이 가진 정체성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사람이 많았다. 조선대학교에서 만난 강 아무개씨(27)는 “민주당이 새누리당이랑 다를 게 무엇인가. 단지 2등일 뿐”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광주 민심이 갑자기 민주당에 등을 돌린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호남 유권자들은 민주당에 무조건적인 성원을 보냈다. 박준영 전남도지사조차 이를 두고 ‘충동적 호남 몰표’라고 표현했다. 몰표는 지난해에도 계속됐다. 문재인 대선 후보는 광주에서 9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2013년 5월 지금 광주 사람들이 민주당에 보이는 반응과는 딴판이다.

양동시장을 떠나 광주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택시기사 천 아무개씨(44)에게 민주당 얘기를 꺼냈다. 1980년 5월 광주의 택시기사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계엄군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한 역사 때문인지 광주에서 택시를 타면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들을 수 있다. 천씨의 어투는 사뭇 격정적이었다. “민주당에게 (정치를) 시켜줬는데 전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도로가 조금 뚫린 것 빼고 바뀐 게 없다.” 민주당을 뽑았지만 광주에는 실질적으로 이득 된 것이 없다는 얘기다.

호남의 관문인 광주역에서 들려온 얘기는 민주당에 대한 실망으로 가득하다. 질문할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아쉬움이 쏟아졌다. 호남 지역 언론인 출신인 한 인사는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대통령과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에 대한 불만이 지역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다”고 했다. 그는 “호남이 노무현을 전폭적으로 밀어줬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그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역에서 만난 한 직장인은 계파 갈등을 꼬집었다. 그는 “민주당이 결집해서 ‘당론’이라는 것을 펼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민주당은 힘을 발휘해야 할 타이밍에서 항상 분열됐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5·18을 겪었다는 윤 아무개 목사(59)는 “대선 실패 후 민주당이 유권자들에게 감사나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정체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5·18 공법단체설립추진위원회 김공휴 대변인은 “민주주의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민주당이 그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광주전남시민정책포럼 안현주 공보실장은 “민주당에 대한 실망은 당내 정치인들이 정부에서 ‘사업’을 따오지 않아서가 아니다. 노무현·안철수 등 야권 세력의 비주류들을 지지해줬던 호남의 높은 정치의식을 민주당이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민주당은 민주화를 이뤄낸 정당으로서의 대의명분마저 잃어버린 셈이다.

   
‘광주의 명동’으로 불리는 충장로 번화가. ⓒ 시사저널 최준필
민주당을 떠난 광주 민심은 갈 길을 못 찾는 모습이다. 8일 오후, 옛 도청 앞 번화가 충장로를 찾았다. 옛 도청은 광주에서는 상징적인 곳으로 지난해 10월 당시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이 이곳에서 ‘새정치 광주선언’을 하기도 했다. 충장로에서 30년간 구두 가게를 운영했다는 한 상인이 탄식처럼 내뱉었다. “그래도 ‘저짝’(저쪽)을 찍을 수는 없응께, 어쩔 수 없이 찍는 것이제.” 한마디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대안이 없어서’라는 얘기다.

안철수에 대한 평가는 ‘기대 반 우려 반’

술렁이는 민심은 새로운 정치 거물 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옛 도청에서 질문을 던졌을 때 가장 많이 나온 정치인 이름은 ‘안철수’였다. 안철수 의원에 대한 지지는 젊은 층에서 들끓었다. 충장로3가의 상점에서 일하는 20대 여성 전 아무개씨는 “지난 대선 때 안철수 후보를 열렬히 지지했는데 대선에 나오지 않아서 투표를 포기했다. 안철수 신당에 대한 기대감이 여전히 크다”고 말했다. 전남대에 재학 중인 이규우씨(26)는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안철수 신당이 나오면 생각을 달리할 것”이라며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마음에, 젊은 사람들은 아무래도 안철수 의원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고 전했다. 한 50대 주부는 “민주당을 이끌 야무진 사람이 없다”며 “그러니까 안철수 의원이 통합해서 (민주당 세력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시사저널>이 호남 지역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44%가 ‘안철수 신당이 나올 경우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안철수 의원에 대해 마냥 기대 섞인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충장로에서 만난 김우영씨(40)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안철수 의원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반감을 품은 광주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또, 민주당에 서운하다던 윤목사도 “안철수 의원의 인기에는 거품이 많이 낀 것 같다”며 “그가 말하는 ‘새 정치’는 구호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광주 민심은 ‘민주당이 실망스러운 것은 맞지만, 안철수를 그 대안으로 삼기에는 아직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호남 입장에서도,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 입장에서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는 10월에는 재·보궐 선거가, 내년 6월에는 지방선거가 있다.

그래도 여전히 민주당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은 남아 있다. 5·18 때 잃은 가족과 친구를 기리기 위해 망월동 묘역을 찾았다는 김형수씨(60)는 “당파 싸움만 하는 민주당을 신뢰할 수 없지만, 그래도 민주화 정신을 계승한 민주당 쪽에 손을 들어줘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다시 호남의 정당으로 일어서기 위해 살려야 할 ‘불씨’다. 


“누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끄려고 하는가”  


광주가 오랜만에 힘을 한데 모았다. 5·18 민주화운동 33주년 기념행사에서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퇴출되는 것을 저지하는 데 모두가 나선 것이다. 이 노래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때 사망한 고 윤상원·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다. 작곡가 김종률씨와 소설가 황석영씨가 백기완 시인의 <묏비나리>라는 시를 개작하고 여기에 김씨가 곡을 붙였다. 최근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이 노래를 5·18 기념행사 공식 식순에 포함하지 않고 다른 곡을 추모곡으로 제정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논란은 예상보다 컸다. 특히 5·18 행사의 주인공인 광주 시민 및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다. 5·18 민주화운동 33주년 기념행사위원회측은 “<임을 위한 행진곡> 퇴출 시도는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것으로 절대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김공휴 5·18 공법단체추진위원장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하고 혈세로  다른 노래를 만들려 하는데, 이 예산을 민주당이 살피지 못했다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꼬집었다.

여론이 심상치 않자 국가보훈처는 서둘러 “이번 5·18 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퇴출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한 논의를 일단 뒤로 미룬 것이기 때문이다. 강기정 의원은 지난 5월3일 국회의원 56명과 함께 이 노래를 5·18 기념곡으로 지정하자는 촉구 결의안을 제출했다. 강기정 의원실 관계자는 “광주는 5·18 민주화운동을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만들고자 하는데, 거기에 <임을 위한 행진곡>도 포함돼 있다”며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제창과 함께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임을 위한 행진곡>은 국가보훈처 덕에 새삼 뜨거운 주목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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