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운명, 인턴 여성 입에 달렸다
  • 김동현│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소 교수 ()
  • 승인 2013.05.2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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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범죄는 범죄인 인도 요청 적용 안 돼…4급 범죄로 격상될지 관심

필자는 미국 국무성에서 통역관 등으로 28년간 근무했고, 현재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연구교수를 겸하고 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5월7일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직후 이어진 공동 기자회견 자리에 함께했다. 당시 미국의 한 여기자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미군 내 성폭력 증가 추세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 기자는 성폭행을 방지해야 할 책임을 맡고 있는 미 공군 장성이 오히려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사실을 지적했다. 오바마의 답변은 단호했다. “성폭행은 분노를 자아내는 범죄다. 앞으로 이런 행위를 범하는 자는 기소 처분, 직위 박탈, 군법회의 회부, 파면, 불명예 제대 등 엄격한 처벌을 가하겠다”고 밝혔다. 윤 전 대변인은 이 말을 듣고 바로 몇 시간 뒤 교포 인턴 여성에게 성추행을 저질렀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여성 인턴과 술을 마시려고 들렀다는 워싱턴 시내 호텔의 와인 바 내부. ⓒ 연합뉴스
박 대통령은 미국의 사건 수사에 협력할 것을 지시하고, 신속한 수사를 요청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미국측의 사법 처리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사실상 별로 없다. 기껏해야 현지 한국대사관(또는 한국문화원)이 경찰 수사에 협력하는 증언 역할 정도일 것이다.

윤 전 대변인은 워싱턴DC의 성폭행법(Sexual Abuse 관련 법)에 의해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의 사건 보고서는 윤 전 대변인이 “피해 여성의 허락 없이 엉덩이를 움켜잡았다”는 혐의로 경범죄에 해당하는 성추행 사건으로 취급하고 있다.

미국은 각 주마다 성범죄와 관련된 용어들을 법으로 정의하고 있다. 성폭행도 Sexual Assault 또는 Sexual Abuse 법으로 부르고 있다. 워싱턴DC는 독립된 주는 아니지만, 독립된 자치권을 갖고 있는 행정 단위다. 어떤 성범죄를 포함하는 형사 사건이 발생하면 먼저 경찰이 정해진 법에 따라 수사에 착수하지만 기소권을 갖고 있는 연방검찰 지휘를 받는다.

워싱턴DC 법은 성범죄를 1급에서 4급까지 구분하고 가장 가벼운 경범급 성추행 범죄를 포함해 모두 다섯 가지의 범죄를 정의하고 있다. 윤 전 대변인에게 해당되는 성추행 경범죄의 구성 요소는 △성적 행위나 성접촉(Sexual Act or Contact)이 있어야 하고 △상대방의 허락이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상대방에게 수치심을 주겠다는 의도가 있었거나, 자신이나 상대방의 성적 욕구를 유발 또는 충족하려 했을 경우다. 윤 전 대변인의 혐의는 성접촉에 해당된다. 성접촉 행위란, 옷 위로 또는 옷이 벗겨져 있는 상태에서 손으로 성기능과 연결된 신체의 특정 부위를 만지는 것을 말한다. 이런 부위는 성기, 가슴, 다리 윗부분과 둔부(엉덩이, Buttocks)를 포함한다. 가장 죄가 무거운 1, 2급은 주로 폭력이나 위협으로 강간, 구강 성행위 등을 범하는 사건을 다룬다.

4급 성범죄 되면 범죄 인도 요청 가능

연방검찰은 경찰이 확보한 피해자의 진술서를 토대로 사건의 경중을 검토해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윤 전 대변인 사건이 경범죄로 기소되면 최대 형량이 구류 180일에 벌금 1000달러로 비교적 가벼운 벌을 받는다. 워싱턴DC 법원은 경범죄인 경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배심원 재판을 하지 않고 단독판사 재판(Bench Trial)을 한다. 물론 피고의 변호인이 배심원 재판을 신청할 수 있지만,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윤 전 대변인의 경우에는 배심원 재판이 단독판사 재판보다 더 불리해질 수 있다. 대개 배심원들은 강자보다는 약자를, 성폭행의 경우 피고보다는 피해자의 편을 더 들어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재판 전에 증인을 불러 사건의 전말을 직접 확인한다. 이때 1차 면담을 했던 경찰도 입회할 수 있다. 재판 이전에 판사는 피고를 소환하고, 피고의 혐의 내용과 피고의 권리를 설명해준다. 범죄 입증의 부담(Burden of Proof)은 검찰에게 있다. 따라서 검찰은 피해자와 목격자를 소환해 법정에서 증언케 한다. 피고가 판사 앞에서 혐의를 직접 부인할 수 있다. 이런 경우 피고와 증인 간의 주장이 엇갈리게 되면, 결국 판사의 판단으로 재판이 마무리된다. 만약 검찰측 증인이 출두하지 않으면 사건은 기각된다.

국내 언론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남에 따라 윤 전 대변인의 사건이 경범죄에서 4급 성범죄로 좀 더 무겁게 적용될 가능성을 보도하고 있다. 4급 형벌은 최고 5년 및 벌금 5만 달러까지 선고할 수 있어 1999년 12월 발효된 한·미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라 미국측이 윤 전 대변인의 인도를 한국측에 요청할 수 있다. 인도 요청 대상은 1년 이상의 형량에 해당되는 범죄 혐의자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윤 전 대변인이 경범죄로 취급되면 최고 형량이 6개월이기 때문에 인도 요청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

윤 전 대변인의 사건이 4급 범죄 혐의로 격상되려면 부적절한 성접촉을 할 때 피해자가 공포를 느끼게 했다는 혐의를 검찰이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4급 범죄에는 피해자가 의식불명의 상태에서 저지른 성접촉도 해당되지만, 지금까지 나온 얘기들로 미뤄볼 때 윤 전 대변인은 여기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대변인이 피해 여성을 호텔방으로 불렀을 때, 그가 알몸 상태로 성접촉을 시도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 해도, 윤 전 대변인이 어떤 언사나 행동으로 피해자로 하여금 공포감을 느끼게 했느냐가 핵심이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미국에 있는 피해 여성이 추가 진술을 통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적극 알릴 경우 4급 범죄로 격상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아닌,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언론 보도만으로는 미국 법원에서 직접적인 증거 효력을 갖기 어렵다. 신문 보도나 남에게 들은 얘기는 법률상 풍문(Hearsay)으로 간주되며, 증거 채택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법정에 제출된 증거와 증언뿐이다. 따라서 현재의 핵심은 피해 인턴 여성과 그와 함께 있었던 한국문화원 여성 직원의 증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번 사건이 기소되면 법원은 ‘피고’ 윤창중 전 대변인에게 법원 출두 소환장을 외교 경로를 통해 전달할 수 있다. 경범죄 혐의자가 외국 국적 소유자인 경우 유죄 판결과 동시에 국외 추방령을 내릴 수 있다.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는데 윤 전 대변인의 경우에는 이미 한국에 와 있고, 귀국 전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도 아니며, 그가 외교관 면책권의 발동을 주장한 적도 없기 때문에 그런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다만 미국이 윤 전 대변인에게 4급 범죄를 적용해 범죄인 인도 요청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게 되면 새로운 논란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이번 사건으로 국제적 망신을 톡톡히 당한 한국 정부가 발 빠르게 윤 전 대변인에 대해 직권면직 조치를 한 것 또한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느낌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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