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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송원, 이재현 통장에 26억 입금했다

2010년 네 차례 걸쳐 보내…수상한 ‘그림 커넥션’ 드러날까

김지영 기자 ㅣ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3.05.29(Wed) 15: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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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올 것이 왔다.” 역대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되풀이돼온 사정 당국의 대기업 사정 한파가 박근혜정부에서도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그 첫 타깃은 삼성가(家) 종손 집안인 CJ그룹. 검찰이 이재현 회장 등 오너 일가를 정조준해 칼을 빼들었다. 이명박 정부 때 대형 사건마다 “헛발질했다”며 맹비난을 샀던 검찰이 명예 회복의 첫 작품으로 CJ그룹을 찍었다. 대표적인 특수수사통인 채동욱 검찰총장의 야심작이자, 박근혜정부의 첫 사정 작업이다.

CJ그룹은 그야말로 쑥대밭이다. 검찰은 5월21일 CJ그룹 본사 등을 압수수색했다. 다음 날인 22일에는 이재현 회장을 비롯해 이미경 CJ E&M 총괄부회장, 이재환 CJ 계열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등 3남매를 출국금지했다. 이미경 부회장의 개인 계좌까지 훑고 있다. 이재현 회장의 어머니 손복남씨의 수백억 원대 무기명 채권 매입 자금 출처뿐 아니라 이 회장 자녀들에게 불법 증여가 있었는지 등 전 방위로 CJ 일가를 몰아세우고 있다. 자금 관련 회사 핵심 인사들도 줄줄이 검찰청사로 불려가고 있다. 검찰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까지 압수수색했다. 2008년 이후 CJ그룹 세무조사 자료 일체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 시사저널 이상민·뉴시스
국세청은 2008년 4000억원대의 차명 재산을 확인하고 세금 1700억원을 물렸다. 별도의 고발 조치는 없었다. 이 부분에 검찰이 현미경을 들이댄 것이다. 당시 흐지부지됐던 차명 재산의 성격을 밝혀내겠다는 뜻이다. 검찰의 1차 수사 대상은 탈세 혐의에 맞춰졌다.

그런데 검찰의 대기업 수사 흐름을 보면 결국 수사의 칼끝은 ‘CJ 일가의 비자금’을 겨냥한 듯하다. “일부 비자금의 꼬리가 잡혔다”는 얘기도 검찰청사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검찰은 CJ그룹이 홍콩 등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뒤 정상적인 거래를 위장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해외에서 고가의 미술품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가격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검찰은 이 부분도 파헤치고 있다. 이미 일부 언론을 통해 ‘CJ그룹이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를 통해 2001년부터 2008년까지 해외의 고가 미술품 1400억원어치를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시사저널>은 ‘이재현-홍송원’의 수상한 거래를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을 확보했다. 본지는 지난해 말 홍 대표가 운영하는 서미갤러리와 홍 대표의 장남 박원재씨가 대표로 있는 원앤제이갤러리 등의 통장 사본과 회계 자료, 그림 구매 및 판매 내역 등 내부 자료를 단독 입수했다. 또 미술품 거래 계약서와 저축은행들의 대출 내역, 서미갤러리가 국세청과 검찰에 보낸 소명서 등도 확보했다. A4용지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CJ-서미 ‘작품 및 물품 공급 계약서’ 단독 입수

이 가운데 2010년 1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정확히 2년 동안 ‘서미갤러리-재벌가’의 돈거래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통장 거래 내역서’가 주목된다. ‘㈜갤러리서미 홍송원’ 명의로 2002년 11월28일 신한은행 안국동지점에서 개설한 통장이다. ‘통장 거래 내역서’는 이 통장의 원본에 기록된 거래 내역을 엑셀 파일로 따로 기록해둔 서미갤러리의 내부 자료다. 본지는 이 내역서를 토대로 2013년 3월19일자에 ‘홍송원-재벌가’의 거래를 보도했다.

일반적으로 미술품을 사는 당사자가 미술품을 파는 갤러리에 대금을 지급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이 통장 내역서에서는 특이한 점이 발견된다. 재벌들이 서미갤러리 통장으로 거액을 ‘입금’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반대로 서미갤러리가 재벌들에게 ‘출금’한 일도 있다. ‘출금’은 홍 대표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의미다.

이들 가운데 이재현 CJ 회장도 포함돼 있다. 이 회장은 2010년 10월15일부터 12월24일까지 40일 동안 네 차례에 걸쳐 모두 26억원을 홍송원 대표로부터 지급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2010년 10월15일 4억원, 10월22일 5억원, 10월29일 7억원 등 세 차례는 정확히 일주일 간격으로 지급됐다. 12월24일엔 10억원이 한꺼번에 홍 대표 계좌에서 이 회장에게 흘러갔다. 그동안 언론 등을 통해 ‘이재현-홍송원’ 거래 의혹이 숱하게 불거지긴 했지만, 이번처럼 그들의 금융 거래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는 처음이다.

그렇다면 26억원은 도대체 무슨 돈일까. 왜 홍 대표가 이 회장에게 보낸 것일까. 기자는 지난 1월 홍 대표를 서울 한남동 서미갤러리 사무실에서 만났다. 당시 본지가 입수한 ‘통장 거래 내역서’ 등의 자료를 보여주며 “서미갤러리의 내부 문서가 맞느냐”고 확인을 요청했다. 이에 홍 대표는 “우리(서미갤러리) 자료가 맞는 것 같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게 외부(<시사저널>)로 나갔는지 모르겠다”며 “구체적인 (거래) 내용까지는 말하기 곤란하다”고만 했다. 그런데 CJ그룹측은 “이재현 회장은 그런 거래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홍 대표는 시인했으나 이 회장 쪽은 부인한 것이다.

본지는 최근 서미갤러리와 CJ측이 미술품을 매매한 기록이 담긴 서미갤러리 내부 문건을 추가로 입수했다. 서미갤러리가 작성한 2012년 7월23일자 ‘작품 공급 계약서’와 같은 해 9월3일자 ‘물품 공급 계약서’, 또 같은 해 9월25일자 공문 ‘2012.09.20일자 CJ제일제당㈜ 오류 입금’ 등 세 건이다.

   
5월21일 검찰 관계자들이 서울 CJ 본사 앞에서 압수 물품을 차량에 싣고 있다. 오른쪽은 <시사저널>이 입수한 CJ-서미갤러리의 계약서 등 문건. ⓒ 연합뉴스
CJ, 서미의 불투명 회계 처리 묵인

우선 작품 공급 계약서부터 들여다보자. 계약서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이하 ‘갑’)과 ㈜갤러리서미(이하 ‘을’)는 작품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데, ‘갑’이 지정한 작품을 ‘을’이 공급한다. 공급 작품은 ‘작가 : Robert Therrien / 작품 : No title(stacked plates, mint)’ 1점으로, 가격대는 6억5000만원이었다. 로버트 테리언(Robert Therrien)은 미국 시카고 출신의 중견 현대 화가다.

공급 장소는 ‘갑’이 지정한 장소로, 2012년 7월23일까지 5억원을 선급금으로, 1억5000만원을 잔금으로 현금 결제하기로 했다. 계약은 서미갤러리와 했음에도 정산 방법에 대해서는 ‘‘을’의 내부 사정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모든 거래, 즉 계산서 발행 및 대금 지급 등은 ㈜서미앤투스를 통해 한다’고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 서미앤투스는 홍 대표의 동생인 홍정원씨가 이사를 맡고 있으며, 홍정원씨의 남편은 구자철 한성 회장이다. 한성은 LS그룹 계열사로 구 회장은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4남이다.

물품 공급 계약서에는 서미갤러리가 CJ제일제당에 <Walter Lamb> 등 36점을 4억1542만1700원에 공급한다고 적혀 있다. 2012년 9월5일까지 선급금 2억770만8000원을 주기로 했으며 이 역시 현금 결제였다. 그런데 정산 방법은 ‘서미갤러리의 내부 사정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대금 지급은 ㈜원앤제이를 통한다’고 명시했다. 원앤제이는 홍 대표의 장남 박원재씨가 운영하는 갤러리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서미갤러리가 CJ측과 계약을 맺으면서 왜 서미갤러리가 아닌 홍 대표의 동생이 이사로 있는 서미앤투스와 홍 대표의 장남이 운영하는 원앤제이를 통해 대금을 받았던 것일까.

이는 2010년 9월 당시 서미갤러리가 사정 당국의 감시 대상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세청은 2011년 서미갤러리를 비롯해 국내 대형 갤러리 4곳에 대해 6개월 정도 강도 높게 세무조사를 벌였다. 특히 거액을 탈루한 의혹이 불거진 서미갤러리에 대해선 지난해 말까지 세무조사를 벌였다. 지난 1월부터 현재까지 홍 대표가 수십억 원대의 탈세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것도 국세청이 홍 대표를 탈세 혐의로 고발했기 때문이다.

“이재현-홍송원 거래 더 있을 것”

뿐만 아니라 홍 대표는 지난해 저축은행 불법 대출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래저래 홍 대표로선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결제 대금도 홍 대표가 가족들 명의의 관계사를 통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서미갤러리가 불투명하게 회계 처리를 한 셈이다. 계약서를 보면 CJ측도 이를 인지하고 동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미가 CJ측에 2012년 9월25일자로 보낸 ‘2012.09.20일자 CJ제일제당㈜ 오류 입금’이라는 공문도 의문의 대상이다. 공문에는 ‘2012.09.20일에 CJ제일제당㈜이 입금한 2억829만7380원은 CJ제일제당㈜의 오류 입금으로써 당사(서미갤러리)와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CJ측에서 서미갤러리 계좌로 2억여 원을 잘못 송금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CJ측은 “아는 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CJ와 서미갤러리 간의 거래는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지가 입수한 서미갤러리 통장 거래 내역은 2010년과 11년, 2년 치에 불과하다. 이 통장이 개설된 2002년부터 2009년까지의 거래 내역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기간뿐 아니라 2012년부터 현재까지의 내역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또한 본지가 입수한 통장은 신한은행 통장 하나다. 그런데 서미갤러리 명의의 통장은 더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서미갤러리 내부 사정을 비교적 잘 아는 인사는 “서미갤러리는 여러 개의 통장으로 거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 통장이 여러 개 더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본지가 입수한 신한은행 통장 거래 내역에서도 이 통장에서 ‘㈜갤러리서미’나 ‘홍송원’에게 거액을 ‘지급’한 기록이 여러 군데 등장한다. 또 다른 통장이 있다는 방증이다.

따라서 본지가 입수한 통장뿐 아니라 다른 통장들에서 거래된 금액까지 모두 합산해야 비로소 ‘이재현-홍송원’ 거래의 전모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차명계좌나 현금 등으로 거래했다면 두 사람 사이에 그동안 얼마나 오갔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미술품 통한 재벌의 외화 밀반출 수법 


미술품을 이용한 불법 비자금 조성이나 상속, 변칙 증여 등은 미술품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거론됐다. 하지만 미술품을 이용한 외화 밀반출 수법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재력가들과 거래하는 미술계에서 이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미술품을 이용한 외화 밀반출이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훨씬 심각하다”고 말했다. 미술계 인사도 “갤러리들이 마음만 먹으면 외화 밀반출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라고 말할 정도다. <시사저널>은 세무 당국과 미술계 인사 등을 접촉하면서 일부 갤러리의 외화 밀반출 방법을 추적했다. 취재 결과 크게 두 가지 수법을 동원해 외화를 해외로 빼돌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ㄱ갤러리가 재벌 ㄴ씨로부터 “100만 달러를 해외로 밀반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가정하자. 첫 번째 수법은 해외에서 벌어지는 미술품 경매를 통해서다. ㄱ갤러리가 해외에서 열리는 미술품 경매에 자사가 소유한 그림을 올린다. 그리고 스스로 100만 달러에 낙찰받는다. 미술품이 ㄱ갤러리 소유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다. 다만 경매 과정을 한 번 거치면서 ㄱ갤러리가 국내에서 송금한 100만 달러는 외국환거래법의 제약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렇게 해외로 송금된 100만 달러는 수수료만 제외하고 고스란히 ㄴ씨 수중에 들어간다. 그 대신 ㄴ씨는 ㄱ갤러리에 100만 달러에 상응하는 금액을 국내에서 지급하면 된다.

두 번째는 갤러리가 미술품을 수입하면서 외화를 밀반출하는 것이다. ㄱ갤러리가 미국에서 100만 달러짜리 미술품을 수입하면서 미국 현지 갤러리와 짜고 200만 달러 물품 매도 확약서(offer sheet)를 발행한다. 이것이 승인되면 ㄱ갤러리는 신용장을 개설해 200만 달러를 미국으로 송금한다. 그런 다음 ㄱ갤러리는 원래의 미술품 가격 100만 달러와 수수료를 뺀 나머지 외화를 ㄴ씨에게 전달할 수 있다. ‘정해진 가격이 없어 부르는 게 값’이라는 미술품의 특성을 악용한 것이다.

세무 당국에서도 이러한 외화 밀반출 수법을 인지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미술계에서는 ‘외화가 필요하면 (미술계 유명 인사) ‘아무개씨’를 찾아가면 된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며 “실제로 몇몇 인사는 외화 밀반출의 귀재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국세청 등 사정 당국이 공공연한 비밀인 재벌들의 미술품을 통한 외환 밀반출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에 나설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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