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들고 편안한 노후 기대했다 ‘날벼락’
  • 이규대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05.2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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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층 대상 보험, 피해 사례 속출

요즘 보험업계의 화두는 단연 ‘40~60대 중·장년층 공략’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당사자나 후발 세대가 노후 생활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최근 보험 가입을 희망하는 40~60대 10명 중 9명은 가입 목적 란에 ‘노후 자금 설계’ ‘은퇴 자금’을 체크한다”고 말했다.

보험은 어렵다. 일반 소비자들에게 생소한 용어부터 그렇다. 계약과 관계되는 수치·조건 등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특히 보험 판매자의 적극적인 판촉을 바탕으로 계약이 이뤄지는 것이 현재의 풍토다. 계약 사항을 꼼꼼히 따져보거나 다른 상품과 비교·분석할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것이 중·장년층의 노후 설계에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큰 고민 없이 들었던 보험이 훗날 뒤통수를 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보험 상품이 각양각색인 만큼 피해 사례 유형도 다양하다. 그중 노후 불안에 시달리는 중·장년층이 특히 유념해야 할 피해 유형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꼽힌다. 모두가 노후 설계·대비를 위해 주로 찾는 보험들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 저금리에 발목 잡힌 연금보험

서울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김 아무개씨는 1995년 6월 노후적립 연금보험에 가입했다. 당시 김씨는 40대였다. 박봉에 힘든 생활이었으나 월 10만원씩 10년을 내면 55세부터 상당한 액수의 연금이 나온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후 2010년 9월에 연금 수령 예시를 다시 받아본 결과 가입 시 예정했던 것과 너무 차이가 났다.

가입 당시에는 60세에 450만원, 65세에 760만원(각각 1년 기준) 수준의 연금을 받는 것으로 설계돼 있었다. 그런데 2010년에 확인한 예시 금액은 60세 128만원, 65세 130만원에 불과했다. 노후 대비는커녕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오히려 손해인 상황이었다. 보험사에 항의했으나 “변동 금리에 따라 산출된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면서 저금리 기조가 두드러지고 있다. 연금보험 실수령액이 가입 당시 예정된 것에 비해 현저히 적은 사례가 속출하는 이유다. 김씨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앞으로 그가 손에 쥘 월 10만원 정도의 돈은 담뱃값에 불과하다. 김씨는 “15년이 흐르는 동안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됐다면 그 사이에 위험성을 알려줬어야 하지 않나. 보험사에서 고객 관리 책임을 소홀히 한 것”이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모르는 새 ‘사업비’ 빼가는 변액보험

부산에 사는 50대 박 아무개씨는 2007년 6월 1억원을 일시 납부해 변액연금보험에 가입했다. 별다른 노후 보장 수단이 없었던 박씨는 갑작스레 그 필요성을 자각한 유형이다. 그는 매달 조금씩 돈을 붓는 연금보험으로 노후를 설계하기에는 늦었다고 판단했다. 박씨에게는 한꺼번에 목돈을 거치해놓고 수익을 기대하는 변액보험이 적합했다.

변액보험에는 일정 비율의 보험 사업비가 포함된다. 당시 보험 판매원은 “일시납 1억원에 대한 보험 사업비는 최초 계약 시 3.55% 한 번만 차감한다”고 설명했다. 박씨의 경우 355만원이었다. 그런데 2012년 초 자신의 보험에 궁금증이 생겨 확인해본 결과 사업비가 4년 6개월 동안 매월 빠져나갔다. 이때까지 투입된 보험 사업비는 무려 820만원(원금 대비 8.2%)에 달했다.

박씨는 담당 보험설계사에게 문의했다. 계약 당시의 자료를 제시하며 판매원을 추궁했다. 그제야 회사는 “보험사 문제는 없고 담당 설계사가 실수한 것”이라며 문제를 인정했다. 설계사·판매원 등이 해당 상품에 대해 서로 다르게 이해했다는 것이다. 박씨는 “중간에 확인하지 않았다면 계속 사업비가 차감됐을 것이다. 자기가 든 보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고스란히 돈을 떼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보험 판매원에게 항의할 수 있었던 박씨는 나은 경우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3월 “변액보험 상품의 전화 마케팅, 인터넷 판매 등 비대면 채널을 통한 판매 시 불완전 판매가 있었다는 민원이 최근 1년 사이 급증했다”고 발표했다. 보험사에서 계약 관련 정보를 제대로 공지하지 않는 바람에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다는 뜻이다. 보험금을 10여 년간 보험사측에 거치시켜두는 형태이기 때문에 피해를 조기에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 보험료 두 배씩 뛰는 갱신형 보험

광주광역시에 사는 김 아무개씨는 2008년 10월 갱신형 실손보험에 가입했다. 3년이 지났을 때 보험 갱신 안내장을 본 김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주계약에 딸린 특약 보험료가 두 배 가까이 올랐기 때문이다. 김씨는 갱신 시 보험료가 인상될 수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많이 오를 줄은 몰랐다. 보험사에 문의했더니 회사의 손해율이 적용됐고, 김씨의 나이가 더 들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실손보험은 노후의 잔병치레를 우려하는 중·장년 세대가 최근 선호하는 상품이다. 각종 매체에서도 이들을 겨냥한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 갱신형이라는 조건이 결합한다. 가입 시에는 저렴한 조건으로 중·장년층 소비자를 유혹한다. 그러나 3~5년 후 갱신할 때 보험료가 크게 뛴다는 것이 함정이다.

최근까지 갱신보험업체에서 일했던 한 영업직원은 “소비자는 이런 식으로 몇 번 갱신되면 납입 금액이 감당할 수 없을 수준이 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이때 보험사는 은근히 보험 해약을 권유한다. 중도 해약한 소비자는 이미 납입한 보험료 중 상당액을 위약금조로 빼앗긴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 볼 것이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상의 사례들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보험 계약 당시 몰랐거나 무심코 지나쳤던 정보가 나중에 화근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 위험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쪽은 결국 보험사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이미 포화 상태인 시장에서 치열한 실적 경쟁을 벌이고 있다. 소비자에게 불리한 정보는 은폐되기 십상이다. 가입자의 이익에 부응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다.

민원 통계를 살펴봐도 그렇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가장 많았던 보험 민원 유형은 ‘보험 모집’ 부문이었다. ‘계약 당시 상품 설명 불충분’ ‘보험 요율 부당 적용’ ‘보험 계약 중도 해지 시 보험료 환급 기피’ 등에 대한 민원이 전체의 27.8%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보험업계의 구조적 문제인 탓에 단속이나 제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분석한다. 보험사들의 공격적인 외형 경쟁 구조가 해소되지 않고서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조 탓만 하고 있기에는 노후 설계를 완전히 망치게 되는 소비자 피해가 너무 크다.

이기욱 보험소비자연맹 보험국장은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계약할 때 관련 조건을 꼼꼼히 살펴보고 다른 보험사 상품들과 비교해본 후 결정하는 것이 좋다. 그 이후에도 보험의 진행 상황을 주기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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