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최경환이 몸을 푼다
  • 차윤주│뉴스1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06.0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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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향해 목소리 높이는 새누리당…내부 권력 투쟁 점화

새누리당이 한결 까칠해졌다. 정부 출범 초기 청와대 눈치만 보던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할 말은 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여당의 입이 터진 배경으로는 김무성 의원의 존재론이 회자된다. 김 의원의 존재 자체가 새누리당 분위기 반전의 배후란 얘기다. 반면 청와대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청와대 파워의 핵심인 허태열 비서실장과 이정현 정무수석의 행동반경은 급속히 위축되는 모양새다. 표면적으로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스캔들이 원인인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김무성·최경환 두 거물의 등판으로 인한 급속한 당으로의 권력 이동에 긴장하는 눈치다.

5월29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장. 김무성 의원은 여전히 ‘낮은’ 자세를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발언 순서가 돌아와도 당직자가 건네는 마이크를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사양하고 입을 열지 않았다. 이날 황우여 대표를 위시해 최경환 원내대표, 서병수 전 사무총장 등이 라오스 탈북자 북송, 진주의료원 폐업, 통상임금 문제, 일본의 역사 왜곡 망언 등 갖가지 현안에 대해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높였지만, 김 의원은 눈을 지그시 감거나, 두 손을 모은 모습으로 다른 참석자의 말을 듣기만 했다. 마치 ‘집권당 오너’의 포스가 느껴지는 듯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가운데)이 5월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병석 국회부의장(왼쪽)이 가운데 자리를 권하자 사양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이런 김 의원이 입을 연 때가 있었다. 김 의원은 윤 전 대변인 성추행 사건 파장이 한창일 때인 5월16일 청와대 참모들을 향해 “금주 선언을 하라”고 요구했다. 윤 전 대변인 사건이 금주로 해결될 게 아니라는 것을 모를 그가 아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견제구였다. 김 의원은 원내 복귀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을 낙천시킨 공천 제도와 당내 계파의 문제점, 4년 중임 대통령제로의 개헌 필요성을 주장했다. 몸을 낮추는 듯하면서도 필요한 말은 콕 집어서 했다. 모두 ‘박근혜’라는 과녁을 향한 쓴소리다. 박 대통령과 김 의원 사이의 기 싸움이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지난 4·24 재보선 당선 직후 새누리당의 차기 지도자 내지는 여권의 차기 대권 주자급으로까지 뜨는 분위기가 형성됐는데도 정치 ‘고단수’인 김 의원은 짐짓 모른 체하고 있다. 김 의원의 한 측근은 “우리야 당연히 ‘무대’(김무성 대장의 줄임말)가 한번 분위기를 탔고 약진의 계기가 됐으니 당권도 잡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딱 뭐가 잡히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구 출신의 한 새누리당 의원은 “당내에 차기 주자가 없어서 뜨고 있긴 하지만 김 의원은 스토리가 없다”고 평가 절하하기도 했다.

“김무성, 큰 꿈을 위한 행보 준비 중”

김 의원이 큰 꿈을 위한 행보를 일찌감치 준비했다는 증언도 있다. 대선이 끝난 직후 무관(無冠)으로 돌아간 김 의원의 모습을 목격한 한 대학교수의 말이다. 북한 문제에 정통한 이 교수는 지난 2월 어느 날 박 대통령의 중국 특사로 중국을 다녀온 김 의원의 초대를 받았다. 이 교수는 “김 의원을 필두로 20여 명이 모여 북한 정세와 대북 정책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다”며 “여의도 근처 난방도 안 되는 허름한 건물에서 2시간 넘게 내 얘기를 듣고 토의했다. 매우 진지한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이때 김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낙천했던 이들을 포함해 가까운 이들과 2주일에 한 번씩 모여 공부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예전의 김무성이 아니었다. 정권을 잡았다는 기세가 전혀 없고 몸에서 힘을 빼고 자세를 낮춘 모습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김 의원이 김영삼 전 대통령을 따라다닐 때 체화한 ‘낭만 정치’ 시대의 때를 벗고 새 시대를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원내 권력을 장악한 최경환 원내대표에게서는 당에 어른거리는 김무성 그림자를 걷어내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최 원내대표의 고민은 당내 영향력에 비해 좀처럼 뜨지 않는 대중적 인기도다. 여론조사 기관 리서치뷰가 최근 정례적으로 발표하는 여론조사에서 김 의원이 새누리당의 차기 지도자감 1위를 질주하고 있는 것과 달리 최 원내대표는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묘한 긴장 관계도 연출된다. 원내대표 경선 때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됐으나 지금은 달라졌다. 원내대표 경선 전 국회 주변에서는 김 의원 쪽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가 최 원내대표의 비서실장을 내락받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최 원내대표는 당선 이후 이 인사가 아닌 강석진 전 경남 거창군수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원내 정보가 김 의원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우려한 최 원내대표의 포석이란 해석이 나왔다.

움직이는 최경환, 사라진 이정현

최 원내대표가 청와대에 대해 바짝 각을 세우는 모습도 주목된다. 그는 박근혜정부의 공약 가계부에 사회간접자본(SOC)을 비롯한 지방 공약 예산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았다. SOC 예산을 따오는 것은 지방 출신 의원들이 지역민들에게 인정받는 최선의 방법이다. 거시적 안목에서 예산을 다루는 중앙 정부와 티격태격해야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 여당 원내대표가 노골적인 챙기기에 나선 것이다. 최 원내대표는 당 소속 의원들이 김 의원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자임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의 귀결점은 김 의원의 그늘을 벗어난 독자 세력 형성일 것이다.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려는 듯 최 원내대표는 의도적으로라도 청와대와 힘겨루기를 계속할 태세다. ‘강한 여당’을 천명한 속내도 심상찮다. 대야 관계에서 제자리를 찾겠다는 뜻으로 읽히지만, 돌아가는 국회 사정이 대정부 투쟁에서도 강한 여당을 표방할 것처럼 해석되고 있다. 상시 당·정 체제와 6정조위원회 체제로의 원내 개편 등은 당이 국정 주도권을 쥐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 의원과 최 원내대표의 부상에 청와대는 화들짝 놀란 분위기다. 당·청 관계의 총책인 이정현 정무수석의 움직임부터 둔해졌다. 특임장관 ‘격(格)’으로 국회를 부지런히 드나들던 모습이 실종됐다. 윤 전 대변인 사태 후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이 수석을 향한 당내의 불편한 목소리도 예사롭지 않다. 최근 만난 새누리당의 두 고위 당직자는 각각 “꼴 보기 싫다. 숨어서 일해야 하는 비서가 왜 국회를 헤집고 다니느냐” “국회에 뻔질나게 드나들지만 친정은 안 찾고 야당만 만난다”고 이 수석을 비토했다. 이 수석을 겨눴지만 실상은 청와대를 향해 던지는 “당을 컨트롤하지 말라”는 목소리다.

당·청 간 긴장이 서서히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견제와 균형을 이룬 당·정·청 삼각형으로 안정된 국정 운영을 바라던 박 대통령의 구상은 헝클어지고 있다. 이미 ‘박근혜의 삼각형’은 기형이다. 청와대와 정부 쪽에 김 의원과 최 원내대표를 대적할 파워가 없다. 예상보다 빨리 여권 전체가 차기 권력을 향한 내홍에 휩싸일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끊임없이 거론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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