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뒤에 숨겨진 이빨 조심하라
  • 박승준│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
  • 승인 2013.06.0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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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보다 박 대통령에 더 우호적일까?

박근혜 대통령 취임 전인 지난 1월10일 중국 특사로 서울에 온 장즈쥔(張志軍) 당시 중국 외교부 부부장(현 국무원 대만판공실 주임)은 박 당선인을 만나 중국 철학자 펑여우란(馮友蘭, 1895~1990년)이 자신의 스승이라고 소개했다. 박 대통령이 17대 국회의원이던 2007년 3월 매일경제신문에 기고한 ‘내 삶을 바꾼 책’이라는 글에서 “부모님을 모두 총탄에 보내고 숨 쉬는 것조차 힘이 들었던 때에 인상 깊게 읽은 책이 펑여우란의 <중국철학사>”라고 썼던 것을 알고 한 말이었다. 펑여우란은 1934년에 이 책을 썼다. 1947년 장제스(蔣介石)가 마오쩌둥(毛澤東)에게 패배해 타이완 섬으로 건너갈 때 데려가려 했으나, 거부하고 대륙에 남았다. 1990년 95세로 사망하기 1년 전에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으로 다시 정리해 <중국철학사 신편>을 쓰기도 했다.

6월 말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이번이 네 번째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이던 2005년 5월과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이던 2006년 11월 중국을 방문했다. 2008년 1월에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해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만났다. 특히 2005년 7월에는 저장(浙江) 성 당서기로 한국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현 국가주석을 만난 바 있다. 당시 지방 당서기의 방한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한국 사회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이 접견함으로써 시진핑 현 국가주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2월25일 중국공산당 정치국원 겸 국무원 부총리 류옌둥(劉延東·여)에게 박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는 친서를 보냈다. 박 대통령 역시 3월14일 시진핑의 국가주석 취임을 축하하는 전문을 보냈다. 시진핑 주석은 박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박 대통령을 ‘라오 펑여우(老朋友 : 오랜 친구)’라고 표현하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 연합뉴스
시진핑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은 금물

박 대통령은 중국 대륙뿐만 아니라 타이완에서도 타이완을 잘 아는 ‘지대파(知臺派)’로 소개됐다. 박 대통령 당선 직후인 지난해 12월 타이완 중앙통신은 박 당선인을 ‘지대파’라고 소개하면서, 박 대통령이 1987년 타이완 문화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했다. 2001년에는 영남대학과 자매 관계인 타이베이(臺北) 문화대학 대학원 최고산업전략과정에서 공부한 경력을 소개했다. 박 대통령은 중국 매체들을 통해 ‘중국어를 잘하는’ 대통령으로 소개됐다.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1992년 8월 한·중 수교가 이뤄진 이래 중국을 방문하는 여섯 번째 대통령이지만, 중국에 ‘중국어를 잘하는 한국 대통령’으로 소개된 것은 박 대통령이 처음이다. 초청자인 시진핑 주석과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고, 중국어를 잘 구사하는 데다가, 타이완에서 공부한 경력도 있으며, 펑여우란의 <중국철학사>도 인상 깊게 읽은 ‘지중파(知中派)’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이번 6월 말 방문이 상당히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한국과 중국 매체에 자주 소개되고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의 기업인 방북 허용 제안을 거부하고 나선 데 대해 국내 일각에서 비판적인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김정은의 특사’ 최룡해를 맞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시선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박근혜정부가 “시진핑 주석은 북한의 김정은보다는 박 대통령에 더 우호적인 입장일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지나친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지중파’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그런 기대만큼 방중 성과를 거둘까. 박 대통령의 방중 성과, 특히 북한 문제를 놓고 중국과 벌일 협상과 관련해 그가 지중파라는 점 이외에도 시진핑의 중국이 ‘신형 대국 관계(新型 大國關係)’ 추구를 새로운 외교 정책 목표로 설정했다는 점도 기대를 갖게 해주는 대목인 것은 사실이다. 중국 외교부 정쩌광(鄭澤光) 부부장은 6월7~8일로 예정된 시진핑 주석의 미국 방문을 사전 설명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시진핑 주석과 오바마 대통령은 신형 대국 관계의 건립을 적극적으로 탐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부부장이 언급한 ‘신형 대국 관계’란 시진핑 주석이 지난해 2월 미국 방문 때 처음 언급한 중국의 새로운 외교 노선으로 중국과 미국이 상호 대국으로서 파트너임을 인식하고, 대국으로서 감당해야 할 국제적인 의무를 충실히 수행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중국은 이 신형 대국 관계 추구를 통해 미국에도 국제적인 의무 이행을 촉구하겠지만, 중국 자신도 의무를 이전보다 더 충실히 수행한다는 다짐을 이번 시진핑-오바마 회담을 통해 밝힐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그럴 경우 논리적으로 중국은, 앞으로 핵 확산 방지라는 국제 사회 의무를 다하기 위해 북한의 핵무기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6월7~8일의 시진핑-오바마 회담은 북한 핵 문제 해결에 좀 더 긍정적인 환경을 제공하게 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5월2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특사인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악수하고 있다. ⓒ Xinhua 연합
시진핑-김정은 손 맞잡고 환호할 수도

그러나 지난 1971~72년 닉슨과 마오쩌둥 그리고 키신저와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의 비밀 회담을 통해 설정해놓은 국제 정치 역학 구조, 즉 ‘한반도에서 미국과 중국이 배타적으로 이익을 공유한다’고 합의한 기본 구조는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 한국과 중국 국가수반 사이의 우호적이고 친근한 관계 때문에 여기에 커다란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성급한 관측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중국 외교는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을 팀장으로 하는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 회의를 통해 집단적인 판단을 거쳐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에, 좀 더 냉정한 관측과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더구나 6월 말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직후에 예상되는 7월27일 휴전 60주년 기념일(중국과 북한의 표현은 승전기념일)에 평양과 베이징에서 대규모 ‘승전 기념행사’가 열리고 시진핑과 김정은이 평양이든 베이징에서든 손을 맞잡고 환호하는 모습을 연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우리 외교부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2011년 11월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이 하와이 연설을 통해 태평양 건너 중국에 대한 재개입(Re-engagement) 전략으로 전통적인 중국 포위망 구축을 선언한 만큼, 앞으로도 상당 기간 미국과 중국이 갈등하는 구조를 갖게 될 것이란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친근한 친구’ 박근혜 대통령을 맞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시선이 따뜻해 보인다고 해도, 당장 북한과의 당 대 당 관계를 책임지고 있는 왕자루이(王家瑞) 당 대외연락부장, 주미 대사 출신으로 외교부 초년병 시절부터 미·중 관계를 맡아온 미국통 외교담당 국무위원 양제츠(楊潔?), 주일 대사 출신으로 총명한 눈을 번득이는 일본통 왕이(王毅) 외교부장을 비롯한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 조원들이 작성해놓은 한반도에 관한 중국의 이익 계산서가 어떤 내용인지를 회담 과정에서 면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회담이 앞으로 최소 5년 동안 두 나라를 끌고 갈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첫 공식 대면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섣불리 시진핑 주석의 따뜻한 미소에 현혹되어선 안 될 것이라는 목소리는 그래서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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