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 방사성폐기물 방치돼 있다
  • 이규대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06.0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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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 도로에서 뜯어낸 286t 임시보관소에 보관

2011년 11월 서울은 방사능 공포에 떨었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 일부 도로에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의 방사선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시간당 최고 1.4μ㏜(마이크로시버트), 서울 평균치의 약 10배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현재까지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 직속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는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철스크랩이 부적절하게 섞인 슬래그가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당시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불과 수개월이 지났을 때다.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는 빠른 속도로 증폭됐다. 노원구가 즉각 행동에 나섰다. 문제가 된 지역의 아스팔트 806t을 제거한 후 도로를 다시 포장했다. 당시 걷어낸 아스팔트 중 478t 상당이 방사성폐기물이었다.

노원구는 이것을 일반폐기물과 구분한 후 구청 뒤편에 마련된 임시 저장 시설에 보관했다. 규정상 방사성폐기물은 중·저준위 폐기물을 관리하는 시설로 옮겨야 한다. 예정대로라면 지금 방사성폐기물 전량은 경북 경주의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이하 방폐장)에 있어야 한다.

노원구청 뒤 임시보관소에 있는 방사성폐기물. ⓒ 시사저널 이종현
폐기물 처리 둘러싸고 각종 난맥 드러나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당시 방사성 폐기물 중 상당수는 아직도 노원구청 뒤편 고가도로 아래 임시보관소에 있었다. 지난해 12월 192t만 경주 방폐장으로 옮겨지고, 나머지 286t은 여전히 도로 한쪽에 방치돼 있다. 기자가 현장을 찾아가보니 컨테이너에 밀봉된 채로 파란 비닐에 덮여 있는 상태였다.

2011년 갑작스레 생겨난 대규모의 방사성폐기물은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온갖 문제를 야기했다. 당시는 하루아침에 400여 t의 방사성폐기물이 튀어나온 상황이었다. 이에 대응하는 사회적 로드맵이나 합의된 기준은 없었다. 행정상의 논란, 사회적인 갈등이 뒤따랐다.

‘폐기물 처리는 누가 담당해야 하는가’ ‘폐기물 보관 및 관리에 들어갈 80억원의 예산은 어디에서 조달해야 하는가’ 등을 두고 정부와 지자체가 갈등을 빚었다. 노원구는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비롯한 중앙 정부에서 폐기물 처리에 필요한 조치를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지식경제부는 해당 도로 관리 기관인 지자체가 부담해야 한다고 맞섰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가 폐기물 처리 책임을 둘러싸고 허둥대는 사이 폐기물은 8개월 동안 갈 곳을 잃었다. 지난해 8월 법제처가 ‘지식경제부가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금을 쓰는 게 타당하다’는 유권 해석을 내린 뒤에야 일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후 관련 행정 절차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3개월이 더 흘렀다. 11월에 접어들어서야 경주 방폐장으로 이전 작업이 시작됐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었다. 경주 주민들은 폐기물 이송에 크게 반발했다. 주민들은 정부가 약속을 어긴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원전 방폐장 안전성 확보를 위한 경주시민연대’는 “주민 동의 없이 추가 반입을 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결정을 비판했다.

과거 경주 주민들은 89.5%라는 압도적인 찬성률로 방폐장을 유치했다. 지역 개발 및 발전을 위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2010년 예정이던 방폐장 준공이 두 차례나 연기돼 2014년까지 미뤄졌다. 안전성 문제가 암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방폐장을 지지했던 주민들 사이에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기치 않았던 폐기물이 새로 반입되자 쌓인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특히 방폐장이 위치한 동(東)경주 지역 주민들의 반감이 컸다고 전해진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이상기 경주핵안전연대 공동대표는 “원전 배출 폐기물만을 처리해 저장하리라 예상했던 지역 주민들로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방폐장 준공이 늦어지며 안전성 논란이 확산되는 때와 맞물려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고 설명했다.

12월 말까지 갈등이 이어졌다. 방폐장 입구에서 천막을 치고 반입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3일간 대치하기까지 했다. 갈등 끝에 12월30일 절충안이 합의됐다. 이날 새벽까지 도착한 192t만 반입해 공사 현장 부근의 ‘인수 저장 시설’에 임시 보관하기로 한 것이다. 나머지는 반입이 보류됐다. 그 결과 나머지 478t의 폐기물은 노원구청 뒤편에 지금까지 남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폐기물은 영영 이곳 임시보관소에 방치되는 것일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원자력안전위원회 관계자는 “지역적인 문제로 인해 지연되고 있을 뿐이다. 그 문제가 해결되면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경주 방폐장으로) 옮기려 한다”고 밝혔다. 경주 지역 사회에서도 방폐장이 준공되는 내년 6월 이후 해당 폐기물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상기 공동대표는 “현재로서는 경주 방폐장에서 처리해 보관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지 않나. 방폐장 시설이 완공돼 안전성 문제가 해결되면 반입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2년 전 서울 월계동에서 감지된 방사선은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노출한 꼴이 됐다. ‘방사성폐기물 처리’가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민감한 문제라는 것이 다시금 확인됐기 때문이다.

노원구청 “언제 방폐장 갈지 모른다”

월계동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2월 서울 마천동의 일부 도로에서도 기준치 이상의 방사선이 검출됐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그 수치가 방사성폐기물 분류 기준을 충족시킬 정도로 높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환경단체 쪽에서는 “기준치 이하더라도 시민 건강을 위협할 수준일 수 있다”고 맞섰다. 이런 상황에서 마천동 도로의 폐기물이 인천 수도권쓰레기매립지에 단순 매립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다.

방사선은 원자력 발전에 활용되는 등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물질이다. 그러나 잘못 사용되면 인체나 환경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 그래서 신규 원전 부지 선정, 방사성폐기물 처리 등은 종종 심각한 갈등을 유발하곤 한다.

인근을 지나는 한 주민에게 ‘방사성폐기물이 도로에 보관 중인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위험한 것이 왜 아직도 도로에 있는 것이냐, 빨리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지 안 그러면 주민들이 불안하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노원구청 관계자는 “우리 구는 사실상 땅만 빌려준 것이다. 안전관리와 폐기물 처리는 최종적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할 것이다. 우리도 언제 경주 방폐장으로 갈지 모른다. 방사능 수치 검사를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어 큰 문제는 없다”고 강조했다.

지금 한국은 ‘원전 확대’를 에너지 정책의 중심 기조로 삼고 있다. 행정 당국은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부작용을 통제할 만한 능력이 있는 것일까. 월계동 방사성폐기물을 둘러싼 각종 난맥상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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