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의 괴성에 주눅들지 않는다
  • 하재근│문화평론가 ()
  • 승인 2013.06.0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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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영화·출판 등 4050세대 소비 크게 늘어

그동안 뮤지컬은 20~30대 여성이 주도했다. 2004년 조승우의 <지킬 앤 하이드>가 매진을 기록한 이후 젊은 배우의 스타성에 매료된 젊은 여성들이 객석을 주로 채웠다. 하지만 이젠 40대 이상의 관객들이 흥행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오페라의 유령> <위키드> <맘마미아> <레베카> 등 대형 뮤지컬의 경우 40대 이상 관객의 비율이 20%를 넘어섰다. 낮 공연에서는 이 비율이 30%까지 치솟는다. 이에 따라 대형 뮤지컬이 성공하려면 40~50대 관객을 잡아야 한다는 불문율까지 생겨났다.

중년 관객을 잡기 위한 마케팅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브로드웨이 42번가>는 특정 요일의 저녁 8시 공연을 아예 없애고 낮 공연을 마련했다고 한다. 인터넷 예매가 낯선 중년들을 위해서 원스톱 전화 예매 서비스를 하는 곳도 생겨났다. 이 밖에 엄마 동반 시 할인 혜택이라든가, 꽃중년 할인 등 중년 관객 유치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출현하고 있다. 40~50대 여성의 동창회나 계모임도 뮤지컬 관람으로 연결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를 겨냥해 중·장년층 단체 관람을 위한 ‘문화 콜버스’ 서비스도 생겨났다.

퓨전 국악 공연을 관람한 중년 관객들이 공연장 입구에서 출연자들과 뒤풀이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조철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는 4050세대 영향력

뮤지컬은 비싸기 때문에 88만원 세대인 젊은 사람이 쉽게 관람할 수 없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중·장년층 비중이 커지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돈 문제만으로 4050세대의 등장을 다 설명하긴 어렵다.

전통적으로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세대가 가장 쉽게 향유했던 문화 콘텐츠는 바로 영화다. 영화는 2030세대의 굳건한 텃밭으로 여겨졌는데 이 분야에서도 4050세대의 영향력 확대가 감지된다.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의 2012년 영화 예매 관객 중 40대가 25.8%를 차지하면서 20대(20.1%)를 앞질렀다.

최근 잇따라 대형 흥행작이 터졌는데 여기에도 4050세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 <7번방의 선물>의 경우 40대 이상의 예매율이 40%를 넘어섰다. <레미제라블>은 40대 이상 예매율이 가장 높았다. 뮤지컬에서만 이례적으로 중·장년 열풍이 나타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 전까지 상대적으로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중·장년층이 새롭게 문화 소비자 주력군으로 가세한 결과 뮤지컬을 포함한 대중문화 전체 영역에서 중·장년 열풍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형 흥행작들뿐 아니라 예술영화 쪽에서도 4050세대의 영향력이 나타난다. 서울 강남의 압구정 CGV(무비꼴라쥬 프로그램)이나 강북 씨네큐브 등에 중년 주부 관객이 줄을 잇는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오전 일찍 영화를 보고 가벼운 식사나 차를 마시는 주부 모임 패턴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대중음악계도 마찬가지. 매진 사례를 기록한 들국화 콘서트의 경우 40대 이상이 50%에 달했다. 대형 콘서트는 4050 관객의 움직임을 무시하기 힘든 분위기다.

20만장 이상 판매된 조용필 음반 열풍의 주역도 4050이었다. 중년층이 강력한 구매층으로 등장하자 대형 마트에 CD 특별 판매대가 설치되기도 했다. 요 몇 년 사이 나타난 복고나 아날로그 신드롬도 중년층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4050세대는 아이돌 세대가 주도했던 팬덤 문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40대 팬들이 이모팬·누나팬 등으로 활동하면서 스타에게 보내는 선물의 가격 단위가 달라졌다고 한다. 촬영 현장에 100인분이 넘는 분량의 밥차를 보내는 사례도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욘사마 한류가 이런 일본의 중년 팬덤으로 인해 발생했던 것인데 한국도 그런 흐름으로 가는 셈이다.

패션·미용업계에서도 4050세대의 영향력이 커진다. 요즘엔 나이를 먹어도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중년 남성을 일컬어 ‘노무족(NOMU족, No More Uncle)’이라고 하는데, 이들을 타깃으로 한 패션 잡지나 화장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비슷한 경향의 중년 여성은 ‘나우족(New Old Women)’이라고 하는데, 노무족과 나우족이 앞으로 패션·미용업계의 큰손이 될 전망이다.

출판 시장에서도 40대의 입지가 커졌다. 최근 ‘40대’ ‘마흔’을 키워드로 한 책들이 잇따라 발간됐다. 교보문고의 연령대별 판매 추이에서는 30대 이하가 2010년 68.7%에서 2012년 63.8%로 하락한 데 반해 40대 이상은 31.3%에서 36.2%로 상승했다.

방송 쪽에서도 4050세대가 시청률을 좌우하는 주 시청자층으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종합편성 채널은 중년 특화 방송이 돼가는 분위기다. 지상파 프로그램도 점점 중년 시청자 기호에 맞춰지고 있다. 정치권에선 한동안 2030세대가 최대의 화두였지만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50대가 태풍의 핵이 됐다. 중년의 반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전 세대와는 다른 지금의 중년

4050세대가 돌풍을 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는 기본적으로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50대는 원조 베이비붐 세대이고, 40대는 2차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한다. 베이비붐이란 아이가 많이 태어났다는 뜻이니 당연히 인구가 많을 수밖에 없고, 그 많은 사람이 움직이면 사회적 영향력이 커진다. 50대 베이비붐 세대는 지난 대선 때 그 위력을 과시했다. 그들이 사회생활을 통해 경제적 여유까지 가진 상태에서 대중문화 소비자층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기성세대는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만 했지, 문화적 향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반면 베이비붐 세대는 사고방식이 조금 다르다. 원조 베이비붐 세대인 50대는 그 전 세대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산업전사로 청춘을 보내긴 했지만 동시에 통기타 청년 문화를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또 1987년 6월 항쟁 때 넥타이 부대로 참여했던 세대로, 현대적인 개인주의 의식에도 눈을 떴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화적 향유에 그 전 세대보다는 적극적이고, 문화 활동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려는 경향도 강하다.

40대 2차 베이비부머는 서구 대중문화와 소비문화의 홍수를 온몸으로 경험하면서 청춘을 보낸 세대다. 이들이 청년기를 맞았을 때 기성세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별종이라면서 ‘X세대’라고까지 불렀다. 이들은 문화적 욕구가 그 이전 세대 누구보다도 크고, 문화적 자의식도 강하다. 그런 이들이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힘이 강할 수밖에 없다.

4050세대는 그동안 정신없이 전개된 디지털의 습격과 2030세대의 괴성에 숨죽이고 있었지만, 이젠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다. 그에 따라 곳곳에서 지각 변동이 일어나는 것인데, 당분간 4050세대의 영향력 확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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