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관 사업에 악취 진동한다
  • 거제=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06.1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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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산업개발-거제시 커넥션 의혹…공사비 45억 편취한 현산에 특혜

현대산업개발(현산)은 경남 거제시가 발주한 하수관거 공사를 진행하면서 45억원을 편취했고, 이로 인해 거제시로부터 입찰 참가 제한 조치를 당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거제시가 입찰 참가 제한 기간을 5개월에서 1개월로 ‘확’ 줄여줬다. 일종의 면죄부를 준 셈이다. 지역에서는 ‘현산-거제시 커넥션’을 놓고 구구한 추측이 나돌고 있다.

전모를 알기 위해 시곗바늘을 2007년 말로 되돌려보자. 현산은 경남 거제시 장승포동 하수관거 정비 사업을 맡아 진행했다. 사업비는 162억원 규모였다. 이 과정에서 ‘현산이 서류를 조작해 수십억 원의 공사비를 편취했다’는 제보가 경찰 등에 접수됐다. 경남지방경찰청은 2008년 말 현산 직원과 하청업체 대표, 감리업체 소속 감리사 등 10여 명을 구속했다.

거제시 계약심의위원회는 2009년 9월 현산에 5개월간 입찰 참가 제한 조치를 내렸다. 건설업체 입장에서는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이에 맞서 현산은 행정처분 취소와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현대산업개발 본사가 위치한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 ⓒ 시사저널 이상민
현산 직원들 “잘 부탁한다” 로비

법원은 1심에서 현산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에서는 거제시가 승소했다. 대법원 최종 선고는 6월에 나올 예정이다.

그런데 대법원 선고를 앞둔 지난 4월, 현산은 행정처분 재심의 민원을 거제시에 제기했고 거제시는 이를 수용했다. “거제시가 2심에서 승소한 상황에서 왜 민원을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는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다. 지찬혁 통영거제환경연합 사무국장은 “대기업과 지자체의 전형적인 커넥션 사례”라고 비난했다. 그는 “현산은 행정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인 4년 가까이 입찰 제한 처분을 받지 않았다”며 “행정소송이 여의치 않자 입장을 바꿔 재심의 민원이라는 꼼수를 썼다. 거제시 역시 지역 개발 사업에 대한 현산의 현금 지원 약속을 받고 기존의 입장을 번복했다”고 지적했다. 

현산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5개월만 공공사업의 입찰을 제한받아도 1조원 이상의 수주 손실이 발생한다. 45억원의 부당 이익도 거제시에 반납한 만큼 재심의 민원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며 “우리 회사와 같이 5개월 입찰 제한을 받았던 감리업체 두 곳도 거제시로부터 면제를 받았다. 현산만 행정처분을 유지하는 것은 역차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산·거제시 “지역 경제 배려 차원” 해명

이 관계자가 말한 감리업체 두 곳에 대해

<시사저널>이 확인한 결과, 2012년 1월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감면 처분을 받았다. 거제시의 결정과는 무관했다. 오히려 이전에 문제가 된 업체들은 현산보다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쓰레기 처리업체인 ㅌ사는 2007년 2억6000만원의 부당 이익을 챙겼다가 11개월간 입찰을 제한받았다. ㅂ사의 경우 1억6000만원만 챙겼음에도 6개월간의 제재를 받았다.

현산에 대한 입찰 제한 기간 감면을 놓고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행규 거제시의회 의원은 “현산 역시 엄격하게 법률을 적용했다면 1년 1개월까지 입찰 제한을 받을 수 있었다”며 “처분이 가혹하다는 주장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거제시측은 “기업에 대한 고려도 있었다”고 솔직히 시인했다. 거제시청 회계과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처리하기에 부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현산에서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각계 인사들의 의견과 고문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진행한 만큼 특혜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민원 재심의 자문위원회’에 참석한 인사의 주장은 다르다. 이 인사는 “위원회 설치나 운영에 관한 법률적 근거가 없어 첫 모임부터 큰소리가 났다”며 “결국 시장이 직접 건넨 위촉장을 반납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되지도 않았는데 입찰 제한 기간을 줄여줬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자문위원 명단이 현산측에 유출되면서 현산 직원들이 자문위원들을 접촉해 로비를 벌였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자문위원은 “현산 임원이 ‘지역 언론은 이미 포섭해두었다. 잘 부탁한다’며 찾아왔다”고 말했다. 현산에 대한 특혜 의혹과 함께 배후 세력에 대해서도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거제시측은 “금시초문이다”라면서도 “문서가 유출된 사실이 있는지 조사해보겠다”고 말했다. 

 

청탁성 전화를 폭로한 이행규 거제시의원. ⓒ 시사저널 전영기
현산에 대한 특혜성 행정처분 감면 조치와 관련해 나오는 의문은 또 있다. 이행규 거제시의원은 “민원 재심의 자문위원회 개최를 앞두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야당 중진 인사’의 측근인 ㄱ씨로부터 두 차례 전화를 받았다”며 “ㄱ씨는 나에게 야당 중진 인사가 ‘하수관거 공사와 관련해 이 의원에게 (자문위원회에서 현산 입장대로 처리되도록) 부탁해달라’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한마디로 ‘야당 중진 인사’가 이 의원을 회유하려 했다는 주장이다.

‘야당 중진 인사’가 실제로 현산 문제에 깊숙이 개입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의원에게 전화를 했던 ㄱ씨도 6월6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당시 어떤 상황인지 알아보기 위해 전화했다”면서 청탁 의혹을 부인했다. ㄱ씨는 “야당 중진 인사의 측근 ㄴ씨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야당 중진 인사의 특보 출신인 ㄷ씨가 직접 거제시로 내려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ㄷ씨 역시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산 간부의 부탁으로 거제에 내려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야당 중진 인사와 이 문제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현재 별도의 감사를 준비 중이다. 그는 “현산 임원이 자문위원회를 하루 앞두고 ‘대외 주의’라고 적힌 내부 문건을 들고 찾아왔다. 상당수 자문위원들에게도 현산 직원이 찾아와 부탁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현산의 사례가 선례로 작용할 경우 부실 공사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면서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식으로 넘어간다면 거제시를 포함한 33조원 규모의 국책 사업인 전국 하수관거 사업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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