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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피플’의 절규 “이제는 어디로”

EU, 솅겐 조약 개정으로 난민과 구직자에 국경 걸어 잠그기

강성운│독일 통신원 ㅣ 승인 2013.06.12(Wed) 14:2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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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각국이 문단속에 나섰다. 5월30일 EU(유럽연합) 회원국과 유럽의회, 유럽위원회는 2년여 간의 논쟁 끝에 솅겐 조약 개정에 합의했다. 솅겐 조약은 가입국 간 출입국 절차를 간소화해 통행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다. 1985년 체결되어 현재는 유럽 26개 국가가 가입해 있다. 그동안 유럽 시민들은 물론 여행자들도 이 조약의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당장 내년부터 유럽 여행을 하면서 국경을 넘을 때마다 여권을 꺼내들어야 할 판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솅겐 가입국도 최대 2년 동안 국경 검문을 실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난민 대량 발생 등 응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만 엄격한 기준에 따라 EU의 동의를 얻어 최후의 수단으로 국경 검문을 실시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EU 내부에서도 ‘응급 상황에 관한 부분을 정확히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나라든 임의로 국경을 걸어 잠글 수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유로화와 함께 ‘하나의 유럽’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솅겐 조약이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처지에 놓였다.

   
지난 5월13일 아프리카 출신 난민 신청자가 그리스의 난민심의회 사무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AP연합
EU 국가들, ‘아랍의 봄’ 난민들 나 몰라라

솅겐 조약이 개정된 배경에는 ‘아랍의 봄’이 있다. 장기화되고 있는 북아프리카 국가들의 민중 봉기와 내전은 해당국 국민의 삶의 터전을 빼앗았는데 이 중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이탈리아·그리스 등 EU 외곽 국가는 이미 2011년부터 북아프리카에서 탈출한 ‘보트피플’로 포화 상태가 됐다. 이탈리아의 람페두사(Lampedusa) 섬에는 리비아와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2011년에만 5만4000여 명의 난민이 몰려들었다. 섬 인구가 4500명인데 난민 수가 그 10배를 넘는다. 2011년 9월에는 구호소의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한 난민들이 람페두사 경찰, 지역 주민과 무력 충돌을 빚은 적도 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는 당시 이 섬을 방문해 “람페두사 섬 주민들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립 서비스’를 하기도 했다.

그동안 EU는 이탈리아와 그리스에 국경 수비를 철저히 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정작 두 나라가 겪고 있는 난민 문제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2월 EU의 난민기금이 동나면서 이탈리아에 있는 구호소 몇 곳이 문을 닫았다. 그러자 이탈리아는 ‘무리수’를 두었다. 난민들에게 현금 500유로와 임시 솅겐 비자를 쥐어주면서 다른 유럽 국가로 가라고 종용한 것이다. 이탈리아를 떠난 난민 중 일부는 수천 km 떨어진 독일 북부의 항구도시 함부르크까지 흘러갔다. 정황을 파악한 함부르크 시는 5월28일 “이탈리아 정부가 300여 명의 난민을 독일로 보냈다”면서 이탈리아의 무책임한 난민 떠넘기기를 비난했다. 독일의 대표적인 타블로이드 신문인 ‘빌트’도 5월29일 “이탈리아가 난민들을 단돈 500유로짜리 싸구려 물건 취급하고 있다”며 “독일 관청은 독일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이들을 부양할 것이다. 이탈리아와 달리 독일에서는 인권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원색적인 논평을 실어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이탈리아 정부도 가만있지 않았다. “우리는 난민이 이탈리아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현금과 비자를 제공한 것일 뿐”이라며 “우리는 난민에게 독일로 갈 것을 종용하지도 않았다. 비자의 유효 기간이 지나면 다시 이들을 이탈리아에 받아들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탈리아와 독일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동안 난민들은 곤란한 처지에 빠졌다. 수천 km 거리를 헛걸음한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리비아인 아포 챠세이 씨는 ‘슈피겔 온라인’과의 인터뷰에서 “EU가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다. 이탈리아는 우리를 독일로 보내고, 독일은 우리더러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라고 한다”고 양국의 무책임한 처사를 비판했다.

아랍의 봄보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EU의 이주 및 난민 정책에 있다. EU가 아닌 국가로부터 난민이 들어올 경우 이들은 최초로 도착한 국가에 머무르도록 되어 있다. 사실상 이탈리아나 그리스처럼 EU 외곽에 위치한 국가에게 난민에 대한 책임을 떠넘긴 것이나 다름없는 정책이었다. 유럽연합 녹색당의 바바라 로흐빌러 의원은 “EU가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공조는 하지 않고 오히려 솅겐 조약 개정을 통해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밀어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솅겐 조약 개정안을 관철시킨 주역은 독일의 한스-페터 프리드리히 내무장관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줄곧 “EU 역내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이유를 들어 조약 개정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그의 말보다는 “외국인이 독일의 노동 시장과 사회보장 제도에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일 것”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었다. 왜냐하면 프리드리히 장관은 EU 회원국인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의 솅겐 조약 가입에도 반대 목소리를 낸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3월 초 두 나라의 솅겐 조약 가입 여부를 두고 부정부패와 범죄 조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다. 당시 루마니아 뉴스 포털 지아레(Ziare)는 “프리드리히 장관이 두 나라의 솅겐 조약 가입을 선거전에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스트리아의 뷔너차이퉁도 “두 나라가 솅겐 조약 가입 조건을 충족했음에도 거절당했다”면서 그 배경에 의혹을 제기했다.

노동 시장 개방 두려움에 인종 차별적 발언도

‘슈피겔 온라인’은 프리드리히 장관이 독일 노동 시장 개방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내년이면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국민에 대한 취업 제한이 풀리기 때문이다. 두 나라의 솅겐 조약 가입이 거부된 직후인 3월 중순, 그는 바이에른쿠리어와 가진 인터뷰에서 “오로지 사회보장기금을 타내기 위해 독일로 오는 외국인들은 돌려보내야 한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그가 속한 보수 성향의 기독사회연맹(CSU)의 호어스트 제호퍼 총재도 유럽 소수 민족인 로마인들에 대해 “독일의 사회보장 체제에 편입하려고 한다. 끝도 없이 기생하려고 든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급기야는 자매 정당인 기독민주연맹(CDU) 출신의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이 진화에 나섰다. 가우크는 “로마인들은 차별과 박해를 피해 더 나은 삶을 찾아 고향을 떠났으며, 집단 전체를 낙인찍는 것은 수백 년 된 인종 차별과 박해를 계승하는 것”이라며 제호퍼의 발언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프리드리히가 걱정하는 노동 시장 개방에 대해 ‘슈피겔 온라인’이 분석한 결과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출신 이주민들은 오히려 독일의 노동 시장과 사회보장 체제에 ‘실’이 아닌 ‘득’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국가에서 온 이주민들의 실업률은 고작 9.6%였고, 이민자 중 11만명이 독일에 연금을 납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방 노동부는 이들을 두고 ‘엄청난 이득’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하지만 그런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전파될 수 있을까. 솅겐 조약 개정에서 보듯 유럽 국가들은 저마다 대문 단속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국경보다 마음의 벽이 훨씬 견고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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