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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반란이여, 가열차게 행군하라!”

<갑과 을의 나라>로 한국 사회 불합리한 구조 분석한 강준만 교수

조철 ㅣ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6.12(Wed) 14:4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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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갑질’이니 ‘을의 반란’이니 하는 말이 유행어처럼 나돌고 있다. 그동안 계약이나 거래, 법률문제를 다루는 문서 등에 갑과 을로 해당 기업이나 인물을 명시해왔다. 그 갑과 을은 수평적인 관계가 될 수 없고, 갑과 을 사이에서 벌어진 문제는 대부분 불평등하게 처리됐다.

항공기 내에서 여승무원을 폭행한 대기업 임원, 대리점주에게 폭언과 욕설을 퍼부은 우유회사 영업사원, 대통령을 수행하는 고위직 공무원의 성추행 등 최근 잇달아 터진 사건들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종속적인 갑을 관계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57)는 지역감정, 언론 권력, 강남 좌파 등을 이슈화하며 한국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에 천착해온 지식인이다. 그는 이번에 불거진 ‘갑과 을이 빚어낸 문제’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 강 교수는 <갑과 을의 나라>(인물과사상사 펴냄)로써 지금껏 대한민국을 지배해왔고 이제는 심각한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은 갑을 관계를 심도 있게 분석했다.

   
ⓒ 인물과사상사 제공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에 중독된 사람들

강 교수는 “갑을 관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이 유독 심할 수밖에 없는 건 100년 넘는 특별한 역사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라며 그 기원을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관존민비(官尊民卑)’라는 괴상한 말이 온 나라를 지배하면서부터라는 것이다. 관존민비는 망국의 위기가 고조되면서 자강(自强)이 생존 문제로 부각된 1900년대에 ‘사회진화론’이라는 이름으로 전성기를 맞는다. 강 교수는 “일제 강점기까지 지속된 사회진화론은 적자생존·약육강식·우승열패를 긍정했기에 오늘날 갑을 관계의 이념적 원형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갑을 관계는 한국인의 숙명인가. “그렇게 말하긴 어려우나 갑을 관계 청산이 쉽지 않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갑을 관계에서 갑이 되고자 하는 열망과 한이 한국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해온 점도 있기 때문이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있다. 강 교수는 이 말을 한국 사회가 갑을 관계에 중독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로 들었다. 이 말은 한국에 한국식 개인주의를 만연하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강 교수는 “한국의 개인주의는 개인의 존중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식의 자구 전략에서 비롯됐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국의 근현대사가 ‘세상엔 도둑놈과 강도 천지이며 믿을 건 나와 내 가족밖에 없다’는 걸 모든 국민에게 풍부한 시청각 자료로 교육시켜온 결과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은 바로 이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방식에 크게 의존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국인 다수에게 갑을 관계는 이익 차원의 개념일 뿐만 아니라 ‘을 위에 군림하는 맛’이라는 인정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삶의 기본 방식이 됐다는 것이다.

이는 시민사회를 억압하면서 파생된 것이었기에 기존 관존민비를 더욱 강고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게다가 3공화국에서 6공화국에 이르는 동안 진행된 관료 조직의 ‘정치적 도구화’는 관료 조직이 정권에 더욱 충성을 바치게 만들었는데, 이런 관계를 기반으로 관료 조직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강 교수는 “관존민비에서 출발한 갑을 관계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뜯어먹기로 자리 잡았다. 이 뜯어먹기 관행이 바뀔 수 있을까. 결국 갑을 관계는 한국 사회의 삶의 방식과 연결되는 문제다. 우리 삶이 다른 사람한테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라면 무엇으로 인정받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뜯어먹기, 이것이 갑을 관계의 적나라한 얼굴인가. 자신을 을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도 갑을 관계는 어떻게 대한민국을 지배할 수 있었을까. 결국 ‘을의 반란’을 불러왔고, 갑을 관계가 만연한 사회를 방치해온 정치도 뒤늦게 각성한 양 분위기를 ‘갑을 관계 타파’로 몰아가고 있다. 그런데 갑을 관계를 타파한다고 해도 그 이후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강 교수는 갑을 관계 타파 이전에 주의할 것이 있다고 설명했다.

“공익 차원에서 갑을 관계 타파 생각할 때”

“전근대, 근대, 탈근대의 특징이 공존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한국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러나 갑을 관계를 지속해나가는 건 을뿐만 아니라 갑의 성장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갑을 관계의 타파를 정의나 도덕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이익이 되는 성장과 혁신 차원에서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강 교수는 이에 덧붙여 갑을 관계를 ‘언더도그마(underdogma)’로 보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며, 그런 이해는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언더도그마는 미국의 보수 운동 단체인 티파티의 전략가인 마이클 프렐이 만든 말인데, 힘이 약한 사람이 힘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하고 고결하며, 힘이 강한 사람은 힘이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믿음을 가리킨다.

언더도그마는 단순히 약자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힘이 약하다는 이유 때문에 무조건 약자 편에 서고 그 약자에게 선함과 고결함을 부여하는 것이다. 강 교수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갑을 관계는 그런 언더도그마와는 차원을 달리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우선 갑이 을에게 저지르는 횡포의 범위가 넓고 그 정도가 심하다. 그렇지만 ‘을의 반란’이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언더도그마로 전락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으로 ‘증오의 종언’을 제시해왔다. 갑을 관계에서 표출된 증오가 ‘을의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데, 이 ‘을의 반란’이 ‘증오의 종언’을 향해 나아가는 걸 전제로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시대정신이라는 것이다. 다른 해법을 찾기에는 갑을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인가. 증오의 종언이 시대정신이라는 강 교수. 그래서 그는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외쳤다. “을의 반란이여, 더욱 가열차게 행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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