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검찰의 굴레 벗어 던진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3.06.1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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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총장은 어떤 인물인가

“채동욱 총장에게는 뇌성마비로 22년을 살다가 4년 전 세상을 먼저 떠난 맏딸이 있다. 채 총장이 과거 평검사 시절 지방에 근무할 때 냉방 관사에서 살았는데 당시 두 살이었던 그 딸이 심한 감기에 걸려 패혈증으로 번지면서 뇌성마비가 되었다고 한다. 부부 모임 때면 채 총장은 항상 딸을 데리고 나왔는데 보통 사람들 같으면 감추고 싶었을 일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이가 아빠 친구에게 떼를 쓰고 꼬집고 우는 일이 잦아 모임을 할 수 없게 되어도 한 번도 아이를 야단치지 않고 그때마다 품에서 머리빗을 꺼내 아이의 머리를 빗어주면 그제야 아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다고 한다. 의료진이 5년밖에 살 수 없다고 했던 그 딸이 22년이나 생존했던 것은 채 총장의 지극한 사랑 덕분이었다. 검찰 출입기자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일이지만 채 총장은 딸아이 이야기를 앞세울 수 없다며 기사화를 극구 만류했고 모든 언론이 이에 공감해 이를 기사화하지 않았다고 한다. 채 총장은 당시 문상객 인사에 ‘짧게 살다 간 딸의 순수한 삶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인간의 삶을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3월 말.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가 기자에게 전해준 채 총장 관련 미담이다. 당시 이 내용은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며 주변에 알려지기도 했다. 검찰총장 청문회에 나선 야당의 태도는 확연히 예전과 달랐다. 법조계 출신인 한 민주당 의원은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더라”고 말했다. 그래서 당시 채 총장에게 붙은 별명이 ‘파도남’이다. 청문회 분위기는 전례 없이 좋았다. 오히려 야당 의원들이 “열심히 해보라”며 격려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지난해 1월6일 당시 한상대 검찰총장과 채동욱 대검 차장(오른쪽)이 점심 식사를 위해 대검찰청 식당으로 가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특수통 라인 수장으로 내부 신망 얻어

채동욱 총장이 검찰의 39번째 수장에 오르는 과정이 평탄치만은 않았다. 지난해 말 검찰은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김광준 전 부장검사의 뇌물 수수 사건, 전 아무개 전 검사의 성 스캔들이 연이어 터졌다. 여기에 당시 한상대 검찰총장과 최재경 중수부장 간에 파워게임까지 벌어졌다. 이른바 ‘검란(檢亂)’이다. 한 총장은 중수부를 폐지하려고 했고, 이에 최 중수부장을 중심으로 한 특수통들이 들고 일어났다. 하지만 사실 특수통 라인의 수장은 채동욱 당시 대검 차장이었다. 특수통 라인들은 결국 한 총장을 불명예 퇴진시켰다. 특수통 라인도 상처를 입었다. 채 차장은 서울고검장으로 옮겨 갔고, 대신 김진태 당시 서울고검장이 대검 차장으로 올라오면서 총장 권한대행을 맡았다. 최 중수부장은 전주지검장으로 내려갔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정부로 권력이 이양되던 시기인 2월. 채동욱 총장은 당시 차기 검찰총장 후보 3인 중 한 명에 포함되기는 했지만 들러리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김학의 대전고검장을 밀고 있다는 게 정설이었다. 총장 대행을 무난히 수행한 김진태 차장도 유력한 후보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강원도 별장 성접대’ 스캔들이라는 돌발 변수가 터졌다. 상황이 복잡 미묘하게 돌아갔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박근혜정부는 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수 있는 무난한 인물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채 총장이 급부상했다. 원적이 호남이고, 박영선 국회 법사위원장 등 민주당측도 어느 정도 호감을 갖고 있는 인물임이 고려됐다.

무엇보다 검찰 내에서 신망이 높았다. 결국 채 총장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당은 ‘적격’ 판정을 내렸다. 2008년 18대 국회 이래 법사위에서 실시된 검찰총장 또는 법무부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야당의 적격 판정은 최초의 일이다. 검찰 내에서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특수통의 화려한 귀환”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특수통이 검찰 수장에 앉은 것은 2002년 이명재 검찰총장 이후 처음이다. 그동안 기획통·공안통이 검찰을 장악했던 것에 대해 내부 불만이 많았다. 검찰이 본연의 임무인 ‘권력 사정’보다는 ‘권력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는 불만이 그것이었다.

1982년 사법시험(24회)에 합격한 채동욱 총장은 1988년 특수2부에서 특수수사를 접한다. 1995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투입됐다. 2003년에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을 맡았다. 이때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 사건으로 여당이던 민주당의 정대철 대표를 구속했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사건을 맡아 허태학 에버랜드 사장을 기소했다. 국회의원을 지낸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전 부위원장의 공금 유용 사건을 처리한 이도 채 총장이다.

2006년 12월 채동욱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앞쪽)이 외환은행 불법 매각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도대로 수사하라” 지시

2006년에는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다시 특수수사에 복귀했다. 이때 윤대진(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 윤석열(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 사건 특별수사팀 팀장), 최재경(현 대구지검장) 등에게 특수수사를 가르치기도 했다. 대검 수사기획관 시절 중수부의 현대차 비자금 사건을 맡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구속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 역시 그의 손을 거쳤다.

검사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지만 검찰총장으로서는 운신의 폭이 좁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박근혜정부가 점찍었던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채 총장은 지난해 검란 사태 당시 검찰 2인자인 대검 차장이었다. 채 총장이 그때 검찰의 수장인 한상대 총장과 맞서 검란의 한가운데 있었다는 점은 총장 인선 때부터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가 검찰총장이 되면 통제하기 힘들 것이란 생각을 가진 여권 인사가 꽤 있었다. 실제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채동욱 검찰총장은 이명박 정부가 지명한 총장”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중수부가 폐지된 것도 이런 관측에 한몫했다.

당초 검찰 내부에서는 원세훈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는 회의적이었다. 기획 라인에 있는 대검 관계자는 국정원 수사 초기 기자와 만나 “지금까지 언론 보도에 드러난 것만 봤을 때는 원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 않느냐”며 “결국 국정원법 위반 정도로 기소하는 선에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적 외압과 상관없이 사건 자체가 선거법을 적용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의도 일각에서는 “채 총장이 의외로 강경하게 나올 것이다. 일을 낼 수도 있다”는 시각이 있었다. 검찰 내부에서는 채 총장이 정치권의 외압을 막아줄 것이란 기대가 높았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처리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일자 채 총장은 검찰 간부회의에서 “검찰 내 모든 이들은 선입견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는 분명한 공감대를 갖고 있다. 수사팀은 정도대로 차분히 수사하라”며 수사팀에 힘을 실어줬다. 검찰 개혁과 정치 중립이 자신의 핵심 가치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또 간부회의에서는 “언론과의 소통을 적극적으로 해달라. 국민에게 이해를 구할 부분은 적극적으로 언론을 통해 설명하라”고 했다. 수사의 최정점에 있는 사람으로서 장막을 치기에 바빴던 전임 총장들과는 다른 점이다.

정부·여당이든 야당·언론이든 불필요하게 각을 세우지 않는 가운데, 검찰의 위상을 새롭게 하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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