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영리한 바이러스 에게 늘 패배했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6.1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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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조류독감, 코로나, 야생 진드기(작은참소진드기) 등 세 가지 바이러스가 한꺼번에 출현해 지구촌을 흔들었다. 세균에 의한 전염병은 과거에 비해 줄어드는데, 바이러스는 모습을 바꾸면서(변종) 인류가 역사상 경험해보지 못한 신종 전염병을 일으킨다. 바이러스성 전염병은 앞으로 암보다 더 무서운 재앙으로 인류를 위협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1997년 ‘전염병 시대, 다시 오다. 우리 모두 관심을, 우리 모두 대응책을’이라는 표어까지 내걸고 바이러스성 전염병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 바 있다.

바닷물 한 방울에 2억 마리의 바이러스가 있을 정도로 우리 주변에는 바이러스가 흔하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이러스만 1400종이지만 인간이 모르는 것이 더 많다. 가장 흔하게 접하는 것은 감기 바이러스다. 약을 먹지 않아도 일주일 정도 고생하면 감기는 떨어진다. 고약한 바이러스는 고사하고 이 ‘순한’ 감기 바이러스를 없앨 치료제가 지구상에 없다. 의학의 발전은 눈부시지만 인류는 단 한 개의 바이러스 치료제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맨 위부터 대유행 가능성이 보이는 코로나 바이러스, 많은 사람을 감염시킨 B형 간염 바이러스, 치사율 90% 이상인 에볼라 바이러스,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 바이러스, 21세기 흑사병으로 불리는 에이즈 바이러스. ⓒ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
사람에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10종 내외다. 이 중 일부는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지만, 몇몇은 아무런 대책이 없다. 바이러스가 인간보다 한 수 위인 탓에 인류는 역사적으로 바이러스에 속수무책 당해왔다.

대표적인 사례는 유럽인이 남미 대륙을 정복할 때의 일이다. 1519년 스페인이 고작 600명의 병사로 2500만명이 사는 아즈텍 제국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천연두 바이러스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면역을 가진 스페인인들과 달리 아즈텍 사람들은 천연두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인구는 10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듬해인 1520년 천연두는 과테말라 등 남미 전역으로 퍼졌고, 1525년 이후에는 잉카 제국마저 이 바이러스의 희생양이 됐다.

그 후 5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바이러스에 대해 인간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바이러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생명체다. 세균이 코끼리라면 바이러스는 개미라고 할 정도로 크기가 작다. 바이러스의 존재를 확인한 것은 1892년의 일이며, 1931년 전자 현미경을 발명한 뒤에야 바이러스를 눈으로 확인했다.

바이러스의 실체를 늦게 알았더라도 바이러스가 몇몇 사람에게만 질병을 일으키는 정도라면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독을 뜻하는 라틴어(비루스)에서 유래한 것처럼, 바이러스가 많은 사람에게서 심각한 증상을 일으키는 판데믹(Pandemic : 세계적 대유행)이 문제다. WHO는 ‘많은 사람에게 갑자기 심각한 증상을 일으키는 질병이 발생해서 사람들 사이에 쉽게 퍼지는 것’을 판데믹의 조건으로 규정했다.

판데믹의 대표적인 사례는 1918~19년에 발생한 스페인독감이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그 시기에 전쟁 사망자(850만명)보다 많은 5000만명이 이 독감 바이러스로 희생됐다. 1년 만에 세계 인구의 5분의 1이 감염됐다. 미국의약협회 저널은 1918년 12월호에 “그해(1918년)는 인류사에 가장 잔인한 해”라고 기록했다.

1941년 페니실린을 개발한 이후 흑사병·콜레라·결핵 등 세균성 전염병은 인간이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이때부터 인간은 자만해졌다. 1960년대 학자들은 인류가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장담했고 1970년대에는 감염학 자체를 연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2010년대에도 바이러스 창궐을 막을 방법이 없다.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 과학자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실험하고 있다. ⓒ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
천의 얼굴 가진 바이러스

그 이유는 탁구공(단백질 껍데기) 속에 실타래(유전자)를 넣은 단순한 바이러스 구조에 있다. 세균은 세포로 이루어진 독립 생명체지만, 바이러스는 스스로 살지 못하고 다른 생명체를 숙주로 삼아 기생한다. 숙주 세포에 들어간 바이러스는 단백질 껍데기를 벗고 그 속에 담겨 있던 유전자를 세포핵에 풀어 넣는다. 그 유전자가 복제되면 다시 단백질 껍데기로 싸서 다른 세포나 숙주로 옮겨 간다. 이 과정에서 숙주의 세포를 파괴하거나 변형하는데 이것이 감염이다. 유산균처럼 일부 세균은 사람에게 이롭지만 바이러스는 하나같이 해롭다.

인류는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오랜 기간 백신 개발에 주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 이유는 같은 바이러스인데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면서 백신을 피하기 때문이다. 경찰이 몽타주를 만들어도, 강도는 분장하고 성형하면서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김우주 신종인플루엔자범부처사업단장(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라고 부르지만 사실 H3N2, H5N1, H7N9 등 그 형태와 특성이 다 달라서 별개의 바이러스로 봐야 한다”며 “한 가지 백신으로 모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잡을 수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인간은 바이러스가 10~40년 주기로 크게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스페인독감이 지구촌을 휩쓴 지 40년이 지난 1957년 아시아독감이 돌면서 100만명, 다시 10년 후인 1968년 홍콩독감으로 50만명이 사망했다. 또 40년 후인 2009년 흔히 신종플루라고 불렸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세계를 강타해 28만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변이를 잘하는 바이러스로 C형 간염 바이러스를 빼놓을 수 없다. B형 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은 만들었지만, C형 간염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아직도 백신을 만들지 못했다. C형 간염 바이러스는 사람 몸에 살면서 만성 간염을 일으켜 결국 간경변, 간암으로 이어지게 한다. 수혈 등 혈액을 통해 전염되므로 요즘은 감염이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의학적으로 나쁜 바이러스임에는 틀림없다. 주철현 울산의대 미생물학 교수는 “C형 간염 바이러스는 쥐에게 감염되지 않아 동물 실험이 어렵다”면서 “침팬지로 실험할 수 있는데, 영장류는 윤리 문제로 실험용으로 사용하기 어려워 백신 개발이 더디다”고 설명했다.

2009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때 과학자들은 감염 경로를 추적했다. 그 결과 돼지로부터 사람에게 감염된 사실을 밝혀냈고, 실제로 당시 전염병을 돼지독감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단순히 돼지에서 바이러스가 생긴 것이 아니라 조류에서 옮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동물 사이에 도는 바이러스와 사람에게 감염되는 바이러스는 따로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종간 벽을 뛰어넘는 바이러스가 생겨나면서 인류는 역사상 경험해보지 못한 전염병을 맞이하게 됐다. 면역 항체가 없는 탓에 많은 사람이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진 것이다. 김우주 신종인플루엔자범부처사업단장은 “요즘 새롭게 발생하는 전염병의 4분의 3은 인수 공통 바이러스에 의해 생기는 것이어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2004년 1월 태국의 한 마을에서 여섯 살짜리 아이가 사망했다. 그 마을 사람들은 모두 달걀을 얻기 위해 닭을 키웠다. 그 소년도 삼촌의 닭 농장에서 닭 한 마리를 얻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고열에 시달렸고, 열 하루째에 사망했다. 그 아이는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조류독감(H5N1)의 첫 희생자로 기록됐다. 이후 수많은 희생자를 낸 이 바이러스는 가까운 미래에 세계적으로 유행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백신 개발에 한창이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가 없다.

이런 바이러스는 조류나 포유류에게 있으므로 사람이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개인위생이 과거보다 좋아졌지만 바이러스의 창궐을 막기에 역부족인 것이다.

숙주를 죽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생존법

바이러스는 영리하다. 숙주를 병들게는 하지만 죽이지는 않는다. 독성이 너무 강해서 숙주가 죽으면 바이러스 자신도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의 원인인 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HIV)가 대표적이다. 수년 또는 수십 년 동안 사람의 몸에 기생하면서 면역체계만 파괴할 뿐,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면역력이 거의 없으므로 가벼운 질병도 에이즈 환자에게는 치명적이다.

이 바이러스는 1981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처음 보고된 이후 감염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WHO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에이즈 환자는 3400만명이고 매년 100만명 이상이 사망한다. 국내에도 8500명 이상의 감염자가 있다. 1987년부터 20여 종의 에이즈 치료제가 나왔지만 완치가 아니라 생명을 연장하는 수준이다.

1976년 콩고에서 280명이 눈과 코 등으로 피를 흘리며 죽었다. 1967년 독일의 미생물학자(마르부르크)가 콩고의 에볼라 강(江)에서 발견해서 붙여진 이름 에볼라 바이러스가 그 원인이었다. 과학자들은 가장 두려운 바이러스로 에볼라를 꼽는다. 이 바이러스는 혈관을 통해 모든 장기로 이동해 기능을 망가뜨리므로 사람은 감염 후 일주일 이내에 90% 이상 사망한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감염 경로 등이 어느 정도 확인됐지만 에볼라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이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하지 않은 이유는 혈액을 통해서만 감염되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그러나 2002년 공기를 통해 전염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었다. 캐나다 국립미생물연구소가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돼지를 원숭이와 함께 가두고 8일 동안 관찰했더니 멀쩡했던 원숭이 몇 마리가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의 전형적인 증상을 보였다.

공기, 즉 호흡기를 통해 이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인류는 멸망할 수도 있다고 일부 전문가들은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숙주를 알면 백신이라도 만들 수 있을 텐데, 그것도 명확하지 않다. 원숭이라는 설과 박쥐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고, 돼지라는 주장도 있다.

오랜 연구 끝에 미국과 캐나다 과학자들은 2003년과 2005년에 백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미국 언론은 몇 년 동안의 임상시험을 마친 후부터 백신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아무런 소식이 없다.

판데믹 가능성 보이는 코로나 바이러스

지난해 9월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지역에서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됐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으로 퍼지면서 51명이 감염됐고, 31명이 사망했다. WHO에 따르면, 폐렴과 신장 부기 등의 합병증을 일으키는 이 바이러스의 치사율은 70%다. 감염 경로를 알 길이 없다. WHO는 사우디아라비아 오아시스에서 대추야자를 먹고 서식하는 아라비아 박쥐가 바이러스를 옮긴 것으로 추정하고 현지 조사 중이다.

그보다 더 우려했던 점은 사람 사이에 바이러스가 전염되느냐는 것이었다. 두바이에서 감염돼 프랑스로 귀국한 65세 남성과 4일 동안 같은 병실을 사용한 50세 남성이 그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또 중동과 파키스탄을 방문한 후 바이러스에 감염돼 영국에서 치료받던 사람의 친척도 그랬다. WHO는 성명을 내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 간 접촉으로 감염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런 이유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창궐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는 과학자가 적지 않다. 마거릿 챈 WHO 사무총장도 “단일 국가에서 관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통제를 위해 세계가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야 한다”며 판데믹 가능성을 시사했다.

2002년 중국에서 처음 발생해 순식간에 홍콩, 싱가포르, 캐나다 등으로 퍼지며 800명을 죽음으로 내몬 사스 바이러스가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계열이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미 인간에게 판데믹을 경고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류를 괴롭히는 바이러스에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PV)도 있다.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로 유명하다. 1983년 독일의 암 연구 박사가 HPV를 발견했다. 여성에게 흔히 감염되는 바이러스다. 국립암센터 자궁암센터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4명은 이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다. 흔한 바이러스이지만 모두 암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 바이러스에 걸렸더라도 2년 이내에 90% 이상은 자연적으로 소멸된다. 나머지 10%가 문제인데 매년 2만여 명의 여성이 이 바이러스에 의해 자궁경부암에 걸린다. 남성도 매년 1만여 명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구인두(입과 식도 사이의 소화기관)와 항문에 암이 생긴다. 구강 또는 항문 성관계로 감염된다. 임명철 국립암센터 자궁암센터 박사는 “성관계를 할 때와 출산할 때 작은 상처를 통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며 “이후 면역력이 떨어질수록 이 바이러스가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하는 배경에는 바이러스의 특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태계 파괴도 한몫했다. 인류는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축을 길렀다. 대량 사육을 위해 좁은 우리에 수많은 가축을 기르다 보니 가축들의 면역력은 떨어지고 조류 등이 옮기는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됐다. 중국 양쯔 강 하류의 삼각주에는 철새와 야생 비둘기를 잡아 닭이나 오리와 같은 우리에 넣어 파는 재래시장이 있다. 어떤 바이러스가 퍼질지 아무도 모른다.

또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밀림 속에만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 세상에 퍼졌다.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속도는 자동차와 비행기의 발명으로 더욱 빨라졌다. 오늘 한 나라에서 출현한 바이러스가 다음 날 지구 반대편에서 창궐하는 시대다.

바이러스가 퍼져도 쉬쉬하며 넘어간 점도 바이러스 창궐을 부채질했다. 김우주 단장은 “사스가 발생했던 2002년 중국 당국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등 국제 사회에 비협조적인 대응으로 피해를 키웠다”면서 “하나의 세계, 하나의 대응(one world, one health)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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