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대학언론상] "제발 사흘만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 이주현·최성민∥서강대 ()
  • 승인 2013.06.1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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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시사저널 대학언론상 대상작.....청각장애인들이 겪는 ‘현실의 장애’ 밀착 취재, "다른 장애에 비해 불리한 점 많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지만 전화로는 문자밖에 해보지 못했다. 만약 들을 수 있다면 친구와 전화로 밤새워서 수다를 떨어보고 싶다.”

“친구들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 노래를 듣고 따라 불러보고 싶다. 요즘 비장애인들을 위해서는 많은 투자를 해서 신기한 제품을 만들면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제품 개발에는 왜 그렇게 무관심한지 모르겠다. 세상에는 들을 수 있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청각장애인들도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내 꿈은 베토벤 같은 작곡가가 되는 것이다. 들을 수 있다면, 오페라 극장에서 뮤지컬을 한번 보고 싶다. 청각장애인들도 음악을 좋아하고 느낄 권리가 있다.”

 

 

 


외견상 멀쩡해 보여 배려 못받는 경우 많아 청각장애 학생들에게 “사흘만 들을 수 있다면 무엇을 해보고 싶습니까?”라고 물어보니 돌아온 것은 ‘일상적인 그 무엇’에 관한 바람이었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고 있는 일상이 간절한 꿈이었다.

 

청각장애는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이다. 청각장애로 인해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생기는 또 다른 장애를 흔히 ‘벙어리’라고 말한다. 장애인들은 교육을 통해 말하는 법을 배우지만 정확한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청각장애인이 단순히 ‘청각’이라는 물리적인 상황만을 담고 있는 용어라면 ‘농아’라는 호칭은 청각과 언어 표현이 모두 어려운 상황을 포괄하고 있다.

이런 장애의 특성 때문에 청각장애인들은 다른 장애인들과 다르게 타인에게 직접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대화에 참여한다해도 자신의 뜻을 유창하게 말할 수 없거나통역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뜻을 100%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우스갯소리로 “시각장애인은 경찰에 신고라도 하지만, 청각장애자는 사고가 나면 끝이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청각장애인들은 다른 장애에 비해 매우 불리한 점이 많다. 우선 장애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아 비장애인들과 오해가 생기는 일도 많다.” 서울시 농아협회 마포지부의 신윤정 과장은 청각장애인들이 겪는 불편함을 가장 가까이서 보아온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우리 센터에서 전화 통역을 하는데, 어느 날 새벽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노숙인과 청각장애인 사이에 말다툼이 생겼다. 아마 청각장애인이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니 왜 대답이 없냐면서 시비가 붙었던 것 같다. 노숙인은 경찰에게 자기 얘기를 다 한 상태였는데, 청각장애인이 말하는 것은 비장애인한테는 그냥 괴성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주머니를 뒤져보고 센터 명함이 있어서 새벽에 연락이 온 것이다.”

신과장이 경찰서에 도착해보니 청각장애인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답답함을 토로하는 것이 난폭한 행동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가지 못했다면 어땠을까하는 마음도 들고…. 이런 곳에서는 누가 먼저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많이 변하는데, 억울한 마음도 들더라.”

청각장애는 장애 등급 분류에서 1급을 받기 어렵다. 한쪽 눈만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은 장애 등급을 받지만, 한쪽 귀만 들리지 않는 경우에는 장애 등급을 받지 못한다. 외관상으로 비장애인과 똑같은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올림픽에도 출전하지 못한다. 대신 농아인올림픽을 하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지난 5월, 국내에서는 14개 종목에 걸쳐 15개국이 참가한 아시아·태평양 농아인 경기 대회가 열렸지만 언론에서는 외면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마포지부에는 다섯 명의 청각장애인이 자신들의 용무가 담긴 메모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 이곳에 전화 통역을 부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인력은 고작 세 명에 불과하다. 관계자는 “오늘은 그나마 사람이 좀 적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신과장은 “인력이 부족하지만 중앙지부도 상황은 마찬가지라 인력 수급이 안 되고 있다. 보통은 열댓 명씩 와서 기다린다. 병원을 갈 때 통역사와 일정이 맞지 않으면 글을 써달라고 해 가져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를 바로 전해야 하는데, 이렇게 적어가면 의사소통이 안 될 확률이 높다”라고 말했다.

 

영화 ⓒ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부족한 지원은 농아협회만 둘러보아도 알 수 있다. 마포지부의 경우 일반 가정집들 사이에 있어 한 번에 찾기가 쉽지 않다. 지하철역과 약 10분 거리에 있는데 직접 마중을 나가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 길을 찾아오는 동안 농아협회 마포지부를 표시한 표지판이나 안내 표시가 전혀 없다. 청각장애인들이 주변 행인들에게 길을 물어보기란 어렵다. 찾아오는 일이 비장애인에 비해 몇 배는 불편하다. 신과장은 “이전에는 이 건물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크기여서 찾아오는 분들이 앉을 공간도 없었는데 지금은 그나마 테이블도 놓고 사무실다워졌다”라고 말했다.

부족한 지원은 고립을 낳는다. 지난해 겨울 극장가를 휩쓴 영화 <도가니>는 농아학교에서 발생하는 인권 유린을 다룬 작품이었지만, 정작 이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청각 장애인들은 이 영화를 볼 수 없었다. 자막이 없었다. 청각장애인들의 요구에 의해 몇몇 극장에서 잠깐 자막 영화가 상영되었지만 이것도 제한적이었다.

도가니를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자막 상영을 많이 해보려고 노력했는데, 일반인들이 이해를 가지고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을 경우 힘들다. 자막이 있으면 영화 몰입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관객 중 청각장애인의 비중이 적으니 자막 상영을 했을 경우 극장 쪽에서 손해가 난다. 우리가 요구한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는 점에서 아쉽다”라고 말했다.

 

2009년 4월 경기도에서 열린 장애인 채용 박람회에 참가한 한 청각장애인이 수화로 자신의 이력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보 접근권·이동권도 보장되지 않는 현실

정보 접근권만 해도 다른 장애인들과 비교해 현저히 떨어진다. 통역사를 거쳐 말하거나 문자로 다시 옮겨 적어야 하기 때문에 장애인 콜센터 상담 서비스도 이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도 자막 수신기를 설치해야 하는데, 설치를 하더라도 모든 방송에서 자막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 예능·오락프로그램에는 수화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으며 <5시 뉴스>처럼 평일 오후의 방송만 수화 서비스가 제공된다. 일본과 비교해보아도 우리의 현실은 열악하다. 지난해 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NHK의 화면은 이등분 되었다. 한쪽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뉴스에 할애되었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장애인 이동권에서도 청각장애인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 도로나 점자 안내판은 늘고 있지만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것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는 것뿐 아니라 듣는 것을 통해서도 사람들은 공간을 인지한다. 자동차 경음기 소리나 엔진 소리를 듣고 자동차를 피하거나 버스의 안내 방송을 통해 자신이 내릴 곳을 확인하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 듣는 감각이 없다는 것은 큰 장애물이다.

지난 2010년 한국 농아협회는 버스에 도착 정류장을 안내하는 문자 표시 안내판이 없는 것은 인권 침해라며 인권위원회에 진정 요구를 했고 인권위도 권고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개선은 미흡하다. 새로 운행되는 버스에는 설치되었지만 기존 버스나 근거리를 운행하는 마을버스에는 문자 표시판이 설치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마을버스 운송업체는 “마을버스는 현행 ‘교통 약자의 이동 편의 증진법’상의 전자 문자 안내판 설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청각장애인도 교육을 통해 말을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사회에는 ‘청각장애인은 말을 하지 못한다’라는 편견이 널리 퍼져 있다. 여기에는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편견은 청각장애인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 이들을 점점 고립시킨다.

노희주씨(22, 서강대 화학공학과 청각·언어장애 1급)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그냥 피한다. 내가 대화에 참여해봤자 어차피 못 알아듣고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자연스레 혼자가 될 텐데 차라리 처음부터 혼자인 편이 낫다”라고 말했다. 동아리에 지원했다가 청각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다. 동아리 지원서조차 내지 못했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 청각장애인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1998년 KBS 본관 앞에서 TV 자막 방송 실시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는 한국농아인협회 소속 농아인들.©연합뉴스

만나본 청각장애인들 대다수가 ‘의욕’ 대단

소외는 수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수업을 듣는 학생뿐 아니라 교수들도 외관상 별 다른 장애가 없기 때문에 청각장애를 인지하지 못하고 수업 교구를 만들어 진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설혹 장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도울 방법을 찾지 못해 발표나 조 모임 등에서 제외하는 ‘배려 아닌 배려’를 해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차진영씨(22, 서강대 신문방송, 청각장애 2급)는 “모든 학생이 발표에 참여해야 하는 수업이 있었다. 나도 당연히 참여하는 줄 알았고, 해보고 싶었는데 교수님께서는 내 차례가 되니 귀가 안 들린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올해 졸업반인 정수인씨(21, 서강대 법학과, 청각장애 2급)는 “내 경우는 후천적 장애라 조용한 곳에서 단둘이 면담할 때는 전혀 장애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다수와 함께 하는 수업에는 장애가 영향을 미친다. 이 차이를 교수님께 말씀드리면 핑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청각장애인이라서 지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었고, 한국어는 하면서 왜 영어는 못하냐는 말도 들었다. 이렇게 지금 소통하면서 왜 수업을 못 따라가느냐는 말에 대답할 방법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의 박명훈 교수는 “청각장애 학생을 지도할 때 이해 여부를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힘들다. 실습이 있는 수업에서는 평가 결과를 알려주어야 하는데 말로 설명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즉각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라고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그렇다고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박교수는 ‘적극성’을 지적했다. 그는 “청각장애 학생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비장애 학생들과 동화하려고 노력하면 그런 문제는 차츰 개선될 것이다. 여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적절한 파트너가 있다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청각장애 학생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대학의 제도적 지원은 미미한 수준이다. 수화통역사가 있는 학교는 전국에서 나사렛대학교가 유일하다. 다른 장애에 비해 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교구 마련 및 시설 확보는 미흡하다.

일반적으로 청각장애인들은 입 모양을 보고 이해하는 경우도 있고, 어느 정도 들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투리를 쓰거나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는 대필이나 강의록 없이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도 “책을 더 보라”라는 대답을 듣기 일쑤이다. 대필이 지원되는 학교도 있지만 전문 대필 경험이 없는 일반 학생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어느 선까지 전달해야 할지 몰라서 생기는 어려움도 있다.

취재진이 만나본 청각장애 대학생들은 대부분 공모전이나 대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실제로 지난해 한 은행에서 실시한 공모전에서 수상한 학생도 있었다. 이들에게 방학 계획을 물었다. 대부분 “토익과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평범한 대학생들과 다름없는 대답이었다.

대다수 대학생이 스펙의 기본으로 삼는 토익도 올해부터 장애인 담당자가 생겨 원하는 부분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청각장애인은 듣기 파트에서는 N/A로 표시한 후 독해 성적만 평가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변경되었다. 2010년부터는 청각장애인도 1종 운전면허를 딸 수 있게 되었고, 각종 국가고시에서 청각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청각장애 학생들은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을 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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