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후 지갑은 안녕하신가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3.06.26 11:3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퇴직연금, 수익률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갈아타야

‘노후 안전판’인 퇴직연금 수익률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저금리가 계속되고 있는 데다 주식·채권 등 투자 상품 역시 신통치 않아서다. 하지만 은행·보험·증권사 등 금융회사별 퇴직연금의 누적 수익률 차이는 작지 않다. 운용 철학과 실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금융협회 등을 통해 자신이 가입한 퇴직연금 상품의 수익률을 정기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선 개인이 퇴직연금 사업자를 쉽게 바꿀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퇴직연금의 대부분은 원리금 보장형이다. 노후 생활 자금에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려는 심리가 강해서다. 이런 원리금 보장형 퇴직연금의 올 1분기 수익률은 평균 1% 미만으로 집계됐다. 우리은행·국민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 등 주요 8개 은행이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공시한 수익률을 취합한 결과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평균 수익률(1.15%)보다 0.16%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연 환산 수익률이 4%를 밑도는 것이다.

반면 원리금을 보장하지 않는 실적 배당형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이보다 나았다. 삼성증권·우리투자증권·KDB대우증권 등 14개 주요 증권사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평균 1.86(확정급여·DC형)~1.95%(확정기여·DB형)였다. 연 7.44~7.8% 정도다.

3년 수익률 10% 안 되는 펀드도 많아

곽병찬 금융투자협회 연금신탁지원부장은 “실적 배당형 퇴직연금의 경우 불입액의 30% 정도를 각종 펀드로 운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며 “일시적으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장기 투자할 땐 원금 손실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자산운용사가 운용하고 증권사가 주로 판매하는 퇴직연금 펀드의 수익률이 다 좋을까. 그렇지 않다. 펀드 평가업체인 에프앤가이드가 6월13일을 기준으로 각 퇴직연금 펀드(순자산 100억원 이상 운용사의 국내 혼합형 펀드 대상)의 5년 수익률을 비교했더니 수익률이 극과 극을 달렸다.

가장 뛰어난 성적을 낸 곳은 한국밸류자산운용이었다. 5년간의 성적이 64.2%였다. 다음으로 KB자산운용(57.34%),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39.21%), 신영자산운용(37.82%) 순이었다.

저조한 실적을 보인 곳은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26.24%), 미래에셋자산운용(26.6%), 대신자산운용(27.6%), NH-CA자산운용(28.33%) 등이다. 가장 잘한 곳과 못한 곳의 수익률 차이가 2~3배에 달한다. 특히 농협금융지주 계열인 NH-CA자산운용의 경우 3년 수익률이 11.28%로 전체 운용사 중 꼴찌를 기록했다.

순자산 10억원 이상, 운용 개시 3년 이상인 142개 퇴직연금 펀드 중 3년간의 누적 수익률이 10%(연 3.2%)에도 못 미친 펀드가 23개에 달했다. 전체의 16%가량이다. 3년간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펀드도 있었다. 이연주 에프앤가이드 연구원은 “증권사뿐만 아니라 은행·보험사 등 다양한 금융회사에서 퇴직연금 펀드를 출시하고 있는 만큼 업종별·가입 형태별·운용 형태별로 비교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금융회사 간 실력 차이가 이렇게 큰데도 가입자들이 사업자를 교체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같은 금융회사 내에서 퇴직연금 펀드를 바꾸는 사람만 드물게 나온다.

한 은퇴 전문가는 “장기 수익률이 좋지 않을 때는 다른 금융 사업자로 쉽게 옮길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게 돼 있다”며 “개인이 아니라 근로자가 소속된 회사 및 노조가 퇴직연금 사업자를 결정하는 계약형 구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퇴직연금 가입자가 자신이 든 A사의 수익률이 마음에 들지 않아 B사로 갈아타고 싶어도 자신의 회사에서 B사와 퇴직연금 계약을 맺지 않았다면 어렵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주거래 은행이나 그룹 계열 금융회사 2~3곳과 퇴직연금 사업자 계약을 맺고 있다. 특히 은행 대출을 종종 써야 하는 중소기업은 주거래 은행의 퇴직연금 상품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가입하고 있다.

직장 내 퇴직연금 담당자는 자산운용에 관한 전문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단순히 금융회사의 권유에 따르거나 손쉽게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가입하는 게 관례다.

다만 DB형, DC형, IRP(개인퇴직계좌) 등 세 종류의 퇴직연금 중에서 IRP에 가입했다면 퇴직연금 사업자를 수시로 옮길 수 있다. 직장을 옮기거나 은퇴할 때 퇴직금을 넣어놓는 IRP 가입자는 전체 퇴직연금 가입자 중 7~8% 정도다.

DB형은 퇴직 후 수령액이 사전에 확정되는 구조다. 직장을 그만둘 당시의 연봉 수준에 따라 퇴직 급여가 결정되기 때문에 종전 퇴직금 제도와 비슷하다. DC형은 회사가 부담해야 할 부담금을 사전에 정해 근로자의 개인 계정에 적립해주는 방식이다. 근로자가 운용에 따른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하기 때문에 다소 불리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가입액은 67조3000억원 규모다. 전년에 비해 25.9%(17조4000억원) 늘어났다. 2020년엔 200조원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다. 전체 퇴직연금의 93% 정도는 예·적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묶여 있다. 은행권 적립액이 33조5000억원으로 가장 많고, 생보사(16조1000억원), 증권사(12조5000억원), 손보사(5조1000억원) 순이다. 노용우 KDB대우증권 퇴직연금부장은 “저금리 기조가 심화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확정 금리형 퇴직연금보다 실적 배당형 상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퇴직금 평생 나눠 받으세요”

2005년 퇴직연금 제도가 공식 도입됐지만 여전히 한 번에 퇴직금을 타가는 사람이 대다수다. 퇴직연금이 노후 보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7월 퇴직자의 IRP 가입이 의무화된 이후 퇴직자들은 퇴직금(퇴직연금)을 일단 은행·증권·보험사 등의 IRP 계좌에 예치해야 하는데 이를 한 번에 다 찾거나 연금 형태로 나눠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퇴직금 수령자 중 장기간 연금 방식으로 받겠다는 퇴직자는 1~1.5% 수준에 그친다는 게 금융감독원의 설명이다. 박홍민 삼성생명 퇴직연금연구소장은 “퇴직금을 한 번에 찾으면 생활 자금으로 다 써버릴 확률이 높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선 우리와 정반대로 대다수 퇴직자가 연금 형태로 수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퇴직금을 한 번에 수령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식으로 최근 세법을 개정했다. 종전까지만 해도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으면 금액에 관계없이 약 3%의 실효 세율을 매겼지만, 이 세율을 최고 7%로 높인 것이다.

반대로 퇴직금을 IRP 계좌에 넣은 다음 10년 이상 연금 형태로 수령하면 세금 부담이 줄어든다. 연금소득세의 원천징수 세율은 종전(5%)과 같지만 종신 수령 방식을 선택하거나 나이가 많아지면 최저 3%만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