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은 ‘공공도서관’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3.06.2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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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명당 1곳’ 기준 대부분 충족 못해 정규직 사서 1명인 곳 태반

도서관을 보면 그 사회의 문화 수준을 엿볼 수 있다. 도서관에서는 시대의 화두를 읽을 수도 있다. 서가를 방황하며 가지런히 늘어선 책장에서 힘겹게 고른 책에는 그 사람의 관심이 담겨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국립중앙도서관이 지난 한 해 가장 많이 빌려본 책을 조사한 결과, 혜민 스님의 에세이집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1위였다. 직전 해인 2011년 1위였던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2012년에도 강세를 보이며 2위에 올랐다. 사람들의 관심사가 ‘힐링’과 ‘청춘’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1000만 서울에 구립 공공도서관 96곳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들 말한다. 이는 숫자로 비교해보면 명확해진다. 문화체육관광부 도서관광정책과에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를 보면, 2011년을 기준으로 우리 공공도서관 수는 786개다. 미국은 9225개, 독일은 8131개, 영국은 4517개다. 가까운 일본의 3210개와 비교해도 얼마나 부족한지 알 수 있다. 도서관 한 곳당 인구수를 보면 영국과 독일은 1만명 내외, 미국과 일본은 3만명대를 유지하지만, 우리는 6만4547명에 달한다.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 독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보고서 내용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공공도서관 수와 독서의 상관관계다. 우선 조사 시점인 2010년 11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1년간 만 18세 이상 성인 중 인근 지역에 공공도서관이 있는 경우 과반인 51.1%가 월평균 3.2회를 이용했다. 반면 인근 지역에 공공도서관이 없는 경우에는 10.7%만이 이용했는데, 이들의 이용 빈도는 월평균 0.4회에 불과했다.

서대문 구립 이진아기념도서관은 “도서관이 이곳만 같다면”이라는 평가를 받는, 대표적인 공공도서관 중 한 곳이다. ⓒ 이진아기념도서관 제공

공공도서관이 인근 지역에 있느냐 여부는 독서 행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고 응답한 18세 이상 성인의 경우 도보로 10분 거리에 공공도서관이 있는 경우(72.9%)가 공공도서관이 없는 경우(67.8%)보다 독서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도 공공도서관의 접근성과 관계 있다. 인근 지역(도보 10분 이내)에 공공도서관이 있는 경우(11.0권)가 인근 지역에 공공도서관이 없는 경우(9.8권)보다 많았다.

그렇다면 모든 인프라가 모여 있다는 서울은 어떨까. 서울시 25개구를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한 서울 구립 공공도서관 운영 현황 자료를 보면, 빈약한 공공도서관 현실을 알 수 있다. 이번 자료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을 대상으로 했다. 국가 도서관 통계 시스템에 따르면, 서울시에는 교육청이 운영하는 도서관 22곳, 사립 도서관 4곳이 있다. 구립 공공도서관이 96곳(2012년 12월31일 기준)으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에서 공공도서관이 가장 많은 곳은 강남구로 9곳이다. 구로구가 7곳, 송파·성북구가 6곳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 종로구에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이 한 곳도 없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인구 5만명당 공공도서관 1개가 있어야 한다고 기준을 내놓았다. 하지만 실제로 서울의 기초자치단체에서 이 기준을 지키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용산구는 1곳, 인구가 약 40만명인 마포구도 창전동 서강도서관 1곳에 불과하다. 마포구 관계자는 “도서관 하나를 짓기 위해서는 20억~30억원이 드는데 예산 문제가 작지 않다”고 말했다. 문화관광부 기준에 따르면 마포구의 경우 적어도 8개의 공공도서관이 필요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는 마포구의 문제만이 아니다. 대다수 구청이 인구 5만명당 1곳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도서관이 많은 강남구·구로구, 인구가 적은 성동구·중구만이 구민 5만명 정도에 1곳의 공공도서관을 보유하고 있다.

서류·고용 불안과 씨름하는 사서들

도서관의 또 다른 문제는 사서다. 공공도서관을 새로 만들 때마다 지자체는 공간 넓이와 시설 등 하드웨어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외형적 규모와 장서의 수 등 양적인 부분이 지나치게 강조된다. 도서관을 질적으로 유지하는 역할은 사서의 몫이다. 그러면 그 질은 잘 유지되고 있을까?

앞선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응답한 사람들이 공공도서관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공공도서관을 이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40.7%)였다. 공공도서관을 찾는 성인 이용자의 약 70%는 ‘독서 및 도서 대출을 위해서’라고 답했다. 이를 볼 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도서관의 소장 자료와 관련될 수밖에 없다. 공공도서관 이용 시 개선되어야 할 사항으로 ‘다양한 소장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는 응답이 69.3%로 가장 많이 나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서울의 한 구립 공공도서관 사서인 이 아무개씨의 하루 생활을 쫓아가보면 도서관의 질적 개선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잘 드러난다. 그는 보통 오전 8시30분쯤 출근한 후 소장 자료를 정리하거나 챙긴다. 그 뒤부터는 서류와의 싸움이다. 요즘은 여러 공문과 행사 기획에 매달리고 있다. 책을 찾는 관람객보다 도서관에서 준비하는 문화 행사에 관심을 갖는 이용객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름 방학 시즌이 다가오면서 독서교실 등으로 당분간 야간 근무를 계속해야 한다. 이씨는 “책을 다루지만 책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신간 동향 등 공부해야 할 것도 많은데 행사 치르기에 정신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1년 이용자 수가 150만명에 달하지만 사서 수는 10명 남짓이다. 1년에 치르는 행사는 약 40개 정도. 대출이나 반납, 책 정리 등 기본적인 업무를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도서관에 들일 신간을 연구하거나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은 사치다. 이씨는 “사서를 단순 서비스업 종사자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서가 그 일밖에 할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인식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서 없는 도서관은 사상누각

게다가 전문성을 요구받는 자리라지만 사서가 정규직인 곳은 많지 않다. 서울 구립 공공도서관 중 정규직 사서가 가장 많은 곳은 은평구립도서관으로 16명이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드문 사례다. 도서관이 9곳인 강남구에는 도서관당 평균 1명의 정규직 사서가 있을 뿐이다. 도서관이 7곳인 구로구 역시 정규직 사서 수는 2.4명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인구 1000명당 사서 수는 영국이 0.87명으로 가장 많다. 캐나다는 0.21명, 미국 0.16명, 프랑스 0.12명이다. 우리는 0.07명에 불과하다. 도서관 이용자와 접촉해 다양한 정보 이용자들의 욕구를 충족해야 하는 자리가 텅 빈 셈이다. “사서 없는 도서관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남태우 중앙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변화는 더디다.

구립 공공도서관은 ‘민간 위탁’ 혹은 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는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이번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은 서울시 구립 공공도서관 96곳은 예외 없이 그랬다. 민간 위탁의 경우 경제적 효율성 때문에 예산 절감에 초점이 맞춰진다. 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는 곳은 주민들의 문화 공간이자 공공의 영역인 도서관을 시설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수익성 극대화에 치우친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인건비 절감이다. 사서 업무를 비정규직 혹은 비전문인이 맡으면서 고용 불안, 전문성 결여와 같은 문제가 제기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 이 기사는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정보공개 청구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제목 그대로입니다.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정보, 혹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찾습니다. 정보공개 청구를 하셔도 좋고, 이미 공개되었지만 묻혀 있던 정보도 좋습니다. <시사저널>에 보내주십시오. 점검과 개선이 필요한 정보는 취재를 덧붙여 <시사저널>에 싣겠습니다.

 

응모 분야
① 정보 공개  ② 정보 찾기

응모 대상
① 정보 공개 : 2013년 1월~12월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얻은 자료
② 정보 찾기 : 2013년 1월~12월 정보공개 시스템에 공개된 자료

접수 방법 : 이메일 혹은 등기우편으로 접수

제출 서류
①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정보 공개), 혹은 정보공개 시스템에서 받은 파일(정보 찾기)
② 본인의 이름 및 연락처와 정보 공개 혹은 정보 찾기에 대한 간단한 설명

보내실 곳 : open@sisapress.com /
(140-737)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2가 302번지 <시사저널> 편집국

응모 마감 : 2013년 10월31일

문의 : (02)3703-7024 / khg@sisapress.com

시상 : 대상 300만원 및 상패, 우수상 100만원 및 상패,
           장려상 50만원 및 상패

주최 : <시사저널>·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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