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사는 법
  • 김재태 편집위원 (purundal@yahoo.co.kr)
  • 승인 2013.07.0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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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듣고 쓰는 우스개 중에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을 맥락 없이 잘라서 하거나 들으면 자칫 말싸움이 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이야기일 것입니다. 말이 온전하지 못한 채 토막 나면 쓸데없는 곡해가 생기기 쉽습니다. 말 때문에 말 난다는 말이 그런 것입니다. 요즘 일어나는 일이 딱 그렇습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 담긴 말들이 온 나라를 말로 들끓게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발췌본 속의 말로 시끄럽더니 이제는 전문까지 공개되어 더 큰 말의 연쇄 충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소란의 중심에는 국가정보원이 있습니다. 국가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유지해야 할 임무를 진 국정원이 정보를 공개적으로 유출해 일을 벌였습니다. 대화록 공개의 적법성을 둘러싼 논란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는 비판까지 파장이 엄청납니다. 지난 대선 때 인터넷 게시 글을 작성해 정치에 개입한 의혹을 받아 검찰 조사까지 받고 있는 국정원이, 자숙하고 반성하기는커녕 나라를 혼란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은 것입니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사유 중 하나로 회담 내용을 둘러싸고 국론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는데, 실제로 그처럼 심각한 국론 분열 현상이 있었는지 기억되는 바도 없는 상황에서 결국 그 자신이 오히려 국론 분열을 키운 꼴이 되었습니다. 국론 분열에 불을 질러도 너무 질렀습니다. 그리고 그야말로 심판조차 없는 무한 진실게임이 또다시 시작됐습니다. 국정원장은 또 “야당이 자꾸 공격하고 왜곡하니까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서 그랬다”고도 했습니다. 후폭풍이 거세게 일 것이 빤히 예견되는 대화록 공개를 결정한 이유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그의 발언은 국가의 중요 기관을 책임진 사람의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충격적입니다. 조직의 명예가 국가의 안정보다 앞설 수 있다는 그 발상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조직의 명예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국가정보원’이라는 명칭에서 ‘국가’라는 글자는 반납해야 도리일 것입니다.

국정원으로서는 물론 대선 개입 의혹이라는 굴레를 빨리 벗어내고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을 것입니다. 일부 억울한 감정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방법을 잘못 선택했습니다. 실제 경위가 어찌 됐든 정치 개입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빗발치는 가운데 나온 대화록 공개는 국민의 눈에 ‘배나무 밭에서 갓끈 고쳐 매기’로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전세 역전을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이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국정원이 진정으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면 정도(正道)를 택해야 합니다. 과거 잘못된 것들을 과감히 도려내고 새살을 키워야 합니다. 국회와 같은 외부의 손으로 개혁을 강제당하기 전에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합니다.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마당에 국정원 정치 개입과 관련해 시국 선언을 한 사람들을 사찰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는 현재의 모습으로는 결코 명예 회복을 할 수 없습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시킬 획기적이고 전향적인 자체 개혁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국정원의 명예도 지키고 국민의 명예도 지키는 길이자, 진정한 ‘국가’정보원으로 바로 서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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