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폭스바겐 “현대차 나와봐”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7.02 15: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입차 대중화 첨병 ‘2000만원대 중소형’ 경쟁 불꽃

2000cc 미만 2000만원대 자동차 시장이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국산차만의 경쟁이라면 새로울 것도 없는 뉴스이지만 수입차가 이 싸움의 선봉장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입차 마케팅이 ‘고가’, ‘부의 상징’이라는 이미지 싸움에서 실용적인 소비 차원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이미 수입차 시장의 주도권은 2011년을 기점으로 배기량 2000cc 미만급 차량이 가져갔다. 2000cc면 국산차로는 중형차급이지만 이에 해당하는 벤츠 E클래스나 BMW 5시리즈 가격이 6000만원대부터 시작한다는 점에서 수입차 대중화 시대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했다.

그런데 독일차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는 폭스바겐과 BMW에서 2000만원대의 차를 내놓으면서 존재감이 희미했던 2000만원대 수입차 시장에 불이 붙고 있다. 2000만원대는 국산차의 주력인 쏘나타급 가격이고, 이는 수입차가 국산차 메이커의 주력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으로 볼 수 있다.

2000만원대 싸움은 폭스바겐의 폴로가 먼저 걸었다. 지난 4월 말 선보인 뉴폴로(1.6 TDI R-Line)는 지난 5월까지 427대가 팔렸다. 올해 판매된 2000만원대 수입차 중 최고 기록이다. 뉴폴로는 국내 시장에서 판매에 성공한 폭스바겐 골프보다 더 콤팩트한 모델이다. 골프 모델에도 들어가는 1.6ℓ급 디젤 엔진이 쓰였고 골프보다 작은 차체와 무게 덕분에 제로백(0→시속 100㎞ 가속) 11.5초, 최고 속도 180㎞라는 경쾌한 몸놀림을 자랑한다. 주행 감각 역시 독일차 3인방(벤츠·BMW·폭스바겐)이라는 이름에 걸맞아 2000cc 미만급 시장에서 단박에 1위로 뛰어올랐다.

(왼쪽)ⓒBMW코리아 제공, (오른쪽)ⓒ폭스바겐코리아 제공
뉴폴로, 2000만원대 수입차 중 최다 판매

2000cc 이하급 시장에 폭스바겐보다 먼저 뛰어든 업체가 많았다. 푸조 208이나 피아트 500 등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국내 판매를 개시했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8과 500은 유럽 시장에서 디자인이나 성능으로 호평을 받은 전통적인 모델이다. 인터넷의 각종 차량 관련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도 푸조 208, 피아트 500, 시트로엥 DS3 등 2000만원대 차에 대한 호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시장 개척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대비되는 게 독일차 3인방이다. 특히 폭스바겐이 시장 공략 전략 면에서 눈에 띈다. 디젤과 소형차급으로 한국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폭스바겐은 3000만~4000만원대에 골프·보라·뉴비틀·파사트·티구안 등을 촘촘하게 깔아놓았다. 그런 다음 벤츠나 BMW에 버금가는 시장 장악력을 확보하고 2000만원대 시장에 진입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이런 전략은 소형차 카드부터 먼저 국내 시장에 내밀었다가 고전하고 있는 푸조·피아트와 대비된다. 폭스바겐의 2000만원대 폴로 카드에 타격을 입은 곳은 BMW코리아의 미니. BMW코리아는 BMW와 미니 두 브랜드로 국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미니가 국내 시장에 내놓은 것 중 제일 싼 모델은 3040만원짜리 미니 쿠퍼SE다. 미니는 영국 클래식카를 떠올리게 하는 유니크한 외관과 콤팩트한 성능으로 3000만원대 시장의 베스트셀러였다. 하지만 미니의 지난 1~4월 총 판매 대수는 1495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1635대에 비해 줄어들었다. 이 기간 동안 BMW코리아의 총 판매량은 늘어났는데도 미니만 줄어든 것이다. 시장에서는 뉴폴로가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자 미니도 2000만원대 시장 진입을 선언하고 나섰다. 6월 초부터 2590만원짜리 ‘미니 오리지널’을 팔기 시작한 것. 미니의 최대 출력은 122마력으로 90마력인 폴로를 앞선다. 제로백은 10.4초로 폴로보다 약간 빠르다. 연비는 디젤 엔진을 쓰는 뉴폴로가 18.3㎞/ℓ이고, 미니 오리지널이 12.7㎞/ℓ로 뉴폴로가 앞선다. 외관 디자인은 폴로와 미니가 완전히 다르다. 폴로가 얌전하고 세련된 도시인이라면 미니는 온·오프를 가리지 않는 개성파 젊은이를 떠올리게 한다.

수입 소형 가솔린 차는 경쟁력 떨어져

BMW코리아의 승부수인 미니 오리지널에는 2000대 한정판이라는 단서가 달려 있다. 값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원 모델인 쿠퍼SE에 들어 있던 블루투스 기능을 갖춘 ‘비주얼 부스트’ 옵션과 USB 포트를 빼고 클래식한 원형 속도계와 CD플레이어를 달았기 때문이다.

주양예 미니 총괄이사는 “미니 오리지널은 미니 시리즈가 갖고 있는 역동적인 주행 능력과 핸들링 성능에 동그란 형태의 계기판을 채택한 클래식 모델이라고 보면 된다. 역동적인 주행을 즐기면서 클래식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30대 남성이나 20대 젊은 층에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폴로와 미니의 전쟁이 불꽃을 튀기면서 2000만원대 수입차 시장이 넓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푸조·피아트·시트로엥 등 유럽에서 성능을 인정받은 소형차가 국내 시장에서 얼마나 활약할 수 있을지를 주목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국내 지명도는 떨어지지만 성능은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젤 엔진이 아닌 휘발유를 사용하는 수입 소형차의 국내 경쟁력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한 수입차 세일즈맨은 “2000cc급 미만의 국산 휘발유 엔진의 성능이 세계적인 수준이라 경제성이나 프리미엄 메리트 둘 중에 하나는 확보해야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폭스바겐·BMW·벤츠는 독일차라는 프리미엄 이미지에 디젤 엔진의 경제성을 더하면서 4000만~6000만원대 수입차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반면 가솔린차를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는 토요타와 혼다는 국내에서 기대만큼 큰 성과를 얻지 못하다가 최근 엔저(低)에 힘입어 가격 인하 공세를 통해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2000만원대라는 가격은 국산 중형차 시장과 겹친다. 한국에서 자동차 조립을 하는 메이커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때문에 현대차는 1700cc 디젤 엔진을 장착한 i40 살룬, 르노삼성은 2000cc급 이상의 성능을 1600cc 엔진으로 내는 고성능 다운사이징 엔진을 장착한 SM5 TCE, 한국GM은 크루즈에 2000cc 디젤 엔진을 얹은 자동차로 중형차 이상의 고성능과 경제성을 원하는 국내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2000cc 미만 수입차가 시장 주도권을 쥔 첫해인 2011년은 수입차 국내 판매 10만대를 돌파한 해이기도 하다. 이후 본격적인 수입차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지난해에는 13만858대가 팔려 전년에 비해 24.6%가 늘어났고 올해 역시 1~5월까지 6만1695대가 팔려 전년 동기 대비 19.4%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2000cc 미만의 2000만원대 차는 수입차 연간 판매량 20만대 시대를 앞당기는 방아쇠 구실을 할 것으로 보여 국산차와 수입차 간에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전투가 예상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