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씨는 ‘싸움’ 구경이나 하세요?
  • 엄민우 (mw@sisapress.com)
  • 승인 2013.07.0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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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NLL 이슈로 당내 입지 키우며 ‘안철수 압박’

국정원의 ‘2007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논란이 극으로 치닫던 6월30일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갑자기 등장했다. 그는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원본을 열람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사실로 드러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즉흥적인 게 아니었다. 공식 성명을 통해서 나온 계획된 발언이었다. 문 의원의 이러한 발언은 NLL 이슈에 대한 주도권을 틀어쥐게 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새누리당의 하태경 의원도 “이 싸움에서 가장 정치적 수혜를 많이 보고 있는 이는 문재인 의원이다. 그는 대선에서 지면서 사실상 후퇴했다가 이 사건 때문에 정치 전면에 등장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4월26일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국회에 첫 등원한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뒤로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정계 은퇴 배수진은 안철수 겨냥한 것”

문 의원뿐만 아니라 ‘친노(친노무현)’ 세력도 이번 NLL 국면을 통해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국정원 선거 개입 관련 민주당의 국정조사 특위 위원들을 보면, 김현·전해철·박범계·진선미·박영선 의원 등 친노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물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들은 연일 뉴스를 장식하며 NLL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한 당내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박범계 의원의 ‘권영세 녹취록’ 공개나 문재인 의원의 발언은 모두 당내 지도부와 협의 없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지도부를 이룬 ‘신주류’측은 이들의 활약에 끌려가는 모습이다. 민주당 신주류측의 한 인사는 “협의도 없이 문 의원이 저렇게 강경 발언으로 치고 나오는 바람에 완전히 판이 깨졌다. 그것 때문에 당내에서 얘기가 많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박지원 의원도 대화록 원문 열람 및 공개 입장을 밝힌 문 의원에 대해 “성급하고 잘못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왼팔이라는 안희정 충남도지사도 “국민은 대통령 기록물의 공개와 전임 대통령을 정쟁에 끌어들여 공격하는 일을 옳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내놓았다.

문 의원은 이번 ‘정계 은퇴’ 배수진으로 당내 입지를 한껏 끌어올린 것과 동시에 차기 대권 가도에서 라이벌로 꼽히는 무소속 안철수 의원을 압박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됐다. 그의 강경 발언이 새누리당뿐 아니라 안철수 의원을 겨냥한 것이라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NLL 이슈는 논쟁만 될 뿐, 결국 정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문재인 의원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계 은퇴를 내걸며 자신의 입지를 세우는 고도의 작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NLL 발언 논란은 앞으로 여야의 정쟁거리만 될 뿐이다. 올해 정국의 전환점이 될 수 있으리라고 봤던 10월 재보선은 몇 자리 안 되지, 국회에는 안철수라는 거물이 버티고 있지, 문 의원으로서는 반전의 기회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 의원이 NLL 정국 전면에 나서며 안 의원은 자연스레 뉴스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됐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는 “안 의원의 경우 대선 때 도와주던 인물 중에 군 출신이 많고, ‘안보는 보수’ 스탠스를 잡고 간다는 입장인데,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신율 교수는 “지금 안 의원의 입장에서는 나설 만한 상황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침묵만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문재인 의원의 남다른 행보도 주목된다. 김 교수는 “최근 정치권에서 문 의원의 (차기) 대선 출마 의지가 커지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문재인 대선 캠프인 ‘시민캠프’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캠프 해단식을 한 이후에도 참가자들이 여전히 다양한 루트로 서로 접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시민캠프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는 “대선 때의 캠프 사람들끼리 모임을 갖고 있다. 젊은 인사들을 중심으로 산악회, 번개 모임 등을 한다. 얼마 전 공식적 지지 모임인 ‘새정치시민포럼’도 출범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문가 찾아 나서며 ‘차기 행보’ 시작

새정치시민포럼은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지난 4월 출범했다. 화려하게 출범한 안철수의 정책네트워크 ‘내일’과는 달리 조용히 만들어졌다. 정책에 대한 연구와 정기적인 토론 등을 하며 회원을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안 의원의 ‘내일’과 유사한 행보다. 출범식과 함께 이뤄진 새정치시민포럼 토론회에서는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을 좁은 의미의 정치 개혁, 즉 정치제도 개혁에 한정함으로써 대선에서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문 의원은 민주당 내 계파 갈등에 따른 비판을 의식한 듯 친노 세력끼리 따로 모임을 갖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내 한 인사에 따르면, 여전히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인사들과 종종 전화 통화를 하는 등 접촉이 잦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문 의원이 좀 더 ‘준비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각계 전문가 집단을 모으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실제 최근 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문 의원측 인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직 정치권에 나서지 않은 전문가 중 함께할 만한 인물을 추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DJ 정부 시절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인사도 “요즘 문 의원측에서 전문성을 보강하기 위해 연구소 교수 및 기업인들을 접촉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인재를 모으고 있다’는 이야기가 도는 것도 안 의원과 비슷하다.

문재인 의원과 안철수 의원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행보 하나하나가 차기 대권과 연계돼 해석된다. 벌써부터 야권에서는 “어차피 2017년 대선의 야권 후보는 문재인과 안철수 그리고 박원순 중 한 명이 될 것”이란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 정치 전문가들은 지금의 NLL 이슈가 일시적으로는 문 의원에게 호재로 작용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계속 동력을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야권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안 의원과의 진검 승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얘기다. 신율 교수는 “문 의원이 (이번 NLL 이슈 선점으로) 민주당 내에선 입지가 넓어졌을지 모르지만 종합적으로 봤을 땐 재기라고 말하기 어렵다. 결국 결정권은 국민 여론에 있는데 NLL 이슈는 국민 입장에서 그다지 큰 관심을 갖기 힘든 사안이고, 반드시 친노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분석했다. 김윤태 교수 역시 “NLL을 평화수역과 연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발언이 일반 국민 정서와 조금 다른 면도 있기 때문에 향후 NLL 이슈가 친노에게 유리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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