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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입에 재갈을 물려주마”

‘TBS 취재 거부’ 사건을 통해 본 일본 자민당의 언론 길들이기

김회권 기자 ㅣ khg@sisapress.com | 승인 2013.07.16(Tue) 16:3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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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치가 파열음을 내는 자리에는 항상 아베 신조 총리가 있다. 6월26일 일본 참의원 정기국회 마지막 날, 생활당·사민당·녹색바람 등 야당 주도로 상정된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한 문책결의안이 찬성 125표, 반대 105표로 통과됐다. 야당들이 법적 구속력도 없는 문책결의안을 통과시킨 이유는 전날 있었던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아베가 참석하지 않아서다. 야당들은 “국민을 업신여겼다”며 아베를 정치적으로 응징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문책결의안 통과로 시간을 끌면서 이날 참의원에서 표결을 진행하려고 했던 4개의 법안이 처리되지 못하고 그대로 폐기됐다. 여기에는 빈곤층을 지원하는 생활보호법 개정안과 전력 시스템 개혁을 담은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들어 있다.

이날 밤 11시7분경 일본 민영방송인 도쿄방송(TBS)의 대표 보도 프로그램인 ‘NEWS23’은 일본 참의원 정기국회 마지막 날의 모습을 고스란히 방영했다. 뉴스는 중요한 민생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부분을 강조했다. 키시이 앵커는 민생 법안 대신 문책안을 통과시킨 참의원 분위기를 비판하며 “법안을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도가 나가고 일주일이 지난 7월4일 자민당은 NEWS23의 6월26일 보도를 문제 삼고 나섰다. 법안 폐기의 책임이 문책안을 결의하는 데 힘쓴 야당에 있는데도 마치 여당에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고 이유를 밝히며 ‘TBS 취재 거부’ 조치를 취했다. 자민당은 TBS의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자민당의 거친 대응에 각계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유명 저널리스트인 에가와 쇼코는 “지금은 참의원 선거가 한창 벌어지는 때라 각 당의 주장을 텔레비전을 통해 알고 싶어 하는 국민이 많다. 이건 정말 상식을 벗어난 대응이다”라고 비난했다.

   
7월4일 일본 참의원 선거 정당 대표 토론회에 참석한 아베 총리. 오른쪽은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한 정치 헌금 관련 문서. (위)ⓒEPA 연합, (아래)일본공산당 홈페이지
아베의 타깃은 TBS 넘어 마이니치?

쇼코의 말대로다. 7월4일은 21일로 예정된 일본 참의원 선거일의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하는 날이다. 참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의 압승이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집권당이 보도 내용에 불만을 품고 취재를 거부하겠다며 실력 행사에 나선 것이다. 난처해진 쪽은 자민당이 아니라 TBS였다. 주요 선거 취재를 앞두고 집권당과의 통로가 막혀버리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TBS가 당황해하는 동안 외부의 비판이 거세졌다. 그러자 자민당은 7월6일 은근슬쩍 취재 거부를 해제했다. 아베는 이날 후지TV에 밝은 모습으로 나와 “5일 밤 TBS의 보도국장이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간사장 앞으로 ‘향후 더욱 사실에 입각해 공정하게 보도하겠다’는 내용의 문서를 보내왔는데 사실상 사과 취지라서 취재 거부를 거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TBS를 순식간에 자민당에 머리 숙인 방송사로 만드는 데 성공한 순간이었다.

TBS 내부에서는 황당해했다. TBS의 한 관계자는 “오히려 강하게 나간 쪽은 우리다. 6월26일 프로그램 방송 후 27일 자민당의 항의를 받았다. 하지만 자민당 관계자들과의 모임에서도 사과나 정정 요구에 관해 타협하지 않아 결렬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TBS의 강한 어필에도 불구하고 “TBS가 아베에게 사과했다”는 쪽으로 인식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6월26일 TBS의 보도와 27일 자민당의 항의, 그리고 7월4일 취재 거부 선언과 7월6일 해제까지. 이 과정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자민당의 항의와 취재 거부 선언까지의 일주일이다. 26일 보도에 대해서는 즉각 방송사를 찾아가 항의했던 자민당이 취재 거부를 두고서는 일주일씩이나 기다렸던 이유는 뭘까. 다른 TBS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정기국회 마지막 날을 두고 다른 방송국에서도 비슷한 비판이 나왔다. 그런데 우리만 공격받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다른 방송사와 TBS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아베의 신경을 건드리는 마이니치신문의 존재다. TBS는 마이니치신문이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곳이다.

7월3일 밤 9시51분 마이니치신문 홈페이지에 하나의 기사가 올라왔다. 내용은 이랬다. “자민당이 집권에 성공하고 불과 두 달이 지난 올해 2월 대기업 건설업 관계자들의 모임인 일본건설업연합회(닛켄 연합)에 한 통의 문서가 도착했다. 자민당의 정치자금 단체인 ‘국민정치협회’가 닛켄 연합에 ‘4억7100만 엔’의 금액을 명시한 문서를 들이밀며 정치헌금을 요청했다.” 국민정치협회의 도장이 찍힌 이 문서는 ‘자민당은 강력한 국토 건설 과제에 전력으로 맞서고 있다’ ‘공공사업에 관한 특별 조처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강조했다. 우리가 공사를 많이 할 생각이니 헌금을 내라는 말로 요약된다. 그동안 공공사업이 감소하면서 고통받고 있던 건설업계에 이보다 달콤한 말은 없었다. 헌금 대가로 공공사업을 내건 정황이 뚜렷했다.

국민정치협회의 모금에는 자민당 집행부도 함께했다. 금액이 적힌 문서에 이름을 명시한 사람은 자민당의 이시바 시게루 간사장과 노다 세이코 총무회장 등 5명이다. 이들은 연명 문서를 닛켄 연합에 보내며 ‘일을 잘 도와주길 부탁드린다’고 기록했다. 닛켄 연합으로부터 받을 정치 헌금의 사용처는 7월24일 실시될 참의원 선거다. 이들은 “(참의원 선거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승리해 안정적인 정권을 세워야 한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마이니치의 취재에 자민당측은 사실관계를 확인해주지 않았지만 닛켄 연합 관계자는 “매년 일반적인 기부의 일환으로 부탁이 들어오고 있다”고 인정했다.

7월3일 참의원 선거 정당 대표 토론회에 참석한 아베는 마이니치신문의 보도에 대해 “문서를 본 적도 없으니 뭐라고 말할 것도 없다”고 말하며 흘리듯 넘어갔다. 다음 날 TBS에 갑작스러운 취재 거부 방침을 통보한 것을 두고 ‘마이니치가 목표’라는 말이 흘러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일본의 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는 “정치헌금 기사의 타이밍과 취재 거부가 묘하게 일치하는 것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일본 사회 보수화, 진보 매체 위축시켜

일본의 여론을 이끈다는 아사히·요미우리·마이니치·도쿄·니혼게이자이·산케이 등 6개 신문 중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곳은 아사히·마이니치·도쿄 등 세 곳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아사히신문조차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듣고 있다. 일본의 유명 작가인 아카야마 소이치로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사히신문이 우경화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질타당한다고 위축된 것은 아닌가”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보수화돼가는 일본 사회, 그에 편승한 아베의 인기 행진 때문에 정부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려 하다가도 숨을 골라야 하는 것이 일본 언론의 현주소다. 이런 와중에 아베가 마이니치·TBS 길들이기에 나선 모양새를 취했다. 이미 한 번 비슷한 전례가 있다. 2001년 1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모의재판을 방송하려던 NHK에 당시 자민당 간사장이었던 아베가 압력을 가해 무산시킨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를 보도한 아사히신문은 아베에게 사과했고, 기사를 썼던 기자들은 모두 지방으로 발령받았다. 10여 년이 흘렀지만 아베는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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