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든 진보든 편견의 안경 벗어야”
  • 감명국 기자·정리│조수영 인턴기자 ()
  • 승인 2013.07.2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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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록 실종’ 정국에서 여야에 고언 던진 문희상 의원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하지만, 지금의 정국은 그야말로 하루 앞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급변의 연속이다.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 문제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고, 민주당 김현·진선미 의원의 특위 위원 제척 문제와 장외투쟁 여부로 민주당 내 ‘친노’와 ‘비노’의 계파 갈등이 다시 불거졌다. 이런 와중에 7월18일 국가기록원이 “2007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없다”고 확인하면서 정국은 또 한 번 소용돌이치고 있다. <시사저널>이 긴급히 민주당 문희상 상임고문을 찾은 것은 그의 전력 때문이다. 그는 김대중 정부 때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지금의 김한길 대표 체제가 들어서기 직전까지 민주당 비대위원장으로 당을 이끌었다. 국정원 개혁과 당내 계파 갈등, 정국의 최대 이슈인 ‘대화록 실종’ 등 여러 현안에 대해 듣고자 7월19일 문 상임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 시사저널 이종현
대화록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여당은 “노무현 정부가 자료를 폐기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그보다 우선, 현재의 정국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본말이 전도돼 있다. 뭐가 중요하고 뭐가 근본 문제인지 중심을 잃고 있다. 이는 대통령이나 여야, 정부 모두 마찬가지다.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꼬리만 잡고 자꾸 콩이니 팥이니 하며 싸우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그러니까 국민들도 헷갈려하는 것이다. 지금의 본질은 오직 하나, 국가의 중요 권력기관인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한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와 관련한 근본적인 문제다. 그런데 이 문제는 제쳐두고 자꾸 곁가지만 갖고 시비를 일으킨다.

그래도 일단은 대화록 실종이 지금 첨예한 관심사가 되어 있다. 어떻게 보는가.

현재까지 찾을 수 없다는 것 아닌가. 만약 없는 게 사실로 확인된다면 이는 엄청난 사건이다. 세 가지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 참여정부(노무현 정부)에서 아예 보내지 않았거나, 이명박 정부에서 이 문제를 호도하기 위해 없앴거나, 아니면 기록원에 보관돼 있는데 지금 찾지 못하고 있는 경우다. 사실 나는 첫째와 둘째의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가 아무리 노무현 세력을 규탄하고 다 부정하려 했다 하더라도 기록물까지 폐기했을 거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또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그 이전인 2000년 남북정상회담 자료를 참고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때문에 뒤를 잇는 정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일부러 대화록 한 부를 국정원에 보관하도록 했는데, 정작 대화록 원본은 없앴다는 게 말이 되나. 30년 후에는 치적으로 공개될 내용을 스스로 폐기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상식적으로도 성립이 안 된다.

만약 국가기록원에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향후 정국은 대립 국면이 불가피할 듯한데.

보수든 진보든, 이제 그만 편견의 안경을 벗어야 한다. 이분법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보수는 진보를 인정하고, 진보는 보수를 인정해야 한다. 서로의 가치가 다르다고 해야지, 틀렸다고 하면 안 된다. 새누리당은 지금도 “민주당은 NLL 수호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며 자꾸 편견을 드러낸다. “대선 불복을 하는 것 아니냐”고 자꾸 공격한다. 민주당은 한 번도 대선 불복이라고 말한 적도, NLL 포기라고 말한 적도 없다. 문재인 의원도 몇 차례나 강조하지 않았나. 다만 NLL이 영토선이라는 표현은 절대 쓰지 않는다. 왜냐. 그것은 NLL 이북이 우리 영토가 아님을, 즉 북한이 남의 영토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는 헌법에 반하는 것이다. 하지만 NLL은 우리가 사수해야 할 북방한계선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꾸 새누리당이 이를 거론한다. 본말을 뒤집기 위해 얕은 술수를 부리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낸 바 있다. 지금 국정원 개혁 요구가 한창인데.

당시 내가 기조실장을 맡으면서 세 가지를 개혁했다. 우선 고문을 없앴다. 아예 ‘남산’ 자체를 다 폐쇄해 고문이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을 처음부터 없애버렸다. 둘째는 도청과 불법 감청을 없앴다. 마약, 국제 스파이 이런 것 때문에 감청이 꼭 필요한 것은 법원의 영장을 받아서 하도록 법률적 근거를 만들었다. 셋째는 정치 개입을 국정원법으로 금지시켰다. 국정원법에 다 나와 있다. 이게 10년 민주 정부에서 지켜졌는데, 이명박 정부 때 다시 나타났다. 고문이나 도청이야 없겠지만, 정치 개입은 부활했다. 이는 새누리당이 부인해도 소용없다. 이미 검찰 조사에서 다 밝혀진 것 아닌가. 따라서 다시 5년 전, 10년 전으로 돌아가면 된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이것은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 지금 정국에서 누구보다 가장 앞장서서 정치권에 이슈를 만드는 이가 누군가. 바로 남재준 국정원장 아닌가. 정보기관의 수장이 이렇게 하면 큰일 난다.

국정원 국정조사특위 정상화를 위해 진선미·김현 의원을 위원에서 제척시키는 문제를 놓고 민주당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그 두 의원이 바로 국정조사특위를 이끌어내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우리 당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분들이지만 내가 당에 이런 말을 했다. “쥐 잡다 독을 깰 수야 없지 않느냐”고. 여당이 왜 두 의원을 걸고넘어지는지 그 속내야 빤하지만, 그냥 모른 척 속아주고 넘겨야 한다. 그리고 국정조사를 살리고, 대신 두 분이 명예롭게 특위 위원을 사퇴할 수 있는 명분을 찾아주라고 조언했다.

지금 김한길 대표 체제의 민주당 지도부가 너무 약한 게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있다.

나는 김한길 대표 체제가 ‘B+’ 정도의 점수는 된다고 본다. 민주주의와 민생을 같이 추진하는 방향은 옳다고 본다. 그게 또 우리 민주당의 살길이다. 생활 현장을 포기하지 않아야 신뢰받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렇다고 민주주의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을 절대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야당이 강력해야 대통령도 사는 것이다. 민주주의도 챙기고 민생도 챙기고자 하는 지금의 전략은 옳다고 본다. 다만 전술적으로 좀 문제가 있다. 사안 사안마다 좀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있는데, 좀 더 기민하고 재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지난 5월까지 비대위원장으로 민주당을 이끌었는데, 민주당의 이른바 ‘친노’와 ‘비노’ 계파 갈등은 어느 정도인가.

계파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조직에는 주류와 비주류가 있다. 하다못해 친목회 하나에도 회장단이 있으면, 그 나머지는 비주류 아닌가. 모든 조직이 하나로 일사불란하게 간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다. 비판과 견제가 없으면 건강한 조직이 아니다. 주류와 비주류는 자연스럽다. 나는 계파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패권주의는 안 된다.

방금 패권주의를 언급하셨는데 친노를 비판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게 바로 패권주의다.

지금 친노는 힘이 없다. 대표, 원내대표, 최고위원 중에 (친노가) 누가 있나. 패권이란 말은 안 맞다. 다만 지금 문재인 의원이 앞장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건 당연한 것이다. 자신이 모시던 대통령이 ‘부관참시’당하는 마당에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는 게 문 의원의 가장 큰 덕목으로 꼽히는 것 아닌가.

두 계파 간 융합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당에는) 더 큰 주적이 있다. 야당은 야당다워야 한다. 야당다운 모습에서는 서로 이견이 없다.

당이 장외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내가 비대위원장인 당시 상황이라면 나는 (장외투쟁은) 안 할 것이다.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덮어놓고 국회 밖으로 나가는 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회에서의 활동이 완전 먹통일 때, 길이 안 보일 때 나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이 완전히 먹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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