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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리그 ‘대기업 귀족학교’

임직원 자녀 최대 70% 선발 특혜…한수원 등 공공기관도 설립 나서

조혜지 인턴기자 ㅣ 승인 2013.07.23(Tue) 10:4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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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뭐 하시노?” 영화 <친구>의 대사다. 이 물음이 통하지 않는 학교가 있다. 바로 기업이 출연한 자율형 사립고, 이른바 ‘대기업 자율고’다. 이들 학교에선 아버지의 직업을 물을 필요가 없다. 입학 정원 중 해당 기업 임직원 자녀 비율을 적게는 40%, 많게는 70%까지 못 박아뒀기 때문이다. 학부모들 사이에선 이들 학교를 ‘대기업 자녀들이 다수인 학교’ ‘학비 비싼 만큼 대학 잘 가는 학교’로 인식하고 있다.

하나금융지주가 출연한 ‘하나고’는 대표적 대기업 자율고다. 하나금융은 2010년 설립 당시 출연한 375억원 규모의 자금과 더불어 매년 20억원씩 지원하는 운영비를 포함해 지금까지 총 845억원 상당을 출연했다. 설립 초반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이 학교 설립 인허가권자인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의 선거 후원금을 낸 것이 확인되면서 특혜 시비가 일기도 했다.

하나고의 연간 학비는 1인당 1332만원(2012년 정진후 진보정의당 의원실 발표)이며 등록금만 약 439만원에 달한다. 비싼 학비는 제값을 했다. 올해 처음 배출한 졸업생 200명 중 99명이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라 불리는 명문대에 진학하면서 하나고는 단박에 명문고 반열에 올랐다. 자타가 인정하는 귀족 명문학교가 된 것이다.

   
서울 은평 뉴타운에 있는 하나고등학교. ⓒ 시사저널 전영기
공교육 거스르는 대기업 자율고

엄마들의 입시 로망 학교로 자리 잡은 하나고가 최근 큰 위기를 맞았다. 하나고에 대한 하나금융지주의 모든 지원이 중단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나금융 계열사인 외환은행이 하나고에 자금 출연을 시도하다 물의를 일으킨 것을 계기로 은행법이 다시 개정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금융위원회는 7월2일 시행령에서 금융 계열사의 공익법인 출연을 허가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문제는 ‘단서 조항’이다. 출연은 허가하지만 ‘출연 목적에 임직원 우대 설정 등 대가성이 있는 경우에는 출연을 금지한다’는 게 골자다. 대기업 자율고 출연에 비교적 자유로운 교육법 대신 은행법을 우선 적용한 결과다. 결국 하나금융은 임직원 자녀 비율을 폐지하지 않는 한 하나고에 자금 출연을 할 수 없게 됐다. 현재 하나고는 입학 정원의 20%를 하나금융 임직원 자녀로 채우고 있다.

   
2013년 하나고 홈페이지 신입생 모집 요강. ⓒ 하나고 홈페이지 캡처
하나고와 하나금융은 세 가지 난제, 즉 트릴레마에 빠졌다. 기업이 공익법인에 출연하는 제1의 목적이 임직원 교육 복지 제공에 있는 만큼 입학 전형에서 임직원 자녀 특혜 조항이 없으면 굳이 수백억 원의 자금을 출연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러나 이미 하나고 설립 기획 단계부터 현재까지 총 800억원 이상을 쏟아부은 하나금융으로서는 하나고에 출연한 이 돈이 고스란히 매몰 비용이 될 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임직원 자녀와 함께 배정된 40명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사배자)들이다. 하나금융의 자금 지원이 끊기면 각종 장학금으로 학교생활을 하던 사회적 배려 대상 학생들이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이들이 각종 어학연수와 1인 2기 음악 수업, 해외 수학여행 등 고급 교육을 표방한 하나고의 수업을 지원금 없이 따라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하나고 관계자는 “아직 지주회사와 장학금 여부에 대해 공유한 상황은 아니다. 그동안 축적된 수익 재산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염려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비단 금전적인 문제뿐일까. 강혜승 참교육학부모회 서울지부장은 “일반적으로 대기업 자율고의 사배자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은 학비·기숙사비 등 기본적인 것만 제공하는 것으로 안다. 학교 특성상 기본 학비만으로는 학업을 진행하기 힘들다. 장학금이 줄어들면 참여율도 그만큼 낮아질 것이다. 돈은 둘째치고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소외감이라는 멍에를 지게 할 수도 있다. 애초에 대기업 자율고 설립 자체가 공교육을 거스르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핵심은 대기업에서 출연한 자율고가 대한민국 전체 교육 발전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다. 교육 당국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듯하다. 교육부는 2010년 초·중등 교육법 개정을 통해 대기업 자율고를 ‘종업원의 복지 증진을 위하여 기업체가 출연하여 설립한 학교법인’으로 명시하고 ‘교육감의 승인을 얻어 입학 정원의 일정 비율을 해당 학교의 장이 정하는 방법으로 실시할 수 있다’는 조항을 집어넣었다. 대기업 사립고의 자율적인 입학 전형 방식을 허용한 것이다.

   
대기업 고교 법인 속속 출현

이에 발맞춰 대기업들의 고교 법인 출연이 늘어나고 있다. 삼성에서 출범한 은성고와 포스코재단의 고등학교가 교육부의 설립 허가를 받고 각각 2014년, 2015년에 개교할 예정이다. 현대제철과 한국수력원자력도 자율고를 설립하기로 했다. 은성고가 들어서는 충남 관할 교육청의 한 주무관은 “아산 지역의 학급 과밀화 해소와 지역 교육 발전을 위해 결정한 사항이다. 공립학교를 지으려면 최대 5년이 걸리는데 기업과 연계한 자율고 설립은 허가부터 개교까지 짧은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다. 공립고를 세우고는 있지만 지역적인 요건과 재정적 여건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역 사회 교육단체들은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임직원 자녀 비율’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지역 교육 발전에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은성고의 임직원 자녀 입학 비율은 70%로, 학교 정원의 절반 이상이 ‘삼성 자녀’들로 구성될 예정이다.

포스코재단의 학교도 50%를 임직원 자녀 몫으로 할당했다. 이미 설립된 학교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포스코재단의 포항제철고와 광양제철고가 각각 60%와 70%, 인천공항공사의 인천하늘고가 45%, 현대중공업의 현대청운고가 15%를 임직원 자녀로 선발하고 있다. 광양제철고의 경우 전교생 385명 중 269명이 포스코에서 일하는 부모를 둔 학생인 셈이다.

삼성 관계자는 “아산에는 삼성의 사업장이 많다. 그곳에서 일하는 임직원들의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학교를 짓는 것이다. 기본적인 목적은 임직원들의 복지와 지역 교육 발전에 있다”고 자율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그는 또 “소외 계층과 지역 사회를 고려한 입학 정원도 할당했다”고 덧붙였다. 삼성은 은성고의 입학 비율에서 70%를 제외한 30% 중 20%를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10%를 지역 사회 인재로 정했다.

참교육 학부모 충남지회 관계자는 “대기업 자율고는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역 사회의 평등 교육과 선진 교육에 이바지하는 게 목적이라면 지금의 정책과 다른 방향을 제시했으면 좋겠다. 70%나 되는 학생을 기업의 자녀로 선발하면서 지역 인재 양성 운운하는 건 모순이다. 지역 학생 우선 선발을 더 늘리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창의 인성 교육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개성과 잠재력을 적극 개발할 수 있는 최적의 교육 환경.’ 교과부와 기업체가 2012년 체결한 자율형 사립고 관련 업무협약 내용 중 한 부분이다. 입학 전형 비율에 임직원 자녀 비율이 설정돼 있는 이상 대기업 자율고가 설립 목적으로 밝히는 ‘지역 교육 발전’ ‘수준 높은 교육의 기회 제공’은 제1의 목적 ‘임직원 교육 복지 해결’ 앞에서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교육법 대신 은행법이 먼저 적용돼 하나고에 대한 지원이 가로막힌 하나금융의 사태를 곱씹어봐야 한다. 은행법이 아니라 교육법에 의해 환기됐어야 할 사항이기 때문이다. 최하영 교육부 학교선진화과 서기관은 “지금 지정된 고등학교에 대한 성과를 정리하는 중이다. 발생 가능한 문제점을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홈페이지에 약속한 ‘대한민국 어디서든, 누구든 공평하게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교육’은 ‘임직원 자녀들이 다니는 학비 비싼 학교 설립’과 공통분모가 없다. 교육부는 대기업 자율형 사립고를 원점에서 점검해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방부도 자사고 설립한다 


국방부·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등 공공기관 두 곳도 자사고 설립을 추진 중이다. 국방부 의 한민고등학교는 내년 3월 개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경기도 파주에 건설 중이며 오는 12월 완공될 예정이다. 초대 이사장은 김태영 전 국방부장관이 맡는다. 한수원도 경북 경주에 자사고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아직 설립 기획 단계이며, 개교를 위해 관계 기관과 협의 중이다.

두 학교의 공통점은 ‘직원 자녀 선발’ 비율을 할당했다는 데 있다. 한민고등학교는 전교생 1200명 중 70%인 840명을 군인 자녀 중에서 뽑을 예정이다. 한수원도 비율은 정하지 않았지만 ‘임직원 자녀 전형’을 선발 조건에 넣을 계획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본사 직원 중 800~900명이 내려가는데 직원 자녀가 다닐 고등학교가 부족한 실정이다. 설립 신청은 아직 하지 않았고 추진 중에 있다”고 말했다.

두 학교는 공공기관 학교다. 국방부의 경우 국고 60억원을 민간 보조금 형태로 학교 설립에 지원했고, 개교 후에도 매년 운영비 가운데 절반을 정부 예산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학교이니만큼 입학 전형의 파이를 공정하게 나눌 필요가 있다.

한수원도 마찬가지다.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경주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착공식에서 한수원 자사고를 ‘경주 시민께 드리는 경주 방폐장에 대한 선물’이라고 했다. 한수원이 짓는 학교는 한수원만의 학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아직 설립 단계여서 확정된 바는 없지만 지역 교육에 기여할 수 있는 여러 방안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수원의 자사고가 경주 시민들에게 진짜 선물이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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