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 조혜지 인턴기자 ()
  • 승인 2013.07.3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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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의 한복판에 선 대통령기록관은 어떤 곳?

“진실은 언제나 사랑받는다.”

박경국 국가기록원장이 한 말이다. 정확히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모든 시선은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대통령기록관으로 쏠렸다. “관련 자료가 MB(이명박) 정권에 의해 훼손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민주당에서 제기되자 대통령기록관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박 원장이 7월23일 밝힌 입장은 대통령기록관을 향해 쏟아지는 세간의 의심 어린 시선에 대해 억울하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7월26일 현재 박 원장의 글은 삭제된 상태다.

대통령기록관은 국가기록원 산하에 있다. 현재 대통령기록관장은 1년 넘게 공석이다. 2대 김선진 관장을 끝으로 후임을 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관장 임기가 5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기록관이 출범한 2008년 이후 실제 관장이 있었던 기간은 3년 안팎이다. 임명 권한이 유명무실하게 된지도 오래다. 법률상 ‘대통령기록관장의 임명 권한은 전임 대통령에게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초대 임상경 관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봉하마을의 ‘e지원 시스템 이전’ 문제로 MB 정권에 의해 문책성 경질을 당했다.

7월22일 여야 의원 10명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찾기 위해 국가기록원을 방문했지만 실패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대통령의 ‘기록’은 대통령·국무총리 등 비밀취급 인가자만 열람 가능한 ‘비밀기록물’과 대통령이 직접 보호를 지정하는 ‘지정기록물’, 그 외 일반에 공개하는 이관 문서 등으로 분류된다. 문제는 지정기록물이다. 지정기록물은 대통령기록물을 분류할 당시부터 미국의 사례를 참고해 15년이라는 열람 제한 기간을 설정한 ‘보호기록물’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흔적이 남는 것을 두려워해 일부러 기록을 남기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기록 유도 장치’다. 안병우 기록관리단체협의회 회장의 표현을 빌리면 ‘생산하기 위해 보호하는’ 대통령의 기록이다.

대통령기록관의 보안 시스템은 경중에 따라 달리 관리된다. 특히 대통령이 직접 보호를 설정한 지정기록물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의해 철저히 보안된다. 만일 관련 내용을 발설하거나 공개할 경우 대통령지정기록물 누설죄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함부로 손대선 안 되는 ‘국가 기밀’이다.

“시일 걸리더라도 끝까지 찾아야”

현재 존재 유무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2007년 대화록은 애당초 보호 기간이 설정된 지정기록물이었다. 물론 국회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거나 법원 영장을 발부받으면 열람이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이 문제적 ‘사초’가 행방불명된 지금은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법 정신이 열람 남용의 경우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기록 보관 방식이 바뀌었다는 사실에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신전자문서 시스템, e-지원 시스템, 개별 업무 시스템, 녹음테이프 및 CD, 종이 등의 비전자 기록으로 보관됐던 기록들이 이명박 정부 이후 PAMS라는 기록 관리 시스템과 대통령기록관 서고로 각각 분류됐는데 그 과정에서 ‘누락’ ‘폐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록관리단체협의회 및 기록관리연구원 등 국내 기록물 관리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시일이 걸리더라도 더 찾아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자 검색 테두리 밖에 있는 기록관 서고를 한 번 더 샅샅이 뒤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비전자 기록과 녹음테이프 및 CD 틈에 회담록과 관련된 문서가 끼어들어갈 수도 있다는 게 그들의 관측이다.

애초에 ‘찾아야 한다’고 판정된 기록물이라면 존재 여부라도 확실하게 밝혀내는 게 순리다. 끝까지 찾아보지도 않고 섣불리 없다고 단정해 정쟁의 도구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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