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미래에셋 흔들린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7.3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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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수익률 저하로 신뢰 잃어…‘창업 동지’ 구재상도 떠나

미래에셋증권이 누리집에서 제공하는 ‘이달의 포트폴리오’에는 투자자의 위험 성향별 자산 배분과 함께 ‘Top-Pick 상품군’이라는 것이 나와 있다. 7월 국내 주식형 펀드로 3개가 추천돼 있고 이 중 미래에셋의 상품은 ‘미래에셋코리아컨슈머’ 펀드뿐이다. 나머지는 ‘신영밸류고배당’ ‘KB밸류포커스’ 펀드다. 한 증권사 상품 담당자는 이런 상황을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위기’라는 한마디로 표현했다. “예전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미래에셋증권이 주식형 펀드 추천 상품에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아닌 다른 회사 상품을 건다는 것은…. 그만큼 계열사 주식형 상품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 장면은 펀드 시대를 연 미래에셋그룹의 현재 자화상이다. 미래에셋은 2008년 이전에는 투자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이후에는 공공의 적으로 몰리기도 했다.

박현주 회장은 펀드 투자 시대를 열어 재벌 반열에 올랐다. ⓒ 연합뉴스
“미래에셋 간판, 채권·부동산으로 바뀌었나”

최근 증권가에서는 미래에셋의 간판이 펀드가 아니라 채권과 부동산이 됐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돈다. 부동산 투자를 전담하던 정상기 대표가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를 맡고 있고, 서울 광화문에 포시즌호텔을 짓고 있는 데 이어 호주의 포시즌호텔도 인수했다. 채권 쪽 사람도 중용하고 있다. 지난 4월 초 미래에셋증권 인사에서 변재상 대표이사 전무가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변 사장은 채권 전문가다. 조한홍 기업RM 부문 대표, 조민상 트레이딩 부문 대표도 모두 채권 전문가다.

반대로 펀드 운용 쪽 전문가들은 미래에셋을 떠나고 있다. 미래에셋 창업 3인방으로 꼽히는 박현주·구재상·최현만 중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이 떠난 것은 상징적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미래에셋을 떠나 한동안 휴식기를 갖다 지난 6월 K클라비스투자자문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구 부회장이 미래에셋을 떠난 이유는 ‘투자 철학이 맞지 않아서’라고 알려졌지만, 미래에셋 쪽에선 “구 대표가 자신의 사업을 위해 나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자산운용의 총책임자인 그와 투자 철학을 놓고 다툴 만한 사람은 오너인 박현주 회장밖에 없다. 이들이 투자 철학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면 그 대상은 2007년 10월31일에 출범한 인사이트펀드가 유력하다. 당시 인사이트펀드는 설정한 지 보름 만에 4조원 넘는 돈이 몰려 ‘묻지 마 투자’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당시 미래에셋은 디스커버리펀드, 미래에셋차이나솔로몬(미차솔), 브릭스펀드 등을 앞세워 펀드 명가로 통하고 있었다. 투자자들이 은행에서 “미래에셋 펀드 하나 주세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디스커버리 등 국내 주식형 펀드가 선전한 데다 선제적으로 행한 중국 투자가 크게 재미를 보며 미래에셋은 펀드 투자의 대명사가 됐다. 여세를 몰아 인사이트펀드를 출범시킨 것. 당시를 기억하는 한 투자자문사의 임원은 “미래에셋은 당시 브릭스, 미차솔을 통해 시중의 자금을 빨아들여 과열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고객을 생각한다면 인사이트펀드를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인사이트펀드는 출범 당시 ‘투자 대상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깜깜이 펀드’로 불렸다. 투자자가 돈만 맡기면 운용사가 채권이든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알아서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자산운용측은 “인사이트펀드가 중국에 ‘몰빵 투자’ 했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설정 당일 설정액의 40%만 중국에 투자했다. 설정 당일이 중국 증시 역사상 최고점을 찍은 날이었다. 이후 주식이 많이 빠져서 분할 매입으로 투자를 계속하다 보니 중국 투자액이 많아진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인사이트펀드의 실패는 미래에셋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투자자들의 계약 해지가 꼬리를 물면서 악순환이 시작된 것. 국내 주식형 펀드의 대명사였던 디스커버리와 인디펜던스의 수익률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실무 책임자들은 이후 자주 바뀌었다. 2008년 이후 미래에셋자산운용을 떠난 본부장급 이상 인사는 구재상 부회장을 비롯해 서재형·김성우·강두호·이승준 본부장 등 여럿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지탱하는 주축들이었다.

미래에셋의 간판인 주식형 펀드 수탁고도 쪼그라들었다. 2007년 12월 기준으로 미래에셋의 주식형 펀드 수탁고는 23조원으로 국내 주식형 펀드 수탁고 57조원의 40.9%를 차지했다. 2008년 12월에는 75조원 중 30조원을 차지해 40.2%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후 계속 빠져 2013년 6월 기준 국내 주식형 펀드 수탁고는 65조5000억원인데, 미래에셋의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9조2000억원으로 점유율이 14.1%에 불과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구재상 부회장이 떠난 후 시스템을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수익률도 투자자들도 별 움직임이 없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음에도 박현주 회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박 회장은 공개적인 자리에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미래에셋측은 “박 회장이 해외를 바쁘게 오가면서 회사 일에 열심”이라고 전했다.

최근 미래에셋그룹은 지배구조를 손질했다. 박현주 회장은 미래에셋컨설팅(48.6%)·미래에셋자산운용(59.8%)·미래에셋캐피탈(48.7%)의 지분을 통해 그룹을 장악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과 미래에셋생명은 미레에셋캐피탈이 대주주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투자·개발하고 있는 광화문 포시즌호텔 건설 현장. ⓒ 시사저널 전영기
박현주 후계 구도 가시화하나

이 중 미래에셋의 후계 구도와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는 계열사는 미래에셋컨설팅이다. 박 회장의 부인 김미경씨가 10.2%의 지분을 갖고 있고 박 회장의 1남 2녀 자녀도 각각 8.19%씩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컨설팅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미래에셋펀드서비스를 자회사로 두고 있고, 미래에셋펀드서비스는 미래에셋캐피탈의 지분 13.46%를 갖고 있다. 미래에셋컨설팅도 미래에셋캐피탈의 지분 11.77%를 갖고 있어 미래에셋컨설팅이 사실상 그룹의 지주회사 격이다.

7월 초 공시된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미래에셋펀드서비스는 인슈코리아보험대리점을 흡수 합병했다. 이번 M&A의 핵심은 인슈코리아의 미래에셋캐피탈 지분 4.83%. 흡수 합병으로 미래에셋펀드서비스의 미래에셋캐피탈 지분은 13.46%가 됐다. 증권과 생명을 지배하고 있는 미래에셋캐피탈의 2대 주주로 미래에셋컨설팅이 등장한 것이다.

이는 미래에셋그룹이 박 회장 1인 지배 체제에서 2세를 포함한 가족 지배 기업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 투자자문사 대표는 “투자자문사나 자산운용사는 개인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재산 승계의 대상이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개인 회사(60.19%)처럼 놔두고 시스템과 하드웨어 등 유형 자산이 많은 증권과 생명 지분을 2세 등 가족 공동 소유로 돌리고 있는 점은 흥미롭다. 미래에셋그룹의 전체 매출에서 증권과 생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90%를 넘는다.

지배구조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대목은 최근 미래에셋증권이 주당 1000원의 현금 배당을 실시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배당 금액 500원보다 배가 증가한 금액이다. 덕분에 미래에셋증권의 대주주인 미래에셋캐피탈은 155억원의 현금을 손에 쥐게 됐다. 미래에셋캐피탈은 사실상 박 회장과 그의 가족 회사나 다름없다.

미래에셋증권으로부터 배당을 받은 것과 비슷한 시점인 지난 6월27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박 회장이 받을 올해 배당액 34억3000만원을 전액 미래에셋박현주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국내 시장에서 주식형 펀드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판매 창구로 통했던 미래에셋증권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 5월 말 기준 미래에셋증권의 판매 잔고는 미래에셋자산운용 펀드가 86%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이 ‘고객을 위한 자산 관리’보다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수탁고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게 빈말이 아닌 셈이다.

인사이트펀드 출시와 잇따른 수익률 폭락 사태 이후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주식 부문은 최악에 처해 있다. 최근 판매한 펀드의 수익률이 너무 낮다는 판매사 담당자의 질책에 “그래도 미래에셋보다는 낫지 않습니까”라는 말로 답을 대신한다는 어느 운용사 마케팅 담당자의 이야기는 미래에셋의 추락한 위상을 잘 보여준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주식형 펀드 수익률은 바닥을 기고 있다. 최근 미래에셋이 증권과 함께 해외 상품 위주의 상품 라인업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상대적으로 채권형이 선전하고 있지만 금리가 워낙 낮은 탓에 연 4% 안팎의 수익률로는 일반 고객에게 투자를 권유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한때 최대 규모의 공모 펀드를 운용했던 미래에셋 주식형의 몰락은 고스란히 고객 피해로 이어졌다. 국내 최대 규모의 주식형 펀드였던 ‘인디펜던스’ ‘디스커버리’ 펀드의 최근 5년간 누적 수익률은 각각 0.29%, -2.53%에 불과하다. 전체 펀드를 100으로 봤을 때 90등 이하다. 2007년 10월 말 출시돼 운용된 지 7년 차에 들어가고 있는 인사이트펀드의 올 6월 말 기준 설정 후 수익률은 -20.08%. 7년 동안 돈을 굴렸는데도 마이너스인 것은 미래에셋의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탐욕의 결과다. 미래에셋이 국내 최대 자산운용사로 성장하는 동안 자산운용 산업과 다른 회사와의 상생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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