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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반란을 꾀하다

세계적 배우들과 <설국열차> 타고 온 봉준호 감독

허남웅│영화 칼럼니스트 ㅣ 승인 2013.07.31(Wed) 14:4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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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에 쏠린 관심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이다. 대개는 한국 매체들로 북적이는 언론시사회에 ‘스크린데일리’, <버라이어티> 같은 해외 유수 언론사 기자들이 참석했다. <살인의 추억>(2003년), <괴물>(2006년), <마더> (2009년)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봉준호 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인 까닭이다.

스케일부터가 남다르다. 제작비가 한국 영화 사상 최고액인 450억원이고, 참여한 배우의 면면도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퍼스트 어벤저>(2011년)의 크리스 에반스, <케빈에 대하여>(2011년)의 틸다 스윈튼,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년)의 존 허트, <빌리 엘리어트> (2000년)의 제이미 벨, <더    록>(1996년)의 에드 해리스, 그리고 <헬프>(2011년)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옥타비아 스펜서까지. 할리우드에서도 모으기 힘든 이 쟁쟁한 배우들이 한국의 송강호·고아성과 함께 <설국열차>에 동승한 것이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해방’이 주제이지만 장르 비틀기로 승부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설국열차>는 기상이변으로 모든 것이 얼어붙은 빙하기를 맞아 생존자를 태운 채 끝없이 궤도를 달리는 열차가 배경이다. 그런데 이 열차, 계급 피라미드를 수평으로 늘어뜨린 것처럼 사람들의 신분이 칸으로 정확히 구분돼 있다. 맨 뒤쪽의 꼬리 칸이 배고프고 돈 없는 이들로 바글대는 빈민굴이라면 앞쪽 칸으로 갈수록 호화로워지는 객실은 선택받은 사람들의 세상이다. 이에 불만을 느낀 꼬리 칸의 젊은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맨 앞쪽의 엔진 칸으로 전진하기 위한 폭동을 도모한다.

봉준호 감독이 <설국열차>의 영화화를 결심한 건 2004년 겨울. 홍대 앞의 단골 중고 만화 책방에 들렀다가 <설국열차>를 발견해 그 자리에서 다 읽고는 영화로 만들 생각을 굳혔다.

“최초의 매혹은 ‘기차’라는 독특한 영화적 공간이었다.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인간들의 모습이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더 나아가, 인간들은 서로 싸우고 있었다. 최후의 생존자들을 태운 노아의 방주에서조차 인간들은 칸과 칸으로 계급이 나누어진 채 서로 평등하지 못했던 것이다.”

<살인의 추억>의 참혹한 연쇄살인, <괴물>의 한강에 나타난 괴물, <마더>의 미쳐가는 엄마 등 봉준호 감독은 늘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의 본성을 파헤치는 데 집중했다. 더 정확히는, 약자의 위치를 점한 이들이 시스템에 저항하며 발버둥치는 모습으로 우리 사회의 진짜 모습을 고발하길 즐겨왔다. 다시 말해 꼬리 칸의 해방을 이야기의 엔진으로 삼은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의 작가적 세계가 기차라는 소우주 속에 이식된 영화라 할 만하다.

다르다면 전작들이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과 정서를 바탕으로 독특함을 획득했던 데에 반해  <설국열차>는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영화이니만큼(이미 개봉 전 167개국 판매를 완료했다) ‘해방’ 하면 떠오르는 레퍼런스가 꽤 된다는 것. 예컨대 선택받은 리더, 베일에 싸인 절대자, 어둠이 지배하는 내부와 이를 뚫고 나가면 대면할 수 있는 밝은 외부 세계 등을 감안하면 <설국열차>는 기차 버전의 <매트릭스>를 연상시킨다. 우리가 봉준호의 영화를 떠올렸을 때 기대할 법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

실제로 <설국열차>에는 봉준호 영화 특유의 유머가 거의 실종됐다. 열차의 보안설계자 남궁민수 역을 맡은 송강호가 <살인의 추억>에서 보여준 예의 그 말장난식의 개그를 선보이지만 영어권 배우들과 대화의 합을 맞추지 못해 적중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언어의 뉘앙스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을 감안하면 다국적 배우와 스태프가 참여한 <설국열차>에서는 애당초 봉준호 감독의 개성이 많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단 하나, <설국열차>에서 즐길 수 있는 봉준호 감독의 주특기는 바로 장르 비틀기다. <살인의 추억>으로 범인이 잡히지 않는 범죄영화를 만들었고, <마더>로 중년의 아줌마가 주인공인 작품을 연출했던 것처럼, 해방을 주제로 삼은 이번 영화에서는 미국 중심의 사고(思考)를 벗어난 새로운 시각을 선보인다. 스포일러라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세계의 리더로 앞장서거나 활동했던 건 늘 미국이었고 백인이었는데, 봉준호 감독은 이와 같은 시각에 균열을 가하는 것이다.

해외 언론들도 앞다퉈 호평

흔히 SF(공상과학)는 그 특성상 스케일이 큰 경우가 많아 할리우드가 가장 독보적인 만듦새를 과시해온 장르다. 아무리 <설국열차>에 한국 영화 최고액의 제작비가 투입됐다고는 해도 ‘때깔’ 면에서 할리우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은 이번 영화의 제작 과정을 회고하며 이렇게 얘기했다. “한국에서는 최고 제작비이지만 미국에서는 중·저예산 작품으로 분류된다. 큰돈을 쓰긴 했지만 내 연출작 중 가장 허리띠를 졸라매며 계획에 맞춰 찍으려고 노력한 작품이다.”

<설국열차>는 SF라는 기차의 꼬리 칸에 위치한 봉준호 감독이 맨 앞쪽의 할리우드를 향해 던지는 선전포고다. 그렇다면 봉준호의 반란(?)은 성공적인가. ‘스크린데일리’는 ‘사회적 계급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전개를 보여준다’고 호평했다. <버라이어티>는 ‘천재 감독의 야심찬 미래 서사시로 제임스 캐머런, 크리스토퍼 놀란, 기예르모 델 토로 같은 유수의 감독들이 연출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매우 찾아보기 힘든 특성’이라고 극찬했다. 봉준호는 이미 맨 앞쪽 칸의 사람들을 매료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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