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경제팀 신뢰 못 주고 있다”
  • 노진섭 기자·조혜지 인턴기자 ()
  • 승인 2013.08.14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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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전문가 설문…“창조경제 실체 모호” 지적도 많아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기인 만큼 임명한 지 6개월 만에 경제 수장을 교체하는 것은 성급하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의 교체 여부와 시기를 묻는 <시사저널>의 질문에 경제 전문가 10명 중 5명이 이렇게 답했다. 올 연말까지 두고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 부총리를 포함한 경제팀이 일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없다”는 단서를 붙였다. 다른 5명은 “신뢰를 보여달라” “교체 시기보다 교체할 인물이 필요하다” “빨리 교체할수록 유리하다”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거시경제 전문가는 “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한 시기에 교체는 혼란만 가중시킨다. 지금은 리더십보다 10년 후 먹고살 거리를 마련하는 통찰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교체 필요성을 일축했다. 또 다른 경제 전문가는 “경제 정책이라는 것은 억지로 하면 다른 곳에서 분명히 부작용이 생긴다”며 “조급함 때문에 실수하는 것보다 여유를 가지고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8월5일 국회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당정 협의회에서 올해 세법 개정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교체가 필요하다면 내년 6월 지방선거 때가 적절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 경제인은 “1년 정도 지나면 경제팀의 공과를 평가할 시점이 된다”면서 “마침 내년에 지방 선거도 있으니 그즈음이 교체 시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 부총리가 생각보다 오랜 기간 정책을 풀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20년 동안 현 부총리를 알고 지낸 사이라고 밝힌 한 경제 연구원은 “과거 돌격대장 스타일의 경제 수장에 익숙해져서 현 부총리가 더디게 보인다”면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꾸준히 정책을 이끌어가는 편이 바람직하고, 일각에서는 뜻밖에 오랫동안 자리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뢰를 주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는 지적이 많다. 한 투자사 상무는 “현 부총리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신뢰를 주지 못한다”면서 “신뢰가 있으면 국민은 참는다. 지난 정부에서 국민의 불신이 커진 만큼 이런 민심을 달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구상은 장기적이고 사회적 합의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 현안에 대한 식견뿐만 아니라 경제부처에 대한 장악력과 야당·언론·업계와의 의사소통을 통해 정책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한 대학교수는 “교체 시기보다는 어떤 인물로 교체하느냐가 문제”라며 “그런 인물이 있으면 교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교체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가 주창하는 창조경제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기적인 정책을 수행해서 박근혜정부 동안에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려면 지금쯤 청사진이 제시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 경제 연구원은 “현 부총리가 대통령이 주도하는 창조경제, 민간 신뢰 회복 등을 잘 실행한다고는 볼 수 없다”면서 “이런 면에서 창조경제의 실체를 빨리 드러내려면 현 부총리의 교체 시기가 빠를수록 유리할 것 같다”고 말했다.

“수석 교체는 부총리에게 보내는 경고”

현 부총리는 늘 “잘 아시겠지만…”으로 말을 시작한다. 서울대 경영학과와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경제학 박사를 마치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까지 지낸 경제 전문가임에도 나서지 않는다. 매사에 신중한 모습은 우유부단한 이미지로 비친다. 실제로 경제 수장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 많았다. 부총리다운 소신보다 청와대의 정책 기조에 맞추려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야당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관료”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부총리 교체설이 불거진 배경이다.

박 대통령은 7월23일 국무회의에서 “새 정부 출범이 늦어지면서 경제부총리가 제대로 일할 시간이 4개월도 채 되지 않았지만 열심히 해왔다고 본다”며 교체설을 일축했다. 이 시기에 맞춰 현 부총리가 달라졌다. 취득세율을 영구 인하하겠다고 발표했고, 경제민주화에 관해서도 분명하게 ‘포기’ 메시지를 재계와 시장에 전달했다. 현 부총리는 7월21일 한 포럼에서 “기업들이 불확실하게 느끼는 부분이 경제민주화와 지하경제 양성화인데 이러한 우려를 하반기에는 해결함으로써 경기 회복과 연결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계와 재계에서는 “대통령의 재신임은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정신 차리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여름휴가에서 돌아온 박 대통령은 8월5일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4명을 교체했다. 특히 최순홍 청와대 미래전략수석 후임에 윤창번 수석을 임명한 것은 현 부총리의 미약한 리더십으로 창조경제의 틀이 짜이지 않자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인사는 현 부총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가계 부담을 덜고, 산업 양극화를 해소해서 경제적 약자의 피해의식을 줄이는 경제 시스템이 구축되기를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벤처기업 활성화로 창조경제 생태계를 만들어 성장 동력도 챙겨야 한다.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과 장기적인 정책이 모두 요구되는 시점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 경제 지휘부인 부총리와 청와대 경제팀이 적극적으로 정계·언론계·업계·학계 등과 소통하고 이해를 구해 뚜렷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특히 정권 초기에는 장관의 이러한 역할이 중요한데 현 부총리에게 지난 정권의 윤증현 장관과 같은 카리스마와 목표 제시가 부재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경제 정책의 가시성이 떨어지고 실효성 역시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안 중에서 시급한 것은 일자리 창출이다. 현재 64%인 고용률을 정부가 목표한 70%로 끌어올리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노동 시장의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2008~09년 재정 지출로 공공 부문 일자리를 늘렸는데, 민간 부문 일자리는 감소했다”면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몫”이라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정부 고용 정책의 방향성은 옳다고 평가하면서도 현장을 살피면서 꾸준히 다듬어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과거 비정규직 보호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2년 후에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계약해지나 간접 고용 형태로 나타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과거에는 녹색 산업이니 환경 산업이니 하면서 산업이 발전하면 고용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으나 현실성은 떨어졌다”면서 “이번 정부는 지난해부터 일자리 중심의 정책을 내놓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일자리를 늘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일자리의 가치”라며 “1~2개월짜리 일자리를 늘리는 데에 급급해서 노동의 가치나 소득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시간제 근로자는 물론 정규직의 임금 수준도 좋아진 편이 아니다. 2008년 이후 자동차·금융 분야의 임금은 상승했지만 대부분은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다. 손민중 수석연구원은 “시간제 근로자의 임금 수준은 월 70만원 전후”라며 “이런 인력이 늘어나면 지표상으로는 취업률이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내수 시장에서 구매력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고용이 늘어나려면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올 상반기에 건설 분야 투자는 나쁘지 않았다는 분석이 많다. 최근 1~2년 동안 발주한 물량이 올해 완공됨에 따른 효과다. 올 하반기에는 이 효과가 다소 수그러들 전망이다. 그러나 공공 투자는 올 하반기에 양호할 것이라는 관측이 다수다. 추경 예산 집행 효과가 5~6월에 나타난 것처럼 공공 투자에서도 효과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그럼에도 건설 투자를 낙관적으로 보기 힘든 이유는 부동산 시장이 크게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 시장이 침체에서 벗어나기는 하겠지만 워낙 매매 심리가 위축돼 있어서 내수 시장을 이끌 정도로 활성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부동산 시장 위축…내수 활성화 역부족”

부동산 시장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은 가계 부채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4·1 부동산종합대책 발표 이후 거래량이 늘어나고 가격도 회복하는 등 반짝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취득세 감면이 6월 말로 종료되면서 거래량이 다시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는 것이 시장의 분석이다. 돈이 있어도 취득세 등 세금 부담 탓에 부동산 구매를 망설이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임채우 KB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취득세 영구 인하, 다주택자를 위한 양도세 폐지, 종합소득세 감면 등 완화 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않으면 침체기가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면서 “정부가 최근 공공주택 공급 축소와 각종 규제 완화 등을 실행하고 있는 만큼 내년 부동산 시장은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1980년대에 경제 성장으로 그 부가 중산층으로 흘렀다면, 지금은 그 혜택이 중산층으로 가지 않는 구조다. 기업 실적이 좋아져도 개인의 경제 능력이 줄어드는 이유다. 게다가 저금리·저성장·고세금으로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현실이다. 특히 50대 양극화가 심하다. 과거에는 자산이 강남에 있네, 강북에 있네 하면서 지역에 따라 양분됐지만 지금은 세금을 적게 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갈린다. 비과세 상품을 점점 줄이는 정부 정책으로 국민은 실질 소득을 올리기 더 어려워졌다. 이상건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상무는 “정부는 부동산 정책을 내놓지만 더 급한 것은 가계 부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가계 부채 탕감 정책을 폈다. 그렇다고 가계 부채를 정부가 모두 떠안는 정책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개인 부채에 대한 현재 정부의 정책도 전향적인데 이보다 더 깊이 개입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정부의 지출을 증가시키는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오히려 현재의 정책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도록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내수 시장 외에도 대외적인 변수에 관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대식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본부장(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정부가 추경으로 메우는 부분이 있겠지만 경제에서 민간이 차지하는 부분과 대기업의 수출 비중이 커서 올 하반기 경기가 좋아진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전망했다.

가계 부채와 부동산 시장 악화 등으로 내수 경기가 풀리지 않고 있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이마트 용산역점. ⓒ 시사저널 최준필
“정부가 가계 부채 떠안는 정책은 위험”

올 하반기 경기는 수출에 달렸다고 보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김정식 한국경제학회 수석부회장(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은 “수출에서는 환율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건”이라며 “수출이 늘어나면 현 부총리의 생각대로 2.8%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상황이 녹록하지만은 않다. 일본은 아베노믹스로 수출을 늘려서 경기를 부양하는 중이고, 중국은 거품 붕괴를 막기 위한 긴축 금융 정책을 쓰는 상황이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유럽 경기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아베노믹스도 실패할 것 같고, 중국도 고성장 유지가 힘들다. 미국이 약간 살아날 것 같지만 지속될지는 불투명하다”며 “내부적으로도 건설, 부동산, 소비 어느 하나 좋은 것이 없고, 세수마저 적게 걷힌 상황이어서 재정 건전성 문제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현안도 해결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한국이 먹고살 거리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이번 정부는 창조경제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정부가 행복, 기술 융합, 성장 동력 등 원론적인 말만 앞세울 뿐 구체적인 실체를 잡을 수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창조경제란 말 그대로 창조적이어야 하므로 혁신, 발명, 산업 간 융·복합 등이 필요하다”면서 “이 산업에다 저 산업을 묶는 식이면 안 되고, 대기업부터 1인 기업까지 기업가 정신을 조성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창조경제는 현 부총리나 일개 부처의 노력으로 달성할 수 없는 정책이다. 여러 부처의 의견을 종합해 뚜렷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래서 경제 수장인 현 부총리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크다. 조병구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경제팀에서 이해가 상충할 때 겉으로 드러나기 전에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창조경제의 구체적인 방향을 잘 잡아서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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