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서에서 일제 잔재 지워라”
  • 소준섭│국회도서관 조사관 ()
  • 승인 2013.08.14 14:0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식 표현 ‘~함’ ‘~음’ ‘~임’ 버젓이 쓰여

얼마 전 한 일본학 전공 교수가 쓴 글에서 ‘주박(呪縛)’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보게 됐다. 이 ‘주박’이라는 용어는 일본이 만들어낸 일본식 한자, 즉 ‘일제 한어(日制 漢語)’로서 ‘주술의 힘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심리적으로 사람 마음의 자유를 잃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돼 있다. 이 교수는 같은 글에서 ‘정초(定礎)’ ‘폐색(閉塞)’이라는 일본식 한자 용어도 사용하고 있다. 

언론도 ‘초식남’을 비롯해 ‘간지난다’ 등의 일본 최신 유행어까지 들여와 보급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 정계를 한동안 시끄럽게 했던 ‘귀태(鬼胎)’라는 말도 본래 특수한 의학용어였던 것을 일본의 한 작가가 다른 의미로 전용해 사용한 말이다.

1910년 무렵 초창기 소학교 수업 모습(맨 왼쪽 사진).일본식 표기 ‘~함’이 적혀 있는 공문서들. ⓒ 뉴스뱅크 이미지
일반적으로 ‘일제 한어’는 한자의 원의(原意)에 어긋나거나 어법에 맞지 않아 결국 우리 국어를 왜곡·오염시키게 된다. 이렇게 하여 일제강점기에 이미 ‘정복자’의 언어에 의해 철저히 지배돼온 우리 국어는 현재에 이르러서도 ‘일제 한어’가 무분별하게 직수입돼 보급되는 수난을 맞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함’이나 ‘~음’으로 문장을 끝맺음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다’로 문장을 끝맺는 일반적인 서술식 문장이 아니라 이른바 ‘개조식’ 문장이다. 이러한 개조식 문장 방식은 일반적으로 문장을 짧게 끝내고 요점만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다고 이해되면서 공직 사회의 공문서는 물론 기업의 보고서에도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개조식 문장은 문장의 작위적인 ‘강제’ 완료로 인해 오히려 글이 번잡해지거나 비문(非文)이 출현하고 의미 전달도 잘 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함’이나 ‘~음’ 혹은 ‘~임’으로 끝나는 문장 방식은 스스로 서둘러 결론을 내려 끝을 맺음으로써 읽는 사람과의 대화와 소통을 지향하는 대신 명령자 혹은 규정자 입장의 권위주의적 특성을 보인다. 결국 상호 간의 소통을 저해하기 쉬운 문장 방식으로 변질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쓰인 문장은 대부분 주어가 생략된 채 글의 내용이 과연 글쓴이의 주장인지 아니면 타인의 주장인지 알지 못하게 됨으로써 책임 소재가 실종된다. 또 정식으로 주석을 달지 않은 채 타인의 주장과 논리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표절에 둔감한 사회를 조장시키게 된다. 

‘~음’ ‘~습니다’, 일본 문어 표기 방식에서 비롯

본래 명사화소(명사형 어미) ‘~(으)ㅁ’은 ‘확정성’이나 ‘결정성’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문장 마지막에서 ‘~함’이나 ‘~음’으로 끝내는 문장의 경우 이러한 경향성은 더욱 강화된다.

그런데 ‘~함’ ‘~음’ ‘~임’으로 문장을 끝맺는 이러한 형태의 문장은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강요된 방식이다.  일본 메이지 시대에서 <대일본제국헌법>을 비롯해 ‘권위가 요구되는’ 법령의 문장이나 교과서 등에서 이른바 ‘문어(文語)’가 사용됐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문어’ 문장들은 이를테면 ‘천황은 육해군을 통수함(天皇ハ陸海軍ヲ統帥ス, <대일본제국헌법> 제11조)’이나 ‘규정에 따라 청원을 행할 수 있음(規程ニ從ヒ請願ヲ爲スコトヲ得, <대일본제국헌법> 제30조)’ 등으로 끝을 맺고 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다’를 생략하고 ‘~함’ ‘~음’으로 문장을 맺는 형태다.

한편 우리나라 구한말 시기의 문서를 살펴보면 순한문 문장의 시기를 지나 한글이 사용되던 초기에는 거의 모든 글이 ‘~니라’ 로 끝맺음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일본 법률이나 서적을 그대로 직역하고 일본 문장을 그대로 모방함으로써 비로소 ‘~이라는 글자가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공문서의 경우에도 일본의 공문서 제도를 그대로 도입했고, 그에 따라 ‘~’으로 끝맺음하는 일본 공문서 양식이 그대로 자리 잡게 됐다. 그리고 당시 내각을 비롯한 각급 기관에서 공문서를 작성할 때 일본인 고문이 모든 문서를 검토하고 결재하도록 했다. 그 일본인 고문 중에는 심지어 일본 포병 소좌도 있었다.

여기에서도 드러나듯 구한말 시대의 본래 우리 한글 문장은  ‘~니라’로 끝맺음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 일본 법률이나 서적을 그대로 직역하면서 ‘~’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분명한 것은 당시 ‘~’만 존재했을 뿐 ‘~음’은 없었고 ‘~습니다’ 역시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당시 일본 문어(文語)는 ‘~得ス(해야 함)’이나 ‘要ス(요구됨)’ 등으로 ‘~ス’로 끝을 맺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이 ‘ス’의 발음인 ‘스’로부터 ‘~습니다’나 그 명사형으로서의 ‘~음’이 비롯됐다고 추정된다.

권위적 관료주의 문화를 심화시켜

과거에는 ‘~했습니다’는 잘못된 표기였고, ‘~했읍니다’가 옳은 표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표기 방식과는 달리 여전히 ‘했음’이 맞고 ‘했슴’은 잘못된 표기 방식이다. 표기 방식이 일관돼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제의 혼란이 이렇게 완결되지 않고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우리 국어의 자체적인 발전 과정이 아니라 중간에 외래어인 일본어가 개입돼 혼선이 파생된 때문이라고 파악된다.    

하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함’ ‘~음’으로 끝맺음하는 이러한 문장 방식을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법률만이 아니라 공문서에서도 완전히 폐지했다.

‘털끝만큼의 작은 잘못이 천리나 되는 엄청난 착오를 나타나게 한다(失之毫厘, 差以千里)’는 말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찮은 작은 잘못이라도 결국 커다란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함’ ‘~음’ ‘~임’ 등으로 끝맺는 문장 방식은 우선 우리 국어의 온전한 문장 구성을 저해하고 기형화시킴으로써 국어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는 역기능을 한다. 또 글쓴이의 책임 소재를 흐리게 만들어 무사안일주의를 초래하기 쉽고, 나아가 그 권위주의적 특성으로 인해 권위적 관료주의 문화를 심화시킨다.

더구나 이미 일본에서도 사라진 일제 잔재가 공직 사회에 의해 여전히 주도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과 희화성이 오버랩된다. 일본의 아소 다로 부총리가 나치식 개헌을 주장하고 나섰다. 섬뜩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자민당이 기도하는 개헌은 비단 자위대 관련 내용만이 아니다. 인권보다 공공질서 우선, 총리에게 국가 비상사태 선포권 부여, 표현의 자유 제한 등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인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메이지 유신 이래의 ‘일본제국’으로 회귀하고 싶은 그들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엄중한 정세에서도 여전히 일본의 제국주의 정신이 담겨 있는 공문서 방식을 우리 국가 기관들이 애지중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식 용어를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열심히 보급·전파하고 있는 우리의 학계와 정계, 언론계의 맹성이 요구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