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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파 TV를 끄고 싶은 이유

김선우 | 시인 소설가 ㅣ | 승인 2013.08.14(Wed) 14: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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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국민의 절반을 유령으로 만드는 기괴한 시대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해 시청 앞 서울광장에 수만 개의 촛불이 밝혀져도 지상파 뉴스에서 촛불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촛불을 든 수만 명의 시민이 몽땅 유령이 된 것 같다. 광장과 정치판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TV에서는 우아한 포즈로 휴가를 즐기며 ‘국정 구상’을 하는 대통령만 보인다. ‘알아서 기는’ 방송에 의해 외면당한 광장. 이명박 정권 5년간 자본과 권력에 길들여져 언론 자유를 스스로 압류해온 언론사들은 이젠 아예 대놓고 국민의 절반을 왕따시키는 추세다. 청와대 관련 특정 사안에 대해선 약속이나 한 듯 침묵의 카르텔이 공고하다.

이런 판국에 날아든 설상가상의 현실.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국정 구상의 정점에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씨가 있다. 요 며칠 지인들 사이에서 오간 대화 중 가장 많은 반응이 이런 거다. “그 김기춘씨가 바로 그 김기춘씨야?” “말이 돼? 지금이 2013년 맞아?”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버젓이 너무 많이 일어나는 대한민국. 그러니 다시 차분히 짚어보자.

‘그 김기춘씨’는 유신헌법 초안을 작성한 그 김기춘씨다.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고 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불법적인 대선 개입을 한 바로 그 ‘초원복집 사건’의 김기춘씨다.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의 주요 검사였던 바로 그 김기춘씨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바로 그 김기춘씨다. 유신 독재 시절부터 가장 최근에 이르기까지 평생 권력의 측근에서 권력 남용의 선례들을 남겨온 바로 그 김기춘씨. 정수장학회 1기 장학생 출신으로 장학회 출신 모임 ‘상청회’ 회장을 역임하고 지난 대선 때엔 박근혜 후보 진영의 원로 그룹인 ‘7인회’ 멤버였던 70세가 훌쩍 넘은 바로 그 김기춘씨다.

어떻게 셈해 봐도 긍정적인 견적이 안 나오는 구시대 대표 인사인 김기춘씨를 박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40년 전 유신 독재의 법을 만든 인물을 기어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앉히는 대통령이 무섭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게, ‘알아서 기기’ 모드로 자체 검열의 고수가 된 ‘영혼 없는’ 공중파 언론들이다. 그들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김기춘’을 말할 뿐 ‘바로 그 김기춘’에 대해선 침묵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끔찍한 시절을 통과하며 너무나 많은 사람의 혹독한 희생이 이룩해낸 우리들의 민주주의가 근본부터 허물어져간다는 느낌에 소름이 돋는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들의 민주주의를. 국회가 제 역할을 해주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국회 밖의 국회가 좀 더 힘을 가져야 하지 않겠나.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언론은 국민이 먼저 단죄하자. 수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집회를 벌여도 뉴스가 되지 않는 이 나라에 국민의 ‘알 권리’는 도대체 어디에 있나. 차라리 TV를 꺼버리자. 뉴스 시청률이 최저 바닥으로 곤두박질쳐버리면 ‘시청률 신’을 섬겨야 하는 그들이 정신 차릴지도 모른다.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언론은 그나마 ‘비주류 독립 언론’들 뿐인 듯하니, 공중파 TV를 끄고 비주류 언론을 응원하자. 국민의 편인 언론을 우리 스스로가 발굴하고 보호해야 하는 때가 또다시 온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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