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패’를 하나둘 까고 있다
  • 이영종│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08.2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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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합의 등 유화 제스처…무지갯빛 경제개발 일환

개성공단의 결투가 끝났다. 기계음이 멎고 장비는 녹슬어버린 황량한 공장에서의 치열한 혈전 결과 패배자는 없었다. 벼랑 끝까지 치달았던 7차례의 접전 속에 결국 함께 사는 길을 택한 것이다. 남북한은 8월14일 개성공단 내 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당국회담에서 5개항의 합의서를 타결했다. 공단 가동 중단 4개월여 만에 유사 사태 재발 방지와 정상화 방안 등에 의견 일치를 본 것이다. 7월25일 6차 회담 때만 해도 결렬 위기로 치닫는 듯했던 회담은 남북한이 서로 한 발짝씩 물러나는 협상을 통해 합의점을 찾았다. 이로써 양측은 그동안 남북 관계 진전에 걸림돌이 됐던 개성공단 뇌관을 제거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

개성공단 재가동 합의는 남북 관계에 탄력이 붙게 했다. 무엇보다 합의한 다음 날이 광복절 68주년 기념일이란 점이 맞아떨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축사에 추석 이산가족 상봉 행사와 비무장지대(DMZ) 평화공원 사업 추진 같은 대북 제안이 담길 수 있었던 데도 개성공단 남북 간 합의가 뒷심이 됐다. 대통령의 8·15 이벤트에 맞추려 정부가 합의 타결을 서두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부에서 제기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7월28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정전 60주년 기념 열병식 및 평양시 군중대회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이럴 거면 왜 6차 때 합의 안 했을까”

이런 관측이 나오는 건 6차와 7차 회담 사이 20일간 별다른 변동 상황이나 남북 간 입장 변화가 없었는데도 합의가 전격 타결됐기 때문이다. 뭔가 회담 외적인 변수에 의해 절충이 이뤄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7차 회담에서 나온 최종 합의서와 바로 직전 6차 회담의 북측 합의서 초안을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없다. 5개의 합의 사항은 모두 6차 회담 때 박철수 북측 단장이 최종 제시했던 문구를 거의 그대로 담고 있다. 제2항의 경우 출입 체류 보장과 손해배상 등 분쟁 해결, 인터넷·휴대전화 사용 등과 같은 3가지 소항목까지 동일하다. 제3항의 경우 북한이 만들어 온 3개 소항목에 우리 측 요구 사항인 해외 투자 설명회가 네 번째로 포함됐을 뿐이다. 정부 일각에서도 “이럴 거라면 왜 6차 회담 때 합의하지 않고 그냥 돌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회담 진행 과정에서 북한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전격 해임된 것으로 알려진 서호 전 남측 수석대표에 대한 동정론도 제기된다.

상당수 쟁점이나 미합의 사안을 개성공단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하기로 미뤄놓은 점은 불안 요소로 꼽힌다. 가동 중단에 따른 기업 피해 보상에 대해서도 정부는 6차 회담 때 북측에 세금·수수료 면제 등을 합의문에 담자고 요구했지만 실패했다. 박철수 북측 단장이 당시 회의 발언에서 “우리도 이번 사태로 많은 피해를 보았다”며 맞섰기 때문이다. 회담 목표나 핵심 쟁점 논의를 꼼꼼히 짚어보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회담이었다고 전·현직 당국자들도 입을 모은다. 하지만 대치 상황으로 치닫던 남북 관계의 물꼬를 트는 합의란 점 때문인지 대체로 후한 점수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합의는 지난 2월 새 정부 출범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 간 탐색전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양측 최고지도자는 새로운 파트너가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 정책 스타일은 어떤지 등에 대한 파악 과정을 거친 것이란 얘기다.

주목되는 건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 이후 김정은 제1비서의 행보다. 그는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최고 권력자에 오르면서 ‘경제 강국’을 주장해왔다. 김일성·김정일에 의해 정치 강국·사상 강국은 이미 이뤄졌다는 논리를 주민들에게 퍼트리면서 남은 건 경제 문제라고 설파한 것이다. 지난해 4월15일 김일성 100회 생일을 맞아 열린 행사에서 첫 공개 연설을 한 김정은은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는 일이 없이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김정일 시절이던 2002년 ‘7·1 경제 관리 개선 조치’와 같은 획기적인 김정은식 경제정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불발됐다. 공장·기업소의 독립채산제 운영과 인센티브제 도입 등을 담은 이른바 6·28 조치가 김정은의 지시로 시범 실시되고 있다는 얘기가 북한 내부에서 흘러나왔으나 아직 가시화하지는 않고 있다. 지난 3월에도 경공업 발전 등에 대한 김정은의 연설이 있었지만 후속 조치는 없다.

경제 강국 노선을 역주행하는 듯한 현상도 벌어진다. 김 제1비서는 자신이 스위스 유학 시절 경험한 대형 워터파크나 서구식 슈퍼마켓·음식점·카페 등을 짓는 데 열을 올렸다. 지난해 11월에는 군부대가 관할하는 승마 시설을 찾아 “인민들의 건강관리에 좋으니 경마구락부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강원도 원산 인근 마식령에는 초대형 슬로프를 갖춘 스키장이 올겨울 개장을 목표로 건설되고 있다. 모두가 민생과는 동떨어진 특권층을 위한 시설이다.

한때 김 제1비서는 선대 지도자와는 다른 통치 행보를 보일 것이란 기대를 받았다. 유럽에서의 조기 유학 경험과 20대의 젊은 나이가 그를 개혁·개방 쪽으로 움직이게 할 것이란 관측이었다. 지난해 7월 그가 부인 리설주를 공개하고, 미키마우스가 등장하는 공연을 관람하면서 이런 기대가 현실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하지만 더 이상의 행동은 없었다. 여기에 핵·미사일을 앞세운 군사 도발 행보가 이어지면서 북한 주민들은 물론 국제사회가 김정은에 대한 희망을 접은 상황으로 비친다.

김정은식 경제 전략 펼쳐질 듯

개성공단 합의가 이뤄짐으로써 김정은 제1비서가 과연 어떤 정책적 선택을 하게 될지에 다시 관심이 쏠린다. 지난 3~4월 남북 관계를 최악의 긴장 상황으로 만들어버린 김 제1비서는 미국은 물론 중국 지도부로부터도 남북 대화 압박을 받았다. 후견국 역할을 자임해온 중국도 핵·미사일로 국제사회의 탕아가 돼버린 김정은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북한은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를 장기 억류하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접근을 압박했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달라졌다. 결국 박근혜정부와의 대화만이 워싱턴과 베이징으로 가는 징검다리란 것을 알게 됐다. 개성공단 정상화에 북한이 전력투구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북 소식통들은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를 계기로 김정은 제1비서가 구상 중이라는 무지갯빛 북한 개발 청사진을 연이어 펼쳐 보이고 있다. 8월 개성공단 정상화 목표가 달성됐다는 판단 아래 대외적인 경제 개혁·개방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이란 얘기다. 특구 및 경제개발 관련 기구 신설 및 개편과 책임자 발표가 임박했다는 관측도 내놓는다. 3개 경제특구와 3개 지역 관광특구법도 곧 선보일 것이란 말도 전해진다.

하지만 이런 구상이 실현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개성공단은 물론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이 이뤄지지 않고는 해외 투자를 받기 어렵다. 하루아침에 공장이 멎고, 관광 투자 시설이 몰수되는 체제와 경협·관광 사업 등을 벌일 기업이나 국가는 지구상에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가 이번 회담 합의처럼 어물쩍 북한의 입장을 수용해주는 융통성을 계속 보일 것으로 낙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극렬한 대남 위협에서 돌변해 개성공단 정상화와 외국 투자 유치 등의 노선을 강조하는 김정은 제1비서의 본심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유화 제스처 뒤에는 김정은 체제의 치밀한 생존 전략이 숨겨져 있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 은밀한 속내는 공단 정상 가동과 함께 펼쳐질 김정은식 경제 전략의 실행 과정에서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전쟁’에 미국은 팔짱 끼고 무기나 판다?」 관련, 알림 

본보는 지난 1234호 52~53면에 「‘우리 전쟁’에 미국은 팔짱 끼고 무기나 판다?」 제하로 자주국방네트워크 신인균씨의 기고문을 게재하였습니다. 그러나 해당 기고문은 필자의 동의 없이 본사가 첨삭하여 신인균씨의 의견과 달리 게재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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