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리베이트 8000억 조성됐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3.09.0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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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 원전 토목 사업비 8조원 중 10%…원전 사업가 ㄱ씨 “MB 정권 실세들 깊숙이 개입”

검찰의 원전 비리 수사가 이명박(MB) 정권 실세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부산지검 동부지청 원전 비리 수사단은 지난 8월29일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고위 당직자 출신인 이윤영씨(51·구속)로부터 6000여 만원을 받은 혐의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을 소환해 집중 조사했다. 이씨에게 돈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이규철 한국정수공업 회장은 지난 8월7일 <시사저널>과 단독으로 가진 인터뷰에서 “이상득(전 의원)에게도 뭘 해야 잘될 테니까 돈을 좀 달라고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시사저널>은 원전 사업을 놓고 지난 정권이 벌인 뒷거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업계 주변 관계자들을 다방면으로 접촉했다. 이 관계자들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출을 비롯한 원전 사업이 몇몇 정·관계 실세들이 참여한 밀실에서 결정돼 무리하게 진행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인물은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국내외 원전사업에 정통한 관계자 ㄱ씨였다.

원전 사업에 매달려온 MB 정권 핵심 인사들은 원전 사업 관련 국내외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유력 인사인 ㄱ씨에게 상당한 공을 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은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던 ㄱ씨를 설득해 원전 사업과 관련한 주요 증언을 들었다.

왼쪽부터 이상득 전 의원, 박영준 전 차관, 김종신 전 한수원 사장. ⓒ 시사저널 임준선·연합뉴스
이상득 직접 나서 ‘원전 사업 협조’ 강권

원전 사업은 MB 정권이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는 사업 중 하나다. 이를 보여주듯 MB 정권 출범 초기부터 모든 사업이 정권 차원에서 추진되고 결정됐다. ㄱ씨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MB 정권이 출범한 직후부터 이상득 전 의원의 요청으로 김종신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과 함께 원전 사업에 관해 전반적인 논의를 해왔다”고 밝혔다. ㄱ씨에 따르면 이 전 의원은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맞은편에 위치한 사무실로 ㄱ씨를 비롯한 원전 관계자들을 불러 MB 정부의 원전 사업에 협조할 것을 강권했다. ㄱ씨는 “이 전 의원은 처음부터 원전 수출에 관심이 많았다. 중국 원전 사업에 우리나라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달라고 요청했다. 우라늄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도 했다”고 말했다.

문제가 생긴 것은 그다음부터였다. ㄱ씨는 “원전 사업에 문외한인 이 전 의원의 최측근들이 입김을 행사하면서 모든 것이 이상하게 흘러갔다”고 주장했다. ㄱ씨는 한 사례를 소개했다.

“김종신 전 사장이 연임하기 직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전 의원의 최측근 중 한 명인 김 아무개씨가 나를 급하게 불렀다. 김씨는 원전 사업과 전혀 무관한 사람이지만 이 전 의원과 원전 사업을 논의할 때 항상 함께했었다. 이 전 의원과 김씨는 서로 말을 놓을 정도로 친한 사이다. 김씨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갔더니 곧 김종신 전 사장이 도착했다. 김씨는 나의 손을 잡고 ‘이 사람(김종신 전 사장)이 한수원 사장에 연임될 수 있도록 이 전 의원에게 잘 말해달라’고 부탁하더라. 이런 일에 괜히 관여할 필요가 없어서 잠자코 있었는데, 얼마 후 김 전 사장이 연임에 성공하더라. 김씨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다른 최고위층으로부터 김 전 사장이 연임의 대가로 30억원을 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김 전 사장이 연임한 후부터는 모든 원전 사업이 김 전 사장과 김씨에 의해 결정되다시피 했다고 한다. ㄱ씨는 “김 전 사장은 야망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연임에 성공한 후 국내 원전 사업은 물론 국외 원전 사업까지 독식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권력 다툼이 있었다. 결국 국내는 김 전 사장이 맡고, 해외는 한전에서 담당하는 걸로 결정 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UAE 원전 사업 전면 재조사해야”

2009년 12월27일 MB 정부는 186억 달러 규모의 UAE 원전 수주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단군 이래 최대 수주’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으며, 우리나라도 당당한 원전 수출국의 반열에 올랐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UAE 원전 수주를 성사시키기 위해 직접 UAE를 방문하는 열의를 보였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이면계약 의혹이 터져 나왔다. 당시 MB 정부는 “자금을 UAE가 자체적으로 마련하고 한국은 건설만 맡는다. UAE에서 100% 지원하는 형태다. 우리 파이낸싱 얘기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건설 비용의 60%에 이르는 100억 달러가량을 수출입은행을 통해 대출해주기로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MB 정부는 “원전 등 해외 플랜트 수주에 대한 수출 금융 지원은 국제적인 관례”라며 이 사실을 인정했고, 당시 민주당에서는 “MB 정부의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밝혀진 것은 2011년 초인데, MB 정부는 이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고 한다. 또 다른 원전 관계자 ㄴ씨의 증언이다.

“2010년 9월2일 서울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 박영준 전 차관을 2시간여 동안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UAE 원전과 관련해 한국 측의 사업 추진 자금 파이낸싱 책임, 기술력 문제, 미국의 허가(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등 12가지의 중요 문제가 발생했다고 털어놓았다. 가장 중요한 파이낸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금융의 주축인 유대인 자본을 조달하고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협조를 구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조달에 실패했다고 했다. MB의 지지율 제고 차원에서 서둘러 UAE 원전 수주를 발표했다고도 했다. 이 말대로 하자면 우리나라가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이것은 수주라기보다 투자라고 봐야 한다. ‘곧 이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복수의 관계자들을 통해 “UAE 원전 사업에서 수천억 원대의 비자금이 조성됐다”는 충격적인 증언도 나왔다. ㄱ씨는 “UAE 원전 1~4호기 토목 부문에 8조원가량이 투입된 것으로 아는데 이 중 10%인 8000억원이 원전 핵심 관계자를 통해 로비 자금으로 조성된 것으로 아는데 이런 내용은 현재 구속된 최고위층 인사로부터 직접 들은 말이다. 원전 비리를 발본색원하기 위해서는 UAE 원전 사업을 전면 재조사해야 한다. 전문가들을 제외하고, 권력 실세들이 원전 사업을 주도한 것도 로비 자금 마련에 목적이 있었던 것 아니겠는가”라고 밝혔다.

ㄱ씨는 “원전 수출을 위해서는 핵폐기물 재처리 권한을 보유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그런데 MB 정부에서는 일단 일(원전 수출)부터 저질러놓고 사후 처리(한미원자력협정 개정)에 나섰다. MB 정부의 무리한 원전 수출 사업이 박근혜정부를 비롯한 후임 정부에 막대한 부담을 안긴 셈이다. 박근혜정부가 베트남 원전 수출을 타진 중이라고 하는데, MB 정부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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