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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권력 5년 막후] #8. ‘대군’들의 밀약, 촛불에 한 줌 재로 사라져

전·현직 대통령 ‘형님’들 핫라인…2007년 대선 전후 가동

소종섭│편집위원 ㅣ 승인 2013.09.04(Wed) 1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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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역사를 잊는다. 무엇이 우리를 눈멀게 하는 것일까. 눈앞의 달콤한 유혹, 탐욕, 자만심이다. 역사는 멀고, 쓰고, 추상적이다. 반면 현실은 가깝고, 달고, 구체적이다. 역사는 늘 인간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대부분은 문턱을 넘지 못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형님’들이 그랬다. 그것은 정치의 비극이자 우리 현대사의 슬픈 이야기다. 

두 형님이 있었다. 한 명은 ‘봉하대군’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다. 다른 한 명은 ‘영일대군’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다. 이 전 의원이 1935년생이고, 노건평씨는 1942년생이니 일곱 살 차이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그냥 ‘형님’이 아니라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대통령인 동생에 대해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대군’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형들은 어려웠던 시절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동생들을 뒷바라지했다. 노 전 대통령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촌부’라고 표현했던 노건평씨는 동생의 고시 공부를 전적으로 뒷바라지했다.

이 전 대통령보다 여섯 살 위인 이 전 의원은 집안의 기둥이었다. 1965년 6·3 시위를 주도한 후 도망 다니던 이 전 대통령을 자신이 아는 경찰관에게 자수시켜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오게 한 것도 그였다. 세계일보 2012년 6월26일자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내용을 보도했다.

‘이상득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하늘 같은 형’이다. 여섯 살 터울인 둘은 ‘잘난 형’ ‘못난 동생’이었다.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이 전 의원은 “우리 집안은 서열이 명확하다. 명박이가 날 좀 어렵게 생각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성장기의 구도가 유지됐다. 2007년 12월 대선 직후 경주의 한 리조트. 선거 공신 몇몇과의 회식에서 한 인사가 “이런 날 한 방 돌려야지요”라며 폭탄주를 제안했다. 이명박 당선인은 대답 대신 형의 눈치를 살폈다. 이 전 의원은 주저 없이 “안 돼!”라고 했다. 분위기는 썰렁해졌다. 둘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적어도 그 회식 자리에서 ‘권력’은 이 대통령의 것이 아니었다.’

   
(왼쪽부터)ⓒ 연합뉴스, ⓒ 시사저널 포토
“추부길, 노 전 대통령 측 관련 중요한 역할”

노건평과 이상득. 두 사람 다 이명박 정권에서 비리 혐의로 구속됐다. 이 전 의원은 현직 대통령 형의 구속이라는 신기록을 하나 더 보탰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업보였다고나 할까. 두 사람은 남다른 인연이 있다. 2007년 대선을 둘러싼 신구 권력 교체기에 막후 라인을 가동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2008년 촛불 시위가 없었다면 노무현-이명박, 노건평-이상득의 관계는 지금과는 전혀 달랐을지도 모른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렇게 늘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굴러간다.

제17대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전이 한창이던 2007년 11월.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는 온갖 구설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허위 재산 신고 등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센터(DMC) 의혹, 서울 도곡동 땅 및 다스 지분과 관련된 공직자윤리법 위반 의혹 등등. 하지만 파괴력이 가장 큰 것은 그가 BBK 김경준 대표와 함께 주가를 조작하는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른바 ‘BBK 사건’이었다. 언론은 연일 의혹을 쏟아냈고,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 후보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이명박 불가론’까지 불거졌다.

당시 이명박 후보의 선거 전략을 책임졌던 이는 정두언 의원이다. 그는 “BBK 사건으로부터 후보를 방어하기 위해 모두 밤낮없이 전 방위로 뛰었다. 그때 추부길 특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 측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 BBK를 방어하기 위한 라인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했다. 2008년 9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로비 명목으로 2억원을 받아 2009년 3월23일 구속된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비서관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한반도대운하추진본부 부본부장’과 이명박 후보 전략기획특보를 맡고 있었다.

정 의원은 ‘중요한 역할’과 관련해 “추 전 비서관이 노 대통령과 관련 있는 비자금에 대한 정보와 자료를 확보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 정권의 비자금 관련 정보를 구체적으로 확보한 것은 2008년 촛불 시위 이후 진행된 국세청의 태광실업 세무조사 이후로 알려져 있다. 그 세무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 측과 관련된 수상한 자금 흐름을 발견하고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이 대통령에게 직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의원의 말대로라면, 이명박 정권 핵심 인사들은 이미 2007년 하반기에 노 전 대통령에게 아킬레스건이 될 만한 정보를 확보했다는 얘기다.

“이상득·노건평 가끔 만난 것으로 안다”

2007년 11월 초순경 당시 추부길 후보특보는 노건평씨를 만났다. 당시 그가 확보했던 자료가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노씨 측에서 만남에 응했고, 이후 지속됐던 것으로 보아 실제로 상당한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펼쳐진 상황과 관련해 유추해보면 ‘정보’의 내용은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2008년 11월5일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필자와 만난 추부길 전 비서관은 이에 대해 “대선 전 노건평씨를 만났다.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찾아가서 만난다. 나는 그쪽에 전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그쪽도 내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며 노씨와 만난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왜, 어떻게, 노씨를 만났는가”라는 물음에는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부분과 관련해서는 “나중에 밝힐 일이다. 말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그는 또 “전·현 대통령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좋다.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일은 이제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핵심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추 전 비서관이 당시 노씨 측에 요구했던 것은 ‘BBK 사건에 대한 공정한 처리’였다. 한마디로 검찰이 수사 중인 이 사건에 청와대가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시 이 후보 측에서는 안팎의 검찰 출신 인사들을 총동원해 검찰의 BBK 수사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청와대가 개입하지만 않는다면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노씨 측에서는 ‘(집권하더라도) 로열패밀리는 건드리지 말아달라’는 요구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훗날 드러났지만 아킬레스건도 있었고 전직 대통령들이 불행해지는 역사는 끝내야 하지 않느냐는 명분도 있었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당시 이 후보 캠프의 핵심 인사들은 추부길-노건평 라인이 가동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추 전 비서관 혼자 독단적으로 움직인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의 막후에는 이상득 의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 전 비서관은 이 의원의 15~17대 국회의원 선거 때 전략팀장을 맡은 측근이었다.

이 의원은 “대선 전에 (노건평씨와) 만난 적이 없다. 내가 노씨와 막후 밀약을 맺었다는 얘기는 소설 같은 얘기다.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정두언 의원은 “당시 이 의원도 노씨와 만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노씨의 한 측근도 “두 분이 가끔 만난 것으로 안다. ‘어른’끼리 잘 지내면서 분위기를 좋게 이끌어보자는 말을 나눴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이런 맥락이라면 사안이 사안인 만큼 후보 시절의 이 대통령도 내용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첫해인 2008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형님들의 밀약’은 유지됐다. 이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추 전 비서관을 비롯한 여권 핵심 인사 일부는 노건평씨의 편의를 봐주었다.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노씨의 인척을 부산·경남 지역 기업가들에게 연결해줬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이런 사례들은 ‘형님들의 밀약’이 나름대로 핵심부에서 공유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8년 12월12일 박연차 회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원을 나오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2009년 3월23일 대검찰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노건평·추부길, 박연차 구명 로비 나서

이 대통령의 고개를 숙이게 한 촛불 시위는 이런 분위기를 일거에 반전시켰다. 2008년 6월 청와대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추 전 비서관은 홍보기획비서관 자리에서 물러났다. 형님들의 ‘막후 핫라인’은 붕괴됐다. 촛불 이후 이명박 정권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야 했다. 자칫하면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청와대를 휘감았다. 대반격이 시작됐다. 2008년 7월31일 국세청이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은 이런 질적인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연임을 노리던 한상률 국세청장의 승부수가 여권 핵심부의 의도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노건평씨는 “박 회장도 로열패밀리의 일원”이라며 박연차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를 무마해달라고 추 전 비서관을 상대로 로비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명박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내뱉었다.

추 전 비서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2008년 9월 박연차 회장의 측근인 정승영 정산개발 사장으로부터 2억원을 받았다. “국세청 세무조사를 잘 봐달라”는 명목이었다. 이후 이상득·정두언 의원 등을 상대로 박연차 구명 로비에 나선 그는 2008년 10월 중순 정두언 의원을 만나 “청와대 고위 인사에게 얘기해 박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정 의원은 이에 대해 필자와 만났을 때 “세무조사를 중단하게 해달라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시 추 전 비서관은 한나라당·청와대·국세청 등을 상대로 인맥을 총동원해 ‘박연차 구명’에 나섰다. 현 정권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인사가 전 정권과 유착했던 기업인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기 때문에 당시 여권 핵심 인사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말이 나돌았다.

이상득 의원은 당시 추 전 비서관이 자신에게 청탁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박연차라는 사람의 탈세 사건과 관련해 추 전 비서관과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없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다 알지도 못하는 회사의 탈세 사건에 개입할 만큼 내가 어리숙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홍만표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은 “청탁 로비가 있었을 가능성이 큰 시점에 이뤄진 통화는 2008년 9월17일과 10월23일 두 건이다. 한 건의 통화에서 추 전 비서관이 세무조사 무마를 청탁했다. 추 전 비서관은 이 의원이 청탁을 거절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말이 달랐지만 검찰은 추가 조사를 하지 않았다.

‘노건평 구속’ 뉴스 본 이상득 “난 다르다”

2008년 12월,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이상득 의원과 저녁 식사를 가진 한 일간지 기자는 그날의 풍경을 이렇게 기록했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 씨가 세종증권이 농협에 인수되도록 도와주고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던 날이었다. 식당 TV에서 노씨가 구속되는 뉴스가 방영되자 이 의원은 한동안 굳은 얼굴로 말문을 열지 않았다. 노씨의 구속을 보는 심정이 어떠냐는 질문에 이 의원은 “나는 다르다. 명박이는 명박이고 나는 나다.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뒤 나는 청와대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는 다르다”고 강하게 항변하던 이 전 의원 또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으니 지금은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이상득-노건평 핫라인’과 관련해 추 전 비서관은 실상에 대한 공개를 꺼리고 당사자들은 입을 닫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난 바는 없다.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이상득-노건평 핫라인이 가동되고 붕괴되는 과정은 이명박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관계가 봄날에서 겨울로 변해가는 과정과 궤적이 같다. 동시에 형님들의 시대도 막을 내렸다. 어쩌면 그것은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정해진 운명이었다.   

* 다음 호에는 제9화 ‘이명박-박근혜, 가깝고도 먼 밀월’ 편이 이어집니다.

 


“전·현직 대통령 핫라인이 나쁜 건 아니다”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 인터뷰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추부길 전 비서관의 목소리는 그리 밝지 않았다. 그는 “어렵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11월 당시의 인터뷰, 그리고 최근 그와 다시 통화한 내용을 종합해 정리했다.

어떻게 지내나.

이것저것 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다.

노건평씨를 처음 만난 것이 언제인가.

대선 전이다.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찾아가서 만난다. 요즘(2008년 하반기)도 자주 통화한다. 정치적인 얘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나는 그쪽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그쪽도 내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그를 왜, 어떻게 만난 것인가.

밝힐 수 없다. 전·현직 대통령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좋다. 신뢰가 제일 중요하다.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일은 이제 없어야 한다. 전·현직 대통령 간에 핫라인을 갖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지 않나?

이명박 대통령도 알고 있나

….

이상득 의원은 알고 있을 것 같다.

…. (추부길-노건평 핫라인은) 나중에 밝힐 일이지 지금 공개할 일이 아니다. 언론에 공개되면 앞으로 (노건평씨와) 전화도 못한다. 나는 정치인이 아니라 종교인이다.

실제로 효과를 거둔 적이 있나.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BBK 사건 등과 관련해 여러 얘기가 오갔던 것으로 안다.

어떤 일이든 한 사람이 노력해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러 요소가 결합해서 일이 이루어진다.

정권이 바뀌었는데 이제는 전말을 밝혀야 하지 않나.

내가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럼 누가 말할 수 있나.

말을 하더라도 두 분 당사자가 해야지. 내가 말할 수 있겠나.


 
 

Series) MB권력 막후 5년


#1.  드디어 피바람이…“당신 주변엔 빨갱이가 왜 이리 많아”
- 이상득·박영준 등 TK의 권력 장악 시나리오…허망하게 무너진 정두언 ‘한 달 천하’



#2. 함께 가자더니 하루아침에 배신을…”
- 이재오 향한 정두언의 분노…TK는 ‘55인의 반란’ 초기에 진압


#3. 읍참마속(泣斬馬謖) 후 노무현 세력 척결 나서다
-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MB 집권 첫해 중심 못 잡고 허둥지둥


#4. 봉하마을 향하는 칼끝 최종 타깃은 노무현
- 진보 단체 돈줄 색출…‘박연차 게이트’ 광풍 몰아쳐


#5. MB 검찰, 지관 총무원장 계좌 뒤졌다
- 노발대발한 총무원장, 불교계 총동원령 내려


#6. 한상률의 배신, 노무현 등에 비수 꽂아
- TK 세력과 손잡고 ‘정치성 세무조사’…부하의 보복에 자신도 거꾸러져


#7. 이상득은 친인척 관리 대상 위에 있었다
- MB도 어쩌지 못하는 ‘궐 밖 권력’ 김윤옥 여사와 SD 부인 최신자씨 간 갈등도


#8. ‘대군’들의 밀약, 촛불에 한 줌 재로 사라져
- 전·현직 대통령 ‘형님’들 핫라인…2007년 대선 전후 가동


#9
. 검찰 수사 나서며 회장 퇴진 압박
- ‘왕차관’ 박영준, 핵심 인사들 면접 보듯이 일일이 접촉


#10. 웃음 뒤에 감춰둔 ‘비수’는 예리했다
-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불편했던 MB-박근혜 “실제 둘 관계 나쁘지 않다”는 얘기도


#11. 암호명 ‘동해 일출’ “VIP를 독도로 모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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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정권 실세들 떡고물 챙기려 ‘4대강’ 기웃기웃
- MB, 2008년 6월 ‘대운하 포기’ 언급 이후에도 논란 이어져


#13. 정권 끝날 때까지 “믿을 건 내 사람뿐”
- MB 정권, 사정·정보·인사 등 핵심 라인 ‘고대·영남’ 출신 독식


#14. ‘박근혜 대항마’, 날개도 못 펴고 스러지다
- 정운찬의 총리 취임 직전 즉흥적 ‘세종시 수정안’ 한마디로 권력 쟁투 가열


#15. 요란한 구호 속 한몫 챙기기 바빠
- 5년 내내 ‘동반 성장’ ‘녹색 성장’ ‘중도 실용’ ‘공정 사회’ 등 키워드만 난무


#16. 궐 밖에선 최고 권력자였지만…
- MB 정권 실세의 상징 ‘6인회’ 멤버, 잇따라 몰락의 길 걸어


#17. 실세들이 설친 자리엔 빚더미만 남아
- MB 정권 ‘자원 외교’, 공기업들에 수조 원대 부채 떠안겨


#18. KT·포스코는 정권의 전리품
- 민간 기업을 낙하산 집합소로 만들어…버티면 검찰권 동원해 압박


#19. 정운찬·김태호·오세훈 제 무덤 파거나 포격에 무너져
- 실패로 끝난 MB의 ‘후계 프로젝트’…‘박근혜 대항마’ 부각되기도 전 좌초


#20. 강남 ‘큰손’ 부동산업자에게 땅 비밀 거래 꼬리 잡히다
- 시사저널, ‘내곡동 사저 단독 공개’로 MB 정권 강타…특검도 의혹 해소 못해


#21. 거물들 모셔왔으나 성과 없이 내리막길
- ‘친기업주의’ 정책 펼치며 해외 유명인들 영입…권력 내부에서는 균열 조짐


#22. 잇단 북 도발에 ‘병역 면제 정권’ 조롱
- 천안함·연평도 사태로 ‘안보 무능’ 드러나…컨트롤타워 부재 따른 혼선에 지지율 뚝


#23. ‘MB맨’ CEO들 빚더미 안기고 퇴장하다
- 지난 정권 5년간 공기업 부채 244조원 증가…4대강 사업 등에 돈 쏟아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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