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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에 영합하고 만 ‘백년지계’

현 정부의 실망스런 통치 철학 보여준 대입 제도 개선안

조상식 |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ㅣ 승인 2013.09.04(Wed) 11: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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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출범하고 6개월이 지나는 시점에 교육부는 대입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연구 용역을 의뢰하면서 개선안의 확정과 관련한 전체 로드맵을 함께 공개했다. 정책 결정을 위한 여론 수렴 과정에 들어간 것이다.

추진 일정을 보면 ‘2015학년도 대입 전형’ 기본 사항은 9월 중순에 발표하고 2017학년도 대입 제도는 10월 중순에 확정한다. 새 정부 출범 이후부터 산정하면 연구팀이 연구할 수 있는 기간은 4월부터 10월이니 6개월 정도이고, 이 시안이 발표된 시점에서 보면 순수 연구 기간은 4개월 남짓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0월 울산여상 수업 현장을 방문했다. ⓒ 연합뉴스
   
대입 제도의 개선 폭은 중간 수준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연구 용역인 ‘학생·학부모 부담 완화와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입 전형 간소화 및 대입 제도 발전 방안’이라는 제목만 봐도 연구에서 다룰 개선안의 폭과 깊이를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발표된 시안을 놓고 현 정부가 우리의 고질적인 교육 문제를 총체적으로 점검해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지와 같은 거시담론적인 비판은 어쩌면 소모적일 수 있다.

사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발표된 교육 공약을 회고해봐도 우리의 교육 현실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은 발견할 수 없었다. 당시 교육 관련 공약들은 대부분 캠프별로 ‘베껴 쓰기’와 상대방 공약의 선명성에 대한 ‘물타기’ 전략으로 각 정당의 실제 정치 이념 혹은 통치 철학을 반영하지 못했다.

특히 박근혜 캠프는 우리의 학교 교육을 ‘중대한 병적(病的)’ 상황으로 보지 않았고, ‘초·중등 교육 생태계’를 파괴하는 국제중이나 특목고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기술공학적 관점에서 교육 정책을 다뤘다. 이번에 발표된 대입 제도 개선안도, 올해 3월28일 대통령 국정 과제 ‘2013 업무보고’에서 나온 ‘대학 입학 전형 간소화’ 방안의 후속 조처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당시 보고의 주요 내용을 보면, 수시는 학생부 또는 논술 위주로 하고, 정시는 수능 위주로 전형 요소와 전형별 반영 비율을 단순화하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입 전형 간소화 방안이라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기술적(技術的) 주문은, 이번에 발표된 개선안에서 ‘학생·학부모 부담 완화와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이라는 표현으로 포장되기에 이르렀다.

연구진이 주제를 다루는 데서 과도한 정책적 접근을 피하고 복잡한 사안에 대해서는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고자 한 점에서 지적(知的)인 정직성이 엿보인다. 이를테면 현재의 복잡한 대입 전형 방식을 학부모들이 ‘조망 가능한’ 방식으로 간소화하려는 시도, 현재 수준별 수능(A/B형)을 폐지하는 방안, 사교육 유발 가능성을 고려해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을 수능과 연계시키지 않는 방안 등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결정으로 보인다.

대통령 발언 반영하기에 급급

그러나 제시된 정책안들이 애초의 취지에 비추어 실효성 있게 작동될지는 미지수다. 일부 사안들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돌출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정책안 중 대통령의 발언을 반영하기에 급급하거나 시류에 영합하는 것들이 눈에 띈다. 예컨대 한국사를 수능시험에서 독립된 영역으로 반영하겠다는 방안을 보자. 지난 7월 있었던 “한국사가 수능에 들어가면 딱인데…”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으로 이 안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몇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다.

연구진이 대부분 교육학자였을 텐데, 수능 시험의 교육평가적 원리나 독립 과목으로 구성할 때 생기는 기술적인 사안, 그리고 평가를 통해 교육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가 하는 교육학적 질문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신 ‘한국사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라든가 ‘다양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등과 같이 심하게 말하면 대중 영합적이고 최고 통치권자 눈치 보기에 급급한 결정이 그 정당화의 전부다. 우리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순수한 의미에서의 미래 대학 수학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라기보다 고교 학업 성취도도 동시에 평가하기는 하지만, 종합적이고 학제적인 탐구 능력을 측정하는 방향으로 고안됐다. 여기서 결국 역사 지식에 기초한 한국사 시험이 수능의 전체 골격을 무너뜨릴 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역사 교육에 대한 강화가 국민 기초 교육 과정에서 중요한 학습 과제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과연 수능이라는 제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도구와 연계시킨다는 것이 평가의 원리와 교육 목표 달성의 방안으로 적합한지 좀 더 생각해봐야 한다.

둘째, 정책의 실효성 부분에 대한 의문이 적지 않다. 먼저 대입 전형의 간소화 일환으로 대학별 전형 방법을 수시 4개, 정시 2개 이내로 줄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시의 전형 방법이 대부분 대학별로 독특한 방식으로 개발된 것이라서 3000여 개의 전형 종류가 현격히 줄어들지는 불투명하다. 수시에서 논술 위주 전형은 사교육 유발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위험한 방안이다. 이에 교육부가 논술 교과를 만들어서 그 부작용을 막겠다고 했지만 중등교육 정상화와는 거리가 먼 접근이다. 외국처럼 교과 교육의 평가 및 학습 활동을 에세이에 기초해 이뤄지도록 유도하지 않고 논술 교과를 새로 신설하겠다는 생각은 전형적인 주먹구구식 정책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정책의 실현을 위해 마련한 ‘공교육 정상화 기여 대학 지원 사업’은 대학 교육의 자율화 흐름에 역행하는 접근이자 재정적 지원에만 초점을 맞춘 ‘통속적 장치’다.

셋째, ‘대학수학능력시험 개선 및 발전 방향’으로 제시된 문·이과 융합 방안은 이미 논란의 중심에 있는 사안이다. 이는 현재 계열화 교육(tracking)의 폐단을 지적하고 시대적인 화두인 융·복합 및 통섭을 중등교육 과정에 적용해 대학 교육과의 연계를 확보하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현실 고려 없이 무리하게 적용

하지만 이 또한 현실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학술적 개념을 무리하게 적용하려는 시도다. 일단 우리 중등학제에서 문·이과 계열은 그렇게 뻣뻣한 폐쇄 구조가 아니다. 고등학교 2학년에서 나눠지는 교과 이수 체계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 조기 분리라고 할 수도 없다. 심지어 문·이과 교차 지원이라는 돌파구도 이미 시행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융·복합적 인재’ 혹은 ‘통섭의 원리’가 고등교육, 특히 대학원 이상의 교육 과정에서는 몰라도 중등교육에서 실현하자는 접근 방식은 지나치게 추상적인 학술적 사유 실험에 가깝다는 점이다. 대학 교육의 기초 과정인 교양 교육에서도 융·복합 교과목 개발과 운영이 쉽지 않은데, 하물며 중등교육에서 이를 적용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전문가적 아집에 불과하다. 결국 그렇게 되면 공교육의 부담만 커지고 사교육 시장에 의존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융·복합을 강조하는 스티브 잡스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빌 게이츠의 기부 정신과 창의력은 과연 어디에서 왔는가? 그만큼 융·복합 내지 통섭의 원리는 난해한 논쟁 사안이며 검증·예측 가능한 정책 사안으로 실현되기에도 부적합하다.

이번에 발표된 대학 입시 제도 개선안을 통해 ‘한국병(病)’의 대표적인 부문인 교육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접는 편이 낫다. 대신에 개선안을 통해 현 정부의 실망스런 통치 철학에서 교육이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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