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연ㆍ김미희ㆍ이정희 걸려들 것인가
  • 조해수ㆍ엄민우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3.09.1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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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동부ㆍ인천연합으로 수사 확대…최종 타깃은 통진당 와해

이석기 통합진보당(통진당) 의원이 9월5일 구속됐지만 ‘공안 태풍’은 잦아들 줄 모르고 있다. 이를 두고 민주당에서는 국가정보원이 ‘이석기 사태’를 이용해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종북 몰이’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혼돈에 빠뜨리고 있는 ‘이석기 태풍’이 어디까지 불어닥칠지 가늠하기 어렵다. 국정원을 비롯한 사정 당국은 이참에 종북의 뿌리를 뽑겠다며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국정원 등 공안 당국의 최종 타깃이 통진당을 정면으로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통진당이 강제 해산되거나 공중 분해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진보 진영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한 원로 정치인은 “지난해 통진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 사태가 터졌을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국정원이 통진당을 한 방에 무너뜨릴 무언가를 잡고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이석기 녹취록은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국정원의 다음 카드가 두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토로했다. 통진당 내에서도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이석기 의원의 발언이 처음 언론에 보도됐을 때 당 차원에서 유감을 표하고 자체 진상 조사를 하는 등의 적극적 대응을 했어야 되는데, 이 의원 감싸기에 급급하다가 상황이 더 악화됐다”며 당의 존폐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 시사저널 박은숙
‘RO’ 조직원 등 경기동부연합 줄소환 예고

공안 당국이 노리는 다음 타깃은 크게 5가지 방향으로 보인다. 먼저 이석기 의원 제명이다. 그다음은 같은 당 김재연·김미희 의원에 대한 수사 확대다. 이들도 모두 경기동부연합 소속이다. 의원들 조사와 동시에 경기동부연합 조직원들에 대한 저인망식 수사도 예고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통진당의 실질적 당권 세력인 경기동부연합을 와해시킬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다음 카드로 통진당 최대 계파로 일컬어지는 인천연합을 겨냥하고, 마지막에는 ‘통진당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이정희 대표에 대한 수사를 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 모든 수사의 귀결지는 ‘통진당 무력화’다.

첫 타깃이 된 이석기 의원의 앞날은 ‘첩첩산중’이다. 국정원 수사와 별도로 새누리당에서는 이 의원에게 ‘정치적 사망 선고’를 내리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새누리당은 9월6일 이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당 차원에서 국회 윤리특위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이 구속된 지 하루 만의 일이다. ‘종북 척결’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보고 속전속결로 이 의원을 국회에서 내쫓겠다는 것이 새누리당의 방침이다. 실제로 중앙일보의 9월5일 여론조사 결과 이 의원의 제명안에 찬성하는 응답자가 73.4%에 달했다.

제명안이 통과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는 민주당이 협조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민주당에서는 “이 의원에 대한 사법처리 이전에 정치권이 먼저 제명안 처리에 나서는 것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제명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지금으로선 낮은 편이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절차상 문제뿐만 아니라 ‘제2의 이석기’가 나올 가능성 때문이다. 비례대표의 특성상 이 의원이 제명되면 통진당 차순위 비례대표 후보가 의원직을 물려받게 된다. 현재 승계 1순위는 강종헌 한국문제연구소 대표다. 강 대표는 지난해 법원으로부터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1975년 간첩 혐의로 기소돼 사형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다.

공안 당국은 통진당 김재연 의원과 김미희 의원에 대한 수사를 곧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두 의원이 5월10일과 12일, 이른바 ‘RO’(혁명 조직) 모임에 참석한 것을 관계자의 증언과 사진 자료 등을 통해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그 외에도 통진당 대변인을 거쳐 이 의원의 수석보좌관을 맡았던 우위영씨를 필두로 최소 6명의 RO 조직원이 통진당 보좌진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통진당 이정희 대표가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 중단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학원가 등 진보 ‘자금줄’에 수사력 집중

그나마 이들은 모두 국회라는 제도권에서 몸담고 있는 인물이다. 일반 당원까지 포함하면 수사 대상에 오를 통진당 사람들은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국정원은 지난 5월12일 모임에 참석했던 130명 중 90명의 신원을 파악하고, 곧 소환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이 의원은 이 모임 외에도 2010년 말부터 지금까지 40여 차례 크고 작은 모임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참석자는 최대 3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에 대한 각개격파가 시작되면 아무리 결속력이 뛰어난 조직이라도 버텨낼 재간이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경기동부연합이 초토화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얘기다. 인천연합도 공안 당국의 타깃이다. 인천연합은 통진당의 최대 세력 중 하나로, 특히 공단이 밀집돼 있는 특성상 ‘자금줄’ 중 하나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진보 세력의 자금줄을 밝혀내기 위한 수사도 탄력을 받고 있다. 지난 8월28일 국정원의 압수수색 도중 이 의원의 오피스텔 신발장에서 외화가 포함된 1억4000만원의 현금 뭉치가 발견되면서, 이 자금의 출처와 용도에 관심이 집중됐다. 국정원은 현재 이 의원의 계좌를 압수수색하고 금융 거래 내역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CN커뮤니케이션즈는 이 의원의 자금줄로 가장 크게 의혹을 받고 있는 곳이다. CN커뮤니케이션즈는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 등을 통해 통진당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민노당)의 사업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자금줄에 대한 수사는 지방자치단체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은 수원시다. 수원시는 구속된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이 대표로 있는 수원사회적기업지원센터에 올해만 2억6000여 만원을 지원했다. 이 고문은 매달 기본급 200여 만원과 법인카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지검은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 과정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염태영 현 수원시장이 민노당 후보와 후보 단일화를 이루면서 이들의 채용을 약속했는지와 단체의 예산이 적법하게 사용됐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학원가 역시 통진당의 자금 루트로 의심받고 있다. 공안 당국 관계자는 “486 운동권 중 상당수가 밥벌이를 위해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 중 일부는 연 매출이 100억대인 회사를 운영하는 사교육 시장의 큰손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중에는 가장 급진적인 자민통(자주민주통일) 계열도 있다. 이들과 RO의 관계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최종 표적이 이정희 통진당 대표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통진당이 ‘종북 세력’으로 간주되고 있는 마당에 한때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이 대표를 그냥 놔둘 리 없다는 것이다. 현재 이 대표는 남편인 심재환 변호사와 함께 이석기 의원의 변호인단에 참여하고 있다. 심 변호사는 이전에도 이 의원의 변호를 맡은 바 있다. 2002~03년 이 의원이 민혁당 사건으로 체포돼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 1, 2심 모두 변호를 맡았다. 이 의원의 누나인 이경선씨가 국방부 부이사관 재직 당시 동생의 수배 중 생활비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정직 처분을 받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을 때도 변호인으로 참여했다. 사정 당국의 한 관계자는 “공안 당국이 이 대표와 심 변호사의 주변도 살펴보지 않았겠는가. 과거 심 변호사가 한 부동산회사에 8억여 원을 (사인 간 채권으로) 빌려준 적이 있는데, 이런 부분까지 조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추종 세력을 제거해 결국엔 통진당의 해체를 이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국민행동본부’ 등은 부정 경선과 당 중앙위 폭력 사태를 이유로 통진당에 대한 정당 해산 청원서를 법무부에 제출했고, 법무부는 이에 대한 법리 검토를 진행 중이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9월4일 국회 본회의에 출석해 “통진당 자체가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범위에 드는지 답변해달라”는 질의에 “검토해보겠다”고 답변했다. 헌법 제8조 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 분위기로 볼 때 통진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강제 해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이 해산되면 ‘통합진보당’이라는 명칭은 영원히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강제 해산 가능성을 떠나 통진당이 대중 정당으로서 존립할 근거를 이미 잃어버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법적인 방법이 아니라 국민 여론에 따라 통진당 스스로 해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진보 인사는 “통합진보당, 또는 경기동부연합은 ‘그들만의 세상’에 살고 있다. 그들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미소는 ‘당당함’이 아니라 ‘뻔뻔함’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통진당이 강제 해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투표를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상에서 고립된 ‘성남의 추억’ 


경기동부연합은 명칭 그대로 성남시·용인시 등 경기도 동부 지역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세력이다. 지금은 지역 개념을 떠나 통합진보당(통진당) 당권파의 다수를 차지하는 세력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여전히 성남 출신이거나 한국외대 용인캠퍼스를 나온 인물이 세력 내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성남 지역 거물로 통하는 정 아무개씨는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출신이고 또 다른 실력자 백 아무개씨도 성남 출신이다. 민주노동당(민노당) 출신 한 인사의 말을 빌리면, 이석기 의원은 성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용인캠퍼스를 나온 ‘성골’이다. 경기동부연합의 실질적 보스가 이석기라고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과거 민노당에 몸담았던 한 진보 인사는 “이석기라는 인물이 알려지기 전 경기동부연합의 실질적 리더들은 성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정 아무개, 백 아무개, 우 아무개 등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임미리 박사는 경기동부연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남에 대해 아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성남 지역은 과거 강제 이주 정책으로 인해 빈민이 많았던 곳이다. 1960년 산업화 정책으로 농촌 경제가 무너지면서 농민들은 서울 지역 곳곳에 판잣집을 지어 살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도시 미관을 위해 서울 용산역 인근 등 철도변 판잣집을 철거하라고 지시했고, 이들이 정착하게 된 곳 중 가장 넓은 곳이 바로 지금의 성남시인 광주대단지였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성남시의 학생운동이 NL(민족해방) 색깔을 나타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경기동부연합의 뿌리로 지목되고 있는 곳은 ‘터사랑청년회’다. 터사랑청년회의 전신은 ‘성대련’인데 이 두 곳의 회장을 모두 지낸 이가 이석기 의원의 특별보좌관을 맡았던 박 아무개씨다. 박씨는 이 의원과 성남 성일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알려져 있다.

통진당의 조직을 장악해 한때 큰 꿈을 이루고자 했던 경기동부연합은 이제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서 버림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임미리 박사는 연구 논문을 통해 ‘패권주의에 젖어 국민의 눈높이보다 당원의 눈높이를 강조한 것이 경기동부연합의 패착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임 박사의 다음과 같은 분석은 경기동부연합이 현 상황까지 오게 된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경기동부연합의) 최초의 적은 이명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었으나 부정선거 사태가 발생하면서 최우선의 적은 유시민의 참여계가 되었다. 거기에 2000년 민노당 창당 이래 자주파의 또 다른 축으로 굳건한 연대를 이뤄왔던 울산연합도 적이 됐고 마침내 국민 다수를 적으로 돌리며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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