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표적된 포스코·KT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9.1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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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인사 없을 거라는 약속은 '공수표'?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이석채 KT 회장의 거취 문제는 늘 뜨거운 감자였다. 정 회장과 이 회장은 이명박 정권 초기인 2009년 1월 회장에 취임했고, 현 정권이 들어서기 전인 지난해 2월과 3월에 각각 3년 연임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임기가 1년 반 남짓 남아 있다. 하지만 정권 차원의 사퇴 압박설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오면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렸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에 동행할 경제사절단 명단에 정 회장과 이 회장이 빠진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라는 경제사절단에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포스코와 KT의 수장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정부 측은 두 회사가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이미 ‘사퇴 압력’ 논란이 제기된 상황이라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왼쪽부터) 정준양 포스코 회장, 이석채 KT 회장 ⓒ 연합뉴스

외국 순방 경제사절단에서 빠져

지난 6월 말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도 마찬가지였다. 두 회장이 경제사절단에 포함되기는 했지만 중국 현지에서의 국빈 만찬 초청자 명단에서는 빠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8월28일 청와대에서 열린 박 대통령과 10대 그룹 총수들의 오찬 자리에도 두 회장이 빠져 사퇴 압박 의혹이 더욱 증폭됐다. 재계 서열 11위인 KT가 제외된 것은 그럴 수 있지만, 6위인 포스코가 빠진 것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국세청이 9월3일부터 포스코에 대한 세무조사에 돌입한 것도 ‘정준양 흔들기’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동안 포스코는 5년 주기로 세무조사를 받아왔는데, 이번에는 3년 만에 국세청에서 들이닥친 것이다. 정 회장을 겨냥한 압박용 세무조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 회장이 새 정부의 ‘표적’이 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포스코와 관련한 온갖 의혹이 외부로 불거지고 있다.

이석채 KT 회장은 일찌감치 공세의 대상이 됐다. 그와 관련한 비리 의혹이 담긴 보고서 형식의 문건이 청와대를 비롯한 사정기관 주변에 나돈 지는 꽤 됐다. CJ에 대한 검찰 수사가 끝나면 다음 타깃은 KT가 될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KT가 친박(친박근혜)계 좌장 역할을 했던 홍사덕 전 의원과 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김병호 전 의원을 자문위원으로 영입하자 사퇴 압력에 대한 방어용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 정보통신업계 관계자는 “올해 들어서 이 회장에 대한 의혹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200억원대 컨설팅 계약 무효 논란, 부동산 사업을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 하청업체 교체 논란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KT가 한동안 공을 들였던 로봇 사업과 관련한 의혹도 제기됐다. KT는 2011년 에듀테인먼트 로봇 ‘키봇’을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 그해 말 키봇2를 출시한 KT는 당초 올해 5월 키봇3 개발에 착수해 연말에는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중단된 상태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KT는 로봇 사업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사우디아리비아의 대표 이동통신사인 모바일리와 220만 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맺고 4월 말부터 키봇2의 사우디 현지 판매를 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5만대가량 생산된 키봇2의 판매량은 목표치에 훨씬 못 미치는 3만여 대에 머무른 것으로 알려졌다. 2만대가량이 재고로 묶여 있던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KT에서는 자구책의 일환으로 ‘직원 판매’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문제가 불거졌다. 직원들 사이에서 “경영진이 잘못 판단해 생긴 일을 직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된 것이다. 급기야 ‘이석채 회장 지인이 로봇 사업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소문까지 흘러나왔다. 로봇 사업을 두고 거액의 리베이트가 오갔다는 것이다.

이 사업을 지켜본 한 정보통신업계 인사는 “해당 협력업체는 이미 사다놓은 자재 비용 등으로 인해 자금 압박이 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대기업의 횡포가 아니냐는 불만이 상당하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또 “KT 내부적으로도 사업이 잘못됐으면 담당자를 문책하면 그만인데, 그러지 않고 사원 강매까지 나선 데는 뒷돈이 오갔기 때문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KT 측은 “로봇 사업을 중단한다는 게 아니라 콘셉트를 바꿔야 한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직원들을 통해 판매를 하기도 하지만 그러기에는 수량이 너무 적다. 유치원 등 이미 필요한 기관에는 다 팔았다고 보면 된다. 일부에서 매출을 올리기 위해 기기를 판 직원이 있을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KT 측은 또 “리베이트는 처음 듣는 얘기다. 리베이트가 오가면서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두 사람이 사퇴를 하느냐 마느냐 여부를 떠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겪게 되는 인사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포스코와 KT는 공기업에서 민영화한 대표적인 회사다. 정부의 지분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인사 문제는 여전히 정권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왜 민간 기업 인사에 간섭하느냐는 문제 제기는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기 일쑤다. 박근혜정부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물론 교체될 인사가 누구냐를 보고 최종적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9월2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낙하산 인사는 없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약속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청와대가 나서서 온갖 인사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제가 있는 인사는 사법적 판단과 회사 규정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단지 지난 정권에서 임명됐다는 이유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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