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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에도 얼굴 화끈거리지 않아

성인용 뮤지컬 <애비뉴 큐> 주목…‘19금’ 코드와 인형극의 절묘한 동거

조용신│뮤지컬 칼럼니스트 ㅣ 승인 2013.09.11(Wed) 15: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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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인형이 극 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노래하는 뮤지컬이 있다. 2004년 토니상 시상식에서 한 해 동안 공연된 뮤지컬 신작 중에서 최고에 해당하는 작품상(Best Musical)·극본상·음악상을 휩쓴 브로드웨이 뮤지컬 <애비뉴 큐(Avenue Q)>다. 현재 서울 잠실 샤롯데시어터에서 해외 투어팀이 공연하고 있는 이 작품은 퍼펫티어(손을 넣어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가 조종하는 인형극과 뮤지컬을 결합한 독특한 뮤지컬 코미디다.

인간과 인형이 함께 산다는 설정이라고 미국 어린이 유명 TV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와 같은 아동극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이 작품은 그런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패러디한 것으로, 얼굴에 털이 부숭부숭한 쿠키 몬스터 캐릭터가 성인이 되었을 때 마주할 수 있는 현실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것이다.

   
뮤지컬 <애비뉴 큐> ⓒ 설앤컴퍼니 제공
천진난만한 미국산 음란 마귀?

등장인물이 지닌 고민은 지나치게 현실적이지만 이 뮤지컬은 분명히 ‘환상’의 세계다. 인종 구성 면에서도 흑인·백인·아시안·유태인 그리고 몬스터까지. 서민 아파트에 이렇듯 몬스터(인형)와 인간이 함께 모여 산다는 설정으로 아홉 개의 인형 캐릭터와 세 명의 인간 캐릭터가 등장한다. 영문학과를 갓 졸업한 청년 백수 프린스턴, 그의 여자친구인 유치원 교사 케이트를 비롯해 커밍아웃하지 못한 동성애자이자 월스트리트 투자 전문가 로드, 육체적인 쾌락만 추구하는 클럽 여가수 루시, 포르노 공급책 트리키 몬스터 등 인형 캐릭터와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왔지만 손님이 없어 고민인 일본인 테라피스트 크리스마스와 그의 능력 없는 짝 브라이언, 건물주 게리 콜먼 등 인간 캐릭터가 있다.

이 작품은 방값이 싼 지역에 살면서 대학 졸업 뒤 취업을 못해서 고민하는 청춘의 자화상을 위트 넘치는 가사로 풀어내는데, 사회에서 금기하는 소재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사람의 입이 아니라 인형의 입으로 전달했을 때 사회 비판은 전혀 심각하지 않고 그마저도 재미로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이 작품에 또 다른 별명을 붙인다면 바로 ‘19금’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금기 중에 성(性)에 대한 표현만큼 음지에 숨어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마저도 풍자의 대상일 뿐이다. 가령 <인터넷은 포르노용>(The Internet Is For Porn)이라는 곡의 가사를 보자. ‘인터넷은 진짜 진짜 좋아. (포르노 보기에!) 기다릴 필요 없이 접속이 빨라. (포르노 보기에!) 매일 새로운 사이트가 생겨. (포르노 보기에!)….’ 이러한 가사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음란하게 들리지도 않는다.

연인 사이인 두 퍼펫이 침대 위에서의 애정 행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지만 불편하기는커녕 한없이 귀엽기만 한 <사랑을 나눌 땐 맘껏 소리 질러>라는 노래는 이 작품의 성격을 한눈에 보여준다. 이 작품의 관람가 연령이 만 15세(권장 연령 만 18세) 이상인 것은 인형극으로 연출되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다른 노래도 표현에 거침이 없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 속담을 연상시키는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등 기발한 가사의 노래가 가득하다. 자막의 적극적인 활용도 웃음 포인트이다. 마치 TV 예능 쇼의 자막처럼 이모티콘까지 등장시켜 관객을 웃긴다.

물론 그동안 우리 공연 무대에 이러한 성애 장면을 포함한 적나라한 ‘19금’ 소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4년 외설 시비로 인해 연출가가 공연음란죄로 기소되기도 한 연극 <미란다>는 주연 여배우가 전라로 성행위를 연기해 큰 논란을 빚었다. 이러한 ‘벗는 연극’은 20년 가까이 지난 현재에도 <교수와 여제자> 등 관음증을 무기로 하는 작품이 꾸준히 등장하며 대학로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에서 두 차례 공연된 적이 있는 브로드웨이 유명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프랑크 베데킨트의 1891년 동명 희곡을 각색한 뮤지컬이다. 19세기 독일을 배경으로 10대들이 겪는 ‘성의 억압과 그 부작용으로 인한 첫 경험, 임신, 낙태 등 성에 관한 적나라한 고민 과정을 그렸다. 지금은 스타가 된 김무열, 조정석 등 유명 배우가 출연했지만 개막 당시에는 여배우의 가슴 노출이 작품성 자체보다 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살인과 동성애가 모티브가 된 <쓰릴미>는 15금이지만 제작사에서 ‘18금’을 권장하고 있다. <동키쇼> <바디클럽> 등 나이트클럽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는 섹스어필을 강조하는 앙상블 배우가 노출이 심한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애비뉴 큐>가 미국에서 초연을 가졌던 2003년 이후 지난 10년 동안 우리 방송 환경도 많이 변했다. 방송에서는 김구라나 신동엽 같은 19금 개그 스타가 뜬다. <SNL 코리아> <자기야> <순정녀> 등 성인 토크가 안방극장의 한편을 차지하고 포털 사이트에는 선정적인 기사와 광고가 넘쳐난다.

   
뮤지컬 <쓰릴미> ⓒ 뮤지컬해븐 제공
‘19금’이 흥행 코드로 자리 잡은 한국 대중문화

방송에 비해 공연 무대 위에서의 표현은 신중하고 다소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무대 위에서 배우가 관객 앞에 신체를 노출한다는 사실은 창작진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자연스러운 작품의 일부로 설정되었다고 해도, 관객의 입장에서는 관음증에서 초연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체 노출에 비교적 관대한 현대무용에서도 여배우의 노출 연기 소식이 알려지면 예매 전화가 폭주하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리 연출가가 새로운 해석과 표현 방법의 일부로 노출을 선택한다고 해도 일부 관객들에게는 그것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하지만 10년 전 <애비뉴 큐>에서 다루고 있는 성적인 코드는 확실히 시대를 앞선 표현 방식이었고, 지금 봐도 전혀 낯설거나 낡아 보이지 않는 풋풋한 웃음을 선사하는 풍자 요소로 가득하다. 인터넷은 포르노를 위해 있는 거라고 외치든, 종잇장에 지나지 않는 졸업장을 받아 쥔 청년 백수이든, 동성애자라서 고민이든, 이들은 어쨌든 살아간다. 이 작품은 그게 인생이며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어쩌겠냐고 반문하며 어깨를 으쓱인다. 물론 이 작품이 만들어진 지 10년이 됐음에도 한국의 관객이 십대의 자녀와 함께 보기는 조금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성인 콘텐츠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오히려 재미와 교육 효과를 가진 ‘귀여운 웰메이드 성인물’의 모범이 되어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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