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끌어내리기…누군가 움직였다
  • 안성모·조해수·이승욱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9.16 13:35
  • 호수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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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장관이 총대 매…검사들 “더 이상 당할 순 없다”

검찰 내부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채동욱 총장이 9월13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채 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을 제기한 지 일주일 만이다. 채 총장은 “검찰 조직의 동요를 막기 위해 사퇴한다”고 밝혔다. 외형상으로 보면 추문에 휩싸인 검찰총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채 총장이 사퇴를 선언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감찰 지시에 있다고 봐야 한다. 황 장관은 이날 오후 1시쯤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 법무부 감찰관실에 감찰을 지시했다. 처벌을 전제로 한 감찰의 성격보다는 진상 규명의 성격이 크다고 했지만, 일선 검찰을 지휘해야 할 조직의 수장이 감찰을 받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더구나 채 총장이 조선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유전자 감식도 받겠다고 한 마당에, 진상 규명을 이유로 감찰을 받으라는 것은 사실상 ‘옷을 벗어라’는 요구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실제 채 총장은 감찰 지시가 내려진 후 대검찰청 간부들과 회의하는 자리에서 “조직의 안정을 위해 사퇴는 불가피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고 한다.

지난 4월 취임한 채 총장은 대검 중수부 폐지 등을 놓고 벌어진 검란(檢亂) 사태를 조기에 잘 수습하면서 조직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검찰의 오랜 과제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을 완납토록 하는 성과를 거둬 국민적 호응을 얻기도 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는 등 검찰이 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현 정권이 채 총장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기류가 곳곳에서 감지됐다. 이는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놓고 외부로 불거져 나왔다. 채 총장과 수사진은 영장을 청구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었지만, 황교안 장관과 여권은 이를 저지하고 나섰다. 이때부터 여권 내부에서는 채 총장에 대한 불만과 함께 검찰총장 교체설이 흘러나왔다.

채 총장은 이번에도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청와대는 물론이고 여당·국정원·경찰 어느 누구도 아군이라고 볼 수 없었다. 채 총장의 ‘혼외 아들’ 논란은 채 총장과 조선일보의 양자 대결로 여겨지지 않았다. 정권 차원에서 ‘검찰 흔들기’에 나섰다는 관측이 많았다. 이에 따라 조선일보가 어떻게 이 내용을 보도하게 됐는지, 그 배경에 더 큰 관심이 집중됐다.

검찰 내부와 야당에서는 채 총장과 불편한 관계를 맺어온 국정원을 ‘취재 소스’로 의심했다. 청와대 역시 이러한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번 사태가 ‘검찰 대 국정원’, 더 나아가 ‘검찰 대 정권’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점쳐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채 총장의 전격 사퇴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검찰의 ‘대반격’이 펼쳐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채동욱 검찰총장이 9월13일 오후 사퇴 발표를 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이석기 기소 놓고 검찰-국정원 대립 조짐

일단 검찰과 국정원의 ‘전면전’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채 총장 ‘혼외 아들’ 보도는 ‘검찰 흔들기’로 밖에 볼 수 없고, 이를 통해 누가 가장 큰 이익을 얻을지를 고려해보면 그 배후는 짐작되고도 남는다. 방법 역시 치졸하기 그지없다. 검찰이 이대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과 국정원 대결 구도의 ‘1라운드’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 될 공산이 크다. 국정원은 이 의원의 사건에 대해 “개원 이래 최대 공안 수사로, 현직 국회의원이 연루된 내란 음모 사건을 밝혀냈다”며 공적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터지면서 대선 개입 의혹으로 수세에 몰렸던 국정원이 전세 역전에 성공하는 모습이다. ‘대공 수사권·국내 정보 파트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민주당의 국정원 개혁안도 흐지부지될 공산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국정원이 이 의원에 대해 ‘내란 음모’라는 형법상 최고 범죄 혐의를 적용시킨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현역 국회의원이 기간시설 파괴 등 강압적인 방법으로 국가를 전복하려고 했다”는 무시무시한 혐의는 국민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국정원의 주장처럼 이 의원에게 내란 음모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다. 내란 음모죄는 고사하고 RO(혁명 조직)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데도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공은 기소권을 가지고 있는 검찰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만약 검찰이 이 의원을 ‘내란 음모죄’가 아닌 단순한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기소해버리면, 국정원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오히려 “무리한 수사를 통해 공안 정국을 조성하려 했다”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반면 검찰은 잃을 게 없다. 어차피 이 사건은 검찰이 철저히 배제된 채 국정원 주도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채 총장 혼외 아들 보도와 이석기 사건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이 의원에 대한 여적죄 적용 등 현재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내용은 검찰의 뜻과는 무관하다. 지금은 국정원이 독주하는 형국이지만, 죄명을 정해서 재판을 청구하는 것은 결국 검찰의 몫 아닌가. (국정원의 뜻대로 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9월13일 정부과천청사에서 퇴근하고 있다. 황 장관은 이날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해 감찰을 지시했다. © 연합뉴스
검찰, 정권 실세 겨냥해 사정 칼날 휘두를 수도

검찰의 사정 칼날이 앞으로 누구를 겨눌지도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일단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한 수사와 재판은 ‘현재 진행형’이다. 검찰은 국정원이 ‘매뉴얼’에 따라 인터넷에 댓글 작업을 하고 3개월마다 댓글을 삭제한 정황을 밝혀냈다. 검찰이 만약 재판 과정에서 국정원의 ‘조직적’ 대선 개입 사실을 입증해낸다면, 국내 정보 파트 해체 등 국정원 개혁 논의가 다시 한 번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가 검찰이 현 정권과 직접 각을 세울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박근혜정부가 채 총장 임명 당시부터 그를 마땅찮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조선일보 보도 훨씬 이전부터 채 총장 교체설이 돌기도 했다. 이런 마당에 청와대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 자칫 현 정부 실세에게 검찰의 사정 칼날이 드리워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특수부 검사들이 이미 현 정부와 관련된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실제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인지수사’를 통해 이성복 전 근혜봉사단 회장을 금품 수수 혐의로 구속했다. 이 전 회장은 ‘한·중·일 국제 카페리’ 운항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1억여 원의 금품을 받고 현 정권 실세 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이 정·관계 게이트로 확대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채 총장의 ‘혼외 아들’ 보도가 터졌을 때부터 이 사안을 ‘외부 세력’의 검찰 흔들기로 규정했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의 배경에 ‘특수통’과 ‘공안통’ 간 알력 다툼이라는 검찰 ‘내부 문제’도 깔려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 8월5일 단행된 청와대 비서진 인사에서 공안통 출신인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과 홍경식 전 서울고검장이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에 각각 임명됐다. 황교안 법무부장관 역시 공안 검사 출신이다.

반면 채 총장 주변의 검찰 내 요직에는 ‘채동욱 키즈’라고 할 수 있는 특수통 검사들이 대거 포진돼 있다. 불협화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이 때문인지 이석기 사건 수사에 대한 보고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석기 사건 담당 공안통 검사들이 법무부나 청와대에 직접 보고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 직보 이야기는 검찰 조직상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특수통과 공안통 간에 불협화음이 있다는 얘기 또한 사실무근이다. 이러한 얘기조차 외부 세력이 검찰을 흔들기 위해 퍼뜨리고 있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검찰은) 내부 결속을 통해 외풍에 단호히 대처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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