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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종교인 / 김수환 추기경은 살아 있다

정진석 추기경은 2위 올라 10위 안에 법정·법륜 등 불교계 6명

안성모 기자 ㅣ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9.16(Mon) 14:22:36 | 12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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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도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으로 고 김수환 추기경이 첫손에 꼽혔다. 김 추기경은 군사 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의 큰 버팀목으로서 ‘행동하는 양심’으로 존경받았다. 선종한 해인 2009년 조사에서 한 차례 4위를 차지한 것을 제외하면 1위는 늘 그의 몫이었다. 주목되는 부분은 지난해 조사에서 잠시 주춤했던 정진석 추기경이 다시 2위로 올라섰다는 점이다. 행정 관료·교수·언론인·정치인 집단에서는 정 추기경이 1위를 차지했다. 천주교는 지금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비판하는 시국 선언을 놓고 찬반 논쟁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어른인 정 추기경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3위를 차지했다. 개신교계 인사로는 10위권 내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이명박 정권 시절 적게는 세 명, 많게는 다섯 명의 목사가 10위권에 들었던 것과 비교된다. 조 원로목사는 최근 법정에 서는 신세가 됐다. 6월7일 배임과 탈세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된 그는 8월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했다. 조 원로목사의 장남인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도 함께 법정에 섰다. 조 원로목사에 앞서 2012년 11월 검찰에 기소된 그는 6월20일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아버지의 잘못까지 내가 뒤집어썼다”는 취지의 진술을 해 주목받기도 했다.

   
ⓒ 평화방송 제공
   
(왼쪽부터) ⓒ 시사저널 사진자료, ⓒ 연합뉴스
비리 혐의 조용기 목사 3위 올라 눈길

고 법정 스님이 4위를 차지했다. 2위에 올랐던 지난해 조사보다 두 계단 떨어졌지만 불교계에서는 가장 순위가 높았다. 2010년 3월 입적해 ‘무소유’의 세계로 돌아간 법정 스님은 평소 이웃 종교와 활발하게 교류했다. 김수환 추기경과도 인연이 남달랐다. 김 추기경이 길상사 개원 법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자, 법정 스님은 이듬해 명동성당에서 특별 강론을 했다. 김 추기경이 한 해 앞서 선종하자 “가슴이 먹먹하고 망연자실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올해 초 법정 스님의 책과 관련한 저작권 논란이 다시 불거지기도 했다. 법정 스님의 모든 저작권을 양도받은 시민단체 ‘맑고 향기롭게’는 법정 스님이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며 계약 기간이 남은 출판사들과 모든 저서를 절판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소형 서점에서 재고로 보관 중이던 저서가 판매되고 법정 스님의 글을 인용해 출판한 서적도 판매돼 세상을 ‘말의 공해’에서 해방시키고자 한 법정 스님의 뜻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법정 스님은 법문집·명상집·산문집·여행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50여 종에 이르는 책을 저술했다. 그 가운데 상당수가 수십만 독자의 관심을 끈 베스트셀러다. 대표 산문집인 <무소유>는 1976년 첫 출간된 이후 2010년 초 3판 82쇄가 나오기까지 300만부 가까이 팔렸다.

   
ⓒ 시사저널 이종현
법정·법륜·자승·혜민·성철 스님 4~8위

법정 스님에 이어 평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법륜 스님이 5위에 올랐다. ‘즉문즉설’로 유명한 법륜 스님은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정계 진출에 나서기 전부터 조언을 아끼지 않은 ‘멘토’로 알려져 주목을 받았다. 평화재단 내 평화교육원이 9월5일부터 12주간 개최하는 제9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에 법륜 스님과 안 의원이 강사로 나설 예정이다.

조계종 총무원 원장을 맡고 있는 자승 스님은 6위, 조계종 종정을 맡고 있는 진제 스님은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자승 스님이 연임 도전에 나설지 여부가 불교계 내 최대 관심사 중 하나로 떠올랐다. 전국선원수좌회 소속 스님들은 서울 종로 조계사에서 자승 스님의 재임 포기를 요구하는 묵언정진에 돌입했다. 자승 스님의 연임에 반대하는 시위 성격이 강하다. 마음 치유로 유명한 ‘힐링 멘토’ 혜민 스님이 7위를 차지해 지난해보다 두 계단 올랐고, 최근 열반 20주기를 맞은 고 성철 스님이 8위를 차지했다.

고 이태석 신부가 9위를 차지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태석 신부가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2010년 1월 암 투병 끝에 48세의 젊은 나이에 선종한 그는 아프리카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에서 아낌없는 사랑을 펼쳐온 삶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됐다.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됐던 이태석 신부의 삶은 최근 뮤지컬로 재탄생해 또 한 번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영락교회를 세운 고 한경직 목사가 11위에 올랐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홍재철 경서교회 목사가 12위, 재미있는 설교로 유명한 장경동 대전중문교회 목사가 13위, WCC 제10차 총회 한국 준비위원회 대표 대회장을 맡은 김삼환 명성교회 목사가 14위에 올랐다. 올해 2주기를 맞은 고 하용조 온누리교회 목사와 3주기를 맞은 고 옥한음 사랑의교회 목사, 고 문선명 통일교 총재, 김재철 소망교회 목사가 공동 15위에 이름을 올렸다. 2012 광주인권상을 수상한 문정현 신부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강우일 주교도 공동 15위를 차지했다.  

 

총칼보다 강했던 추기경의 말과 행동 


“비상 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한테 막강한 권력이 가 있는데, 이런 법을 또 만들면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그렇게 되면 국가 안보에 위협을 주고, 평화에 해를 줄 것입니다.”

1971년 12월24일 성탄 자정 미사. TV와 라디오를 통해 김수환 추기경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2년 전 최초로 추기경에 임명된 그는 장기 집권 수순에 들어간 박정희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당시 나이 49세로 전 세계 추기경 136명 가운데 최연소였다. 생중계로 진행되던 방송은 중단됐다.

김 추기경은 이후 유신 독재 반대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1972년 10월17일 회의 참석차 이탈리아 로마에 머무르고 있던 그는 유신 개헌 소식을 들은 후 로마 주재 한국 대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10월 유신 같은 초헌법적 철권통치는 우리나라를 큰 불행에 빠뜨릴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김 추기경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암흑의 세월에 갇혔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앞만 보며 무섭게 질주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는 궤도 이탈을 자초했다. 박정희 대통령 자신도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다. 1979년 11월3일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그는 기도했다. “이제 대통령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주님 앞에 선 박정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군사 독재 시절 서울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로 자리 잡은 것은 ‘김수환’이라는 거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추기경은 1980년 설날 새해 인사차 방문한 12·12 쿠데타의 주역 전두환 당시 육군 소장의 면전에다 이렇게 쏘아붙였다. “서부 활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서부 영화를 보면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잖아요.”

1987년 6월 항쟁 당시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이던 시위대를 보호한 일화는 유명하다. 경찰력을 투입하겠다고 통보하러 온 정부 고위 관계자에게 김 추기경은 단호한 입장을 전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 2009년 2월 선종했을 때 40여 만명의 추모객이 명동성당을 찾은 이유는, 종교를 떠나 그의 삶을 존경한 이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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