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광복 이후 인물 / 박정희 1위, 김대중 2위, 노무현 3위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09.16 14:43
  • 호수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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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이승만·전두환·정주영 순…이석기·이정희 20위권에

‘역사’는 살아 있는 과거다. 100년 전의 역사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현실 속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시대 상황과 등장인물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1945년 8월15일 34년간의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났다. 남한 단독 정부가 수립된 후 67년의 세월이 흘렀고,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해 11명의 대통령이 나왔다. 올해는 건국 최초로 부녀 대통령(박정희·박근혜)이 탄생했다.

광복 이후 숱한 인물들이 격변의 소용돌이를 거치며 명암이 엇갈렸다. <시사저널>은 2008년에 이어 두 번째로 ‘광복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조사했다. 5년 전과 비교하면 시대 상황에 따라 인물에 대한 평가도 조금씩 달라졌다. 그 흐름은 설문조사에 그대로 반영됐다. 과연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명암을 장식한 인물은 누구일까.

우선 10위권에는 2008년과 마찬가지로 전직 대통령 6명(박정희·김대중·노무현·이승만·전두환·김영삼)이 이름을 올렸다. 이 중 전두환·김영삼 전 대통령을 제외한 4명은 고인이다. 1위와 2위로는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이 각각 71.7%와 35.7%의 지목을 받았고 편차는 36%였다. 지난 조사와 비교하면 13.8%가 좁혀진 수치다. 이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옮겨가면서 생긴 현상으로 분석된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딸 박근혜 대통령. ⓒ 시사저널 포토
노무현 전 대통령, 7위에서 3위로 ‘껑충’

지난 조사에서 3위였던 이승만 전 대통령이 5위(12.9%)로 내려앉고, 7위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3위(20.3%)로 껑충 뛰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6위(7.6%)에 랭크됐다. 10위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8위(3.3%)로 2단계 뛰어올랐다.

10위권에는 전직 대통령을 제외하면 독립운동가인 김구 선생이 지난 조사에 이어 4위(18.9%)로 이름을 올렸다. 경제인 순위에서 5위였던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2계단 내려가 7위(6.5%)다. 10위권 밖에 있던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9위(2.7%)에 랭크되며 10위권에 새로 진입했다.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은 8위에서 10위(2.1%)로 간신히 턱걸이했다.

이른바 ‘빅3’의 지목률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1위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층은 견고하다. 설문 대상인 10개 전 분야에서 1위에 올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기업인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서 2위로 뽑혔다. 기업인은 독립운동가인 김구 선생을 2위로 꼽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3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2위로 지목받은 분야가 한 곳도 없는 반면, 언론인·법조인·정치인·금융인·문화예술인·종교인 그룹에서는 3위로 꼽혔다. 이전 조사와 비교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목한 비율이 고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정 관료와 사회단체는 김구 선생을, 교수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3위로 지목했다. 물론 지목률이 높은 것과 역사적인 평가는 별개다. 우리 근현대사에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시대의 물줄기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보는 것이 맞다.

광복 이후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인물 1위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다른 조사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이름은 최상위에 있다. 그만큼 ‘박정희’라는 이름을 빼놓고는 우리 근현대사를 논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독재자’와 ‘근대화의 기수’로 크게 엇갈린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5·16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고, 이후 18년간 권좌에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때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산업 기반이 붕괴된 시기였다. 그는 1960년대 후반부터 경제 부흥을 위해 산업 기반을 재구축하고,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는 등 ‘조국 근대화의 기수’ 역할을 했다. 때문에 50대 이후 장년층 다수는 우리나라가 경제 강국이 된 것을 박정희 전 대통령 덕분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박정희 시대의 독재를 개발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즉 개발 독재였다고 합리화하기도 한다.

ⓒ 청와대사진기자단·시사저널 포토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 봇물

올해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정치 기반이던 경북 지역에서는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기념사업에 나섰다. 구미시는 ‘박정희 생가 공원’(286억원)을 건립했고, ‘새마을운동 공원’(792억원) 조성도 추진 중이다. 포항은 ‘새마을운동 기념관’을 건립했고, 청도는 ‘박정희 동상’을 세웠다. 문경은 박 전 대통령이 교사 시절 하숙했던 ‘청운각’을 공원화했다. 울릉군은 박 전 대통령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묵었던 울릉군수 관사를 ‘박정희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말 그대로 죽은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사업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는 모습이다.

2위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생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박정희 대통령에게 맞서 94만7000여 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면서 강력한 정치적 라이벌이 됐다. 이후 박정희 정권의 눈엣가시가 되면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올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4주기가 된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야당의 정치 지도자들은 여전히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내 김대중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며 ‘정통성’을 이으려고 한다. 8월18일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추도식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9월9일 민주당의 원내외 병행 투쟁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견해에 따른 것”이라고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3위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2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낙향했다. 그는 연이어 파격적인 행보로 화제가 됐다. 마을을 찾은 관광객들과 어울리며 사진을 찍고, 마을 청소에 참여하고, 슈퍼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 등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현직 대통령을 능가하는 인기를 얻었다. 네티즌들은 그에게 ‘폼 나는 대통령’이라는 뜻의 ‘노간지’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노 전 대통령은 또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을 공유했다. 하지만 퇴임할 때 대통령 재임 시의 기록물 복사본을 갖고 귀향한 것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급기야 친인척 비리로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같은 해 5월23일 그는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사저 뒷산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하면서 ‘비운의 전직 대통령’이 됐다.

4위인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은 서거한 지 64년이 됐지만 여전히 ‘가장 존경하는 인물’ 상위에 오르고 있다. 학계에서는 ‘김구 정신’에 대한 연구와 그의 사상을 계승하자는 토론회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8월29일에는 서울 성동구 금호동 금남시장 삼거리에서 ‘백범학원’과 ‘김구주택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5위에 오른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극명하게 갈린다. 보수 쪽에서는 ‘건국의 아버지’라며 칭송하고 있으나, 진보 쪽에서는 ‘독재자’로 일컫는다. 최근 우 편향 논란을 일으킨 교학사의 국사 교과서가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민적 영웅’으로 미화하면서 논란이 됐다.

ⓒ 시사저널 포토·시사저널 박은숙·최준필
정주영·이병철, 10위권에 이름 올려

전두환 전 대통령이 6위다. 그는 올해 가장 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1997년 4월 대법원은 그에게 군형법상 반란·내란과 뇌물 수수 혐의로 무기징역형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16년 동안 전체 추징금의 24%(533억원)밖에 내지 않았고 1672억원이 미납 상태였다. 6월27일 국회에서는 공무원이 불법 취득한 재산에 대한 추징 시효와 대상을 확대한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이 통과됐다. 기존의 추징 시효가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됐다.

검찰은 7월부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택과 친인척 거주지 등 30여 곳에 대한 전 방위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미납 추징금 환수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자 전씨는 가족회의를 통해 추징금을 자진 납부하겠다며 백기 투항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정의로운 사회’를 통치 철학으로 내세웠으나 정작 그 자신이 ‘부정부패의 원흉’이 됐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7위다. 현대그룹 창업자인 정 전 명예회장은 현대그룹을 이끌며 국가 산업의 기틀을 다지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1987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는 통일국민당을 창당하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등 정치 행보를 보였다.

1998년 6월16일 판문점을 통해 ‘통일소’라고 불린 소 500마리와 함께 판문점을 넘는 이벤트를 연출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남북 민간 교류 사업인 ‘금강산 관광’을 성사시켰다. 2001년 폐렴으로 인한 급성호흡부전증으로 작고했다. 아산나눔재단 주최의 ‘정주영 창업 경진대회’가 개최되는 등 정 전 명예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발전시키는 등의 활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8위다.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2월 퇴임한 후 눈에 띄는 대외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을 자주 찾고 있다. 지난 4월5일 감기 증상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지금까지 병원에서 지내고 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은 2008년 조사에서는 11위에 머물렀으나 올해는 두 단계 오른 9위다. 오늘날 삼성그룹의 기틀을 만들었고,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창설해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삼성그룹은 9월1일 그룹 홈페이지를 새 단장해서 오픈했다. 여기서 이병철 회장을 ‘사업보국의 의지로 삼성을 세우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10위는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이다. 김 주석은 1948년 9월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한 후 65년 동안 3대 세습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지금도 김 주석을 ‘정신적인 지주’로 떠받들고 있다.

20위권에 오른 인물 중에서는 ‘살아 있는 성자’로 불린 김수환 추기경이 11위(2.0%)다. 지난 조사보다 4단계나 뛰었다. 차기 대권 주자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2위(1.9%)에 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이 13위(1.7%),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4위(1.2%)로 한 단계 하락했으며, 올해 퇴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두 단계 오른 15위(9%)다. <사상계>를 창간하고 신민당 국회의원을 지낸 장준하 선생은 25위에서 16위(7%)로 껑충 뛰었다.

지금까지 장준하 선생의 사망 원인은 ‘추락사’였다. 유족 측은 지난해 12월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선생의 묘를 개묘해 유골 정밀 감식을 의뢰했고 “타살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받았다.

포스코 창업자인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이 17위(6%)에 올랐다. 18위(5%)에 랭크된 안철수 무소속 국회의원은 새로 20위권에 진입했다. 안 의원은 2011년 10월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가 박원순 서울시장을 지지하며 출마를 포기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중도에 사퇴하면서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걸어왔다. 차기 유력한 대통령 후보이기도 하다. 이런 점들이 이번 조사에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공동 19위(4%)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연아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나란히 올랐다. 20위(3%)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다.

30~40위권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내란 음모 혐의로 구속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고문 기술자로 유명한 이근안 전 경감, 지난 5월 대통령 미국 순방 중 인턴 여성 성추행 사건을 일으킨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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