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까지 그대로 베껴서 올렸다”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3.09.16 15:02
  • 호수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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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시비 휘말린 네이버…콘텐츠 제작자와의 갈등 잦아

국내 최대의 검색 포털 사이트 네이버가 한 저자의 책 내용 일부를 짜깁기식으로 게재해 저작권 시비에 휘말린 사실이 확인됐다. 문제가 된 책은 2011년 발행된 <유럽축제사전>으로, 책 내용 중 오타까지 그대로 올라간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7월 말 세계축제연구소의 유경숙 소장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이버 라이프 윙버스’ 코너에 자신이 쓴 책 <유럽축제사전>의 내용 중 일부가 그대로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쓴 지 3개월이 지나 유 소장은 네이버 측으로부터 책 속의 정보를 사용하고 싶다는 요청을 받았으나 거절한 바 있다.

문제가 된 콘텐츠는 세계 여러 나라 축제에 관한 것이다. 글자 그대로 올라가진 않았지만 단어나 표현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 사실상 짜깁기였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참가자들은 모두 중세 시대의 복장을 해야한다. 여행객 역시 예외는 아니다’는 ‘관광객도 예외없이 중세 시대의 복장을 갖춰야 한다’라는 표현으로 바뀌어 있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네이버 독점 콘텐츠 시장이 문제의 근원

저작권 문제는 늘 논쟁을 낳는다. 보통 ‘만들다 보니 우연히 그렇게 됐을 뿐’이라는 것이 의혹을 받는 쪽의 해명이다. 그런데 이번 사안은 이런 일반적인 해명도 내놓기 힘들 만큼 명백한 실수를 남겼다. 슬로바키아에서 열리는 한 연극 페스티벌에 대한 내용 중 문의 전화번호에 대한 오자도 그대로 올렸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확인한 유 소장은 출판사를 통해 네이버에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담당자와 통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유 소장은 “출판사가 수차례 통화했으나 실무 담당자가 아닌 콜센터 여직원하고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다가 10일 만에 돌아온 대답은 ‘ㅎ여행사에서 돈을 주고 샀으니 그쪽에 연락해봐라’였다”고 말했다.

피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ㅈ출판사에서 내놓은 한 책에서 네이버에 게재된 내용을 그대로 엮은 것을 발견했다. 해당 책은 25만원에 버젓이 판매되고 있었다. 유 소장은 “네이버에 올라간 책 내용이 또 다른 책으로 만들어져 2차 피해를 봤다. ㅈ출판사는 네이버에 올라갔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베껴놓았다”고 주장했다.

네이버 측은 문제를 파악하고 조치에 나섰다고 해명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해당 사안은 우리가 ㅎ여행사로부터 콘텐츠 사용 승인을 받아 사용했던 건이다. 문제를 인지해서 ㅎ여행사에 사실을 파악하기에 앞서 노출 중단 조치를 취했고 현재는 사실관계에 대해 해당 여행사에 확인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 소장은 “창조경제 하라며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것들을 만들라고 하는데, 이런 식이면 만들어도 결국 지켜줄 수 없는 것 아닌가. 뒤늦게 네이버에서, 하청을 준 ㅎ여행사 쪽에 확인을 요청했다는 내용의 사과를 해왔지만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람들은 컴퓨터를 켜면 무의식적으로 네이버 화면을 띄운다. 그리고 그 녹색 창에서 정보를 얻거나 게임, 뉴스 등 원하는 서비스를 선택한다. 네이버는 ‘콘텐츠업계의 대형마트’다. 그렇다 보니 네이버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곳들에게 ‘절대 갑’으로 여겨진다. 제작자들이 자신이 만든 콘텐츠를 유통시키려면 네이버를 거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네이버와 콘텐츠 제작자와의 갈등은 콘텐츠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IT기업 이즈포유는 웹 화면에 메모를 적어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메모디스’를 개발했다. 말하자면 ‘온라인 포스트잇’ 기술인데 단순히 컴퓨터 바탕화면이 아닌 특정 웹페이지에 붙일 수 있다는 것이 획기적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로부터 중소기업 기술 혁신 과제로 선정됐고 미국 특허를 획득하기도 했다. 이후 탄력을 받은 이즈포유는 메모디스에 온라인 광고창을 붙여 수익 모델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됐다. 네이버에 의해 악성 코드로 규정된 것이다. 최문성 대표가 “사용자가 정상적으로 다운받아 설치하고 원하면 클릭 하나로 삭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왜 악성 코드냐”고 묻자 네이버로부터 “네이버 광고를 가리고 영업을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문성 대표에 따르면 네이버는 한발 더 나가 메모디스에 광고를 한 광고주들에게 “광고 안 빼면 네이버 광고를 중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고 한다. 결국 메모디스는 광고가 끊겼다. 최문성 대표는 “단 4명의 직원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메모디스를 만들어냈다. ‘지적재산권을 근거로 혁신적인 비즈니스를 만들어낸다’는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가 이런 것일 텐데 앞으로 젊은 친구들이 무엇을 개발해도 결국 우리처럼 되지 않겠는가”라고 토로했다.

소상공인연합회 주관으로 열린 ‘네이버 피해 사례 보고회’에서 최승재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회에서도 포털 시장 정상화 논의 활발

네이버 측은 그 조치에 대해 이유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메모디스 중 광고가 노출되는 일부 서비스 영역에 대해 문제를 삼은 것이고 비슷한 사안에 대해 타사와 소송을 해 승소한 적도 있다. (광고주 압박에 대한 이야기는) 한 광고주가 해당 프로그램을 사이트에서 배포한 적이 있어서 이 건에 대해 광고주 약관에 의거해 중단하라고 이야기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잦은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네이버 등 포털 중심의 콘텐츠 시장 전반에 대한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네이버에 의해 피해를 봤다는 한 온라인 게임업체 대표는 “콘텐츠 사업 파트너 관계에는 원래 갑과 을이 없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모든 권한과 힘을 그쪽(네이버)에 몰아줌으로써 이런 논란이 되풀이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엔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콘텐츠 제작자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움직임은 소상공인연합회 창립준비위원회(위원장 최승재) 산하 네이버대책위원회(대책위)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대책위는 최근 네이버를 규탄하는 일련의 행사를 열고 있다. 권순중 대책위원장은 “네이버는 원래 공공재로서 공유화해야 하는 플랫폼을 활용해 컸고 콘텐츠를 자산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플랫폼 역할에 그치지 않고 콘텐츠를 베낀다든지, 이름을 살짝 바꾼다든지 하는 사례들이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국회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온라인 포털 정상화 TF팀 위원장을 맡은 새누리당의 전하진 의원이 포털 시장 정상화를 위해 적극 나섰다. 전 의원은 “네이버가 독점적인 갑의 위치를 이용해 부당하게 계약을 하는 등 부도덕한 문제가 있어 해당 논의를 삭제했지만 특정 업체에 대한 규제나 손보기보다는 포털 및 인터넷 시장 활성화에 포커스를 두고 좀 더 넓은 차원에서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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