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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텃밭에서 ‘미래’가 영글어간다

취업 대신 가을 농사로 바쁜 20대 도시 농부들…‘도시농사’로 젊은 상상력 파종

조혜지 인턴기자 ㅣ 승인 2013.09.16(Mon) 15:10:29 | 12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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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도시농업이 도시를 구원할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6월 ‘도시농업’ 원년 선언을 하면서 한 말이다. 도시농업 붐이 뜨겁다. 지난해 기준으로 도시농업 인구는 76만명을 넘어섰고, 도심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도시 농지도 558ha(약 561만m2)로 10년 전보다 4배나 넓어졌다.

남는 땅에 모종 몇 뿌리 심는 일로 도시를 구원할 수 있을까. 전혀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다. 옥상, 베란다, 강변 등의 ‘노는 땅’에 작물을 심고 기르면 도시는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거듭한다. 도시 환경 개선은 물론 팍팍한 도시살이에 지친 시민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할 ‘힐링 공간’ 역할도 한다. 텃밭 디자이너, 농부 기획자 등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집에서 소일거리로 텃밭을 만들던 노인들은 ‘농사 선배’로서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최근 도심 속 빌딩 옥상을 활용한 20대들의 재기 발랄한 도시농업이 늘어나고 있다. 홍익대 옥상 텃밭 ‘다리’(위 사진). ⓒ 여성환경연대 제공 파릇한 절믄이 협동조합의 ‘공중 텃밭’(왼쪽 사진). ⓒ 시사저널 임준선
도시 농사꾼을 자처하는 젊은이들도 생겨났다. ‘그린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또래들이 모여 옥상과 도심 농장에서 텃밭을 일구며 ‘놀고’ ‘먹는’다. 머리를 맞대고 왜 고추에 병충해가 들었는지 고민하고, 시골에서 농부 선배를 모셔와 특강을 듣기도 한다. 홍익대 일대 옥상 텃밭 기획자인 이보은 여성환경연대 대안환경생활위원장은 “젊은이들은 이제 앞 세대의 삶이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안다. 고립적인 삶 대신 대안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용기 있는 친구들도 늘어나고 있다.

청년 도시농업은 바로 그런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산업”이라고 말했다. 소모임에서 시작해 협동조합으로 정식 인가를 받은 ‘청년도시농협’도 있다. 협동조합 ‘파릇한 절믄이’ ‘씨앗들’이 바로 그들이다.

#1 도심 한복판 옥상에서 농사짓고 논다
      ‘파릇한 절믄이’ 협동조합

차와 사람들로 북적이는 서울시 마포구 구수동 사거리. 그 한편에 자리한 5층짜리 빌딩 옥상 위엔 갓 퇴비를 뿌린 텃밭 서너 뙈기가 가을 농사를 기다리고 있다. 직접 디자인한 아기자기한 푯말 뒤로 아직 수확을 하지 않은 초록의 쌈 채소들이 꽃처럼 활짝 피었다. ‘공중 텃밭’이란 이름이 붙은 곳이다. 평균연령 20대 중반의 청년 도시 농부 협동조합 ‘파릇한 절믄이’(파절이)의 ‘쉼터’이자 ‘일터’다.

“고추가 참 어려워요. 벌레도 많이 생기고 그래도 콩이나 토마토는 잘됐어요.” “올해 봄 농사는 냉정하게 말해서 잘된 편은 아니에요. 실험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얻었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가을 농사 땐 좀 더 다양한 작물을 키워보려고요.” 올해 처음 시작한 ‘옥상 봄 농사’를 평가하는 입들이 바쁘다. 퇴비, 경작 방법 등 각종 대책들도 쏟아진다. 여느 농촌마을의 영농 정례회의에서나 들을 법한 대화들이 오간다.

2011년 소규모의 대학생 프로젝트 팀으로 시작해 이제는 160여 명의 조합원과 세 명의 상근 운영진을 둔 어엿한 농사꾼 단체로 성장한 이들은 올해 1월20일 정식으로 서울시로부터 협동조합 인가를 받았다. 시골에서 자란 경험이 없는 젊은 또래들이 모여 서울 한복판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나섰을 때 주변에서는 “한철 지나면 사그라질 트렌드”라고 했다. 물론 ‘재미’를 1번으로 하고 시작한 도시농업이었다. 하지만 재미를 추구한다고 해서 진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도 뭘 알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회원들끼리 지식 교류하고, 프로그램도 진행하면서 같이 알아나가는 거죠.” 처음 공공농장인 노들텃밭에서 농사를 시작할 땐 기초적인 농법부터 퇴비 작업까지 머리를 맞대고 공부했다. 경험이 풍부한 농부 선배들을 모셔와 특강도 듣고, 필요한 조언도 수집했다. “보고 들은 것들을 응용하는 거예요. 이러자, 저러자 하는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상상했던 아이디어도 자유롭게 낼 수 있고. 혼자 집에서 해보고 싶었던 농법들을 거리낌 없이 실험해볼 수도 있고요.” 지금 농사에 적용하고 있는 음식 잔반 퇴비, 지렁이 분변토, 달걀껍질로 만든 천연 농약 등의 참신한 농법도 그렇게 발굴됐다.

   
작은 푯말부터 여러 가지 밭 모양까지. 개성 넘치는 ‘파릇한 절믄이 협동조합’의 텃밭 디자인. ⓒ 시사저널 임준선
정육점에서 뼛가루, 목공소에서 톱밥 얻어

옥상에 텃밭을 올린 것도 그저 도시농업을 ‘재밌게 풀 수 있겠다’는 확신 하나로 시작한 일이었다. 지난해부터 도시농업에 대한 서울시의 적극적인 정책 추진 기류와 더불어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파절이의 프로젝트도 속도를 냈다. 소셜 펀딩을 기획해 도시농업과 로컬 푸드의 가치를 공유하는 주변으로부터 기금을 마련했고, 서울시 도시농업 공모 사업에 당선돼 추가로 2000만원을 지원받았다. 페이스북을 통해 이들이 일군 대안적 삶을 전해들은 건물주가 무상임대로 옥상을 내주기도 했다. 홍익대 근처 건물 옥상 한 곳도 도시 농지로 제공받고 2호점 공사를 진행 중이다.

‘도시 농지 점유’와 ‘재원 조달’이라는 도시농업의 딜레마를 기적처럼 순조롭게 해결했지만, ‘옥상에서 농사짓기’라는 근본적인 난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농토로 쓸 흙을 5층 건물 위에 펼치는 작업부터가 대공사였다. 크레인과 기중기가 동원됐고, 회원들이 모여 흙과 자갈을 나르고 깔았다. “옥상은 정말 농사짓기엔 최악의 공간이에요. 전문가들도 다 그렇게 말하고. 그래도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 게 재밌어요. 잘 안 되면 안 될수록 더 파고들어서 하려고 하고….”

이웃 주민들의 도움도 많이 얻었다. 퇴비를 만들 때 필요한 톱밥을 동네 목공소에서 포대자루로 얻어오기도 하고, 근처 농협에서 정미하고 남은 쌀겨를 얻어와 퇴비에 넣기도 했다. “저희가 옥상 토양을 채취해서 서울 도시농업 기술센터에 맡긴 적이 있거든요. 식물이 자라려면 질소, 인산, 칼륨이 필요한데 검사 결과 인산만 없다는 거예요. 온라인에서 회원들이랑 의견을 모았는데 ‘골분액비’라는 답이 나왔어요. 동네 정육점에서 뼛가루 얻고, 일정 비율 맞춰서 만들어냈어요. 지금 발효 중인데 곧 뿌려줄 거예요.”

지금까지 스무 가지가 넘는 작물을 심고 거뒀다. 콩과 토마토, 바질이 잘 자랐고 고추 농사도 병충해를 입은 것치곤 꽤 잘 지은 편이다. 수확한 작물들은 조합원들과 ‘재밌게’ 나눠 먹었다. 바비큐 전문가인 조합원의 주도로 맛있는 가드닝 파티를 열기도 하고, 수확한 작물로 아이디어 넘치는 창작 먹거리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도심 야경을 배경으로 펼쳐진 옥상 텃밭의 이른바 힐링뷰(healing view)도 적극 활용했다. 어스름한 달빛 아래서 펼쳐지는 한밤중의 바자회 ‘공중야시장’과 옥상 외벽을 스크린으로 삼은 노천 옥상 극장 ‘공중영화제’도 시작했다. 협동조합 회원뿐만 아니라 파절이가 되고 싶은 예비 회원, 그냥 놀러 와본 비회원 모두 참여할 수 있다.

파절이에게 도시에서 농사짓기란 곧 그들의 삶이자 미래를 위한 준비다. 사회가 일률적으로 요구하는 스펙 어느 것 하나 갖추고 있지 않아도 불안하거나 괴롭지 않다. “도시농업의 카테고리 안에서만 생각할 게 아니라 삶과 농사 자체가 밀접하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가을엔 래디시, 고수, 아욱처럼 아직 가꿔보지 않은 작물을 해보고 싶어요. 기자님도 관심 있으면 같이 지어요.” 다가올 가을 농사 이야기에 눈빛들이 싱그럽게 빛난다. 그들은 누구보다 파릇하게 잘 자라고 있다.

   
‘씨앗들협동조합’의 도시농업 인터넷 강좌 스튜디오 촬영 모습. 이날 귀농 농부가 강사로 나서 ‘흙과 퇴비’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2 도시농업 UCC 강좌 제작하는
      20대 협동조합 ‘씨앗들’

“집 안 농사도 절기와 관련이 참 많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24절기를 통해 농사 흐름을 배워보려고 해요.” ‘아아’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VCR 화면엔 ‘24절기와 농부의 달력’이라는 화면이 펼쳐져 있다. 청년 도시농업 협동조합 ‘씨앗들’의 도시농업 인터넷 강좌, ‘e-레알 텃밭학교’의 촬영 현장이다.

“선생님, 의자는 편하세요? 화면 위치는요?” 카메라 뒤에서 동분서주하며 강사의 편의를 살피는 조그만 체구의 앳된 얼굴. ‘씨앗들협동조합’의 조합장 황윤지씨(26)다. “조합원 대다수가 대학생·대학원생이에요. 한 40명 정도. 원래 학교 동아리로 시작했다가 졸업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학내 운영이 힘들어졌고, 그래서 협동조합으로 나오게 됐어요.”

원래 고려대 교내 동아리로 시작한 모임이었다. 캠퍼스 텃밭을 일구면서 농사를 ‘공부’했다. 그땐 그야말로 농사를 ‘책으로’ 배웠다. 좀 더 생생한 농사에 갈증을 느끼면서 실제 농사 선배, 즉 농부들의 ‘진짜 농사’ 수업을 기획해 학교에 신청했다. 오픈 강좌 형태로 등록된 이 수업은 4~5명으로 시작해서 나중엔 100여 명의 수강신청을 받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도시농업에 관심 가진 또래가 많더라고요. 학생 신분으로선 ‘공부해보자’는 식으로 시작하는 수밖에 없어요. 농사지어본 경험이 거의 없으니까.”

쉽고 재밌는 ‘도시농업 따라 하기’ 콘텐츠 제작

그게 시작이었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농사 선배들을 찾아가 묻고 또 물었다. 배우면 배울수록,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알고 싶은 작물과 농법들이 점점 늘어났다. 서울 갈현동과 공덕동의 도심 텃밭을 경작하면서 배웠던 농법들을 적용해 갖가지 ‘농사 실험’도 시작했다. 밭 모양을 수시로 바꿔보기도 하고, 중금속에 오염된 땅을 식물로 되살리는 ‘식물 정화’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밭이랑을 다듬고 씨앗을 열매로 키워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수익을 내려고 시작한 일은 아니에요. 좀 더 운동적인 의미로 많은 사람에게 환경적인 가치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서울시 도시농업 공모 사업 참여로 지원받은 2000만원을 그대로 도시농업 교육 콘텐츠 제작에 쏟아부었다. “기존 도시농업 강좌는 금액도 비싸고, 내용이 어려워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어요. ‘재미’로 접근하긴 쉽지 않죠. 고등학교 때 인터넷 강의도 재미없으면 안 들었잖아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재밌고 즐겁게 알려줄 수 있는 강좌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론 8강의, 실습 15강의로 총 23강좌다. 시간 간격이 긴 이론 강의는 한겨레의 하니TV 스튜디오에서 전문 촬영인과 PD의 도움을 받았다. “실습 강좌는 고추 따는 법, 상추 따는 법처럼 기본적인 경작 내용의 3~5분짜리 클립으로 만들었어요. 인건비가 없기 때문에 언론홍보학과를 다니는 조합원들이 편집하고, 미술을 전공한 친구가 포스터를 그려주는 식으로 진행했죠.” 박원순 서울시장의 도시농업 정책 멘토인 도시농업시민협의회 안철환 회장부터 베란다 채소밭 전문 블로거 박희란씨까지. 과목별 맞춤 강좌가 알차게 구성돼 있다.

수익을 염두에 두지 않고 시작한 일이라 일의 대부분이 조합원의 재능 기부로 진행된다. 상근자를 두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한다. 비영리 기관과 달리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협동조합의 성격상 지자체 기관의 인건비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영리 단체로 등록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저희는 ‘자급자족’이 목표이기 때문에 돈을 벌 만큼의 경작은 하지 않고 있어요. 수확한 작물들도 대부분 지역 어르신과 나누고 있고….” 서울시에서 받는 지원금도 인건비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어 물품 구입이나 외부 인력을 사용할 때만 지출한다.

도시농업 인터넷 강좌 프로젝트인 ‘e-레알 텃밭학교’도 서울시의 공모 지원이 없었으면 실현하기 힘든 일이었다. 서울시는 씨앗들협동조합의 ‘색깔 있는’ 강좌에 주목했다. 어려운 전통 농사 용어 대신 실제 집 농사에 적용할 수 있는 사례로 강의를 꾸렸다. 24절기에 따라 농사 흐름을 정했던 기본 농사법 익히기는 물론 텃밭 곤충들에 대한 정보, 베란다 텃밭 가꾸는 법, 텃밭 채소들로 채우는 건강한 밥상 만들기 등 도시농업에 관심 있는 예비 도시농사꾼들이 혹할 만한 정보가 가득 담겨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지만 ‘도시농사’에 대한 아이디어와 열정만큼은 여느 영농 대기업 부럽지 않다. “우리끼리 재미있는 일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단순히 수확에만 의미를 두는 게 아니라 텃밭 농사에서 할 수 있는 실험들을 실컷 해보려고요. 제3세계 농법을 적용해본다든지, 밭 모양을 요렇게 저렇게 만들어본다든지. 도시농업 인터넷 강좌를 하는 이유도 도시농업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공유하고 싶어서예요.” 씨앗들협동조합의 ‘e-레알 텃밭학교’는 9월 중순에 개교할 예정이다. 유튜브와 하니TV에서 차례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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