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력이냐, 참신성이냐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10.0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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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총무원장 후보 5명…자승 vs 보선 양자 대결 압축

국내 최대의 불교 종단인 조계종의 제34대 총무원장 선거가 오는 10월10일 실시된다. 9월20일 후보 등록을 마감한 결과 총 5명이 입후보했다. 당초 재출마하지 않겠다고 했던 자승 총무원장이 약속을 뒤집고 재선에 나섰고, 전 중앙종회 의장인 보선 스님(대흥사 회주)도 출사표를 던졌다.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전 포항 오어사 주지 장주 스님, 전 선운사 주지 대우 스님도 총무원장 선거 대열에 합류했다.

‘2강’으로 꼽히는 자승 스님과 보선 스님에겐 각기 장단점이 있다. 자승 스님의 최대 장점은 현직 총무원장 프리미엄이다. 총무원을 중심으로 탄탄한 제도권 조직이 뒤를 받치고 있다. 현 총무원장이라는 기득권을 무시할 수 없어 유리한 고지에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불출마’ 약속을 파기한 것이다.

(왼쪽부터) 자승 총무원장 ⓒ 시사저널 포토, 보선 스님 ⓒ 연합뉴스
자승 총무원장 ‘불출마 약속’ 번복

지난해 5월23일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전남 장성의 한 호텔에서 중진 승려 8명이 밤을 새워 억대 도박판을 벌인 일명 ‘백양사 승려 도박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조계종단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됐고, 최고 행정 기구인 총무원은 참회문을 내고 대대적인 쇄신에 나섰다. 자승 총무원장은 종단 쇄신, 종단 재정 투명화, 사찰운영위원회 활성화, 사찰 재정 공개, 지도부 계파 해체 등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자신에 대한 사퇴 요구가 빗발치자 성명서를 통해 “재임에 관심이 없으며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세속 정치의 정당에 해당하는 4대 종책 모임(화엄회·무량회·무차회·보림회)이 차례로 해체 수순을 밟았다. 지난 선거에서는 4대 종책이 모두 자승 총무원장을 지지했다.

하지만 총무원장 선거가 다가오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자진 해산했던 종책 모임이 새로운 이름으로 재탄생하며 ‘파벌’과 ‘계파’를 부활시켰다. 지난 7월 옛 화엄회·법화회·무량회 그리고 무소속 회원들이 거대 종책 모임 ‘불교광장’을 출범시켰다. 옛 보림회 소속 종회 의원들도 8월25일 모임을 갖고 ‘백상도량’을 발족했다. 보림회는 지난해 6월 모임을 해체한 후 국제구호단체인 ‘하얀코끼리’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이로써 조계종의 종단 계파 정치는 원점으로 돌아갔고 ‘종단 개혁’ 구호도 무색해졌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는 제34대 총무원장 선거가 있고, 그 정점에 자승 현 총무원장이 있다. 그는 올해 6월에 열린 임시중앙종회에서도 “소임에 대한 마음을 비웠다”며 재임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후부터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불출마 입장을 확실히 해달라는 종단 내의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자승 총무원장이 기존의 입장을 바꿔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면서 조계종단도 들끓었다. 종단 내 기구들이 잇달아 성명서를 내며 자승 총무원장에게 연임 포기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역대 선거에서 찬반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던 전국선원수좌회(공동대표 원각·정찬 스님)도 들고 일어났다. 참여불교재가연대는 선원수좌회가 발표한 성명에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 이들도 역시 자승 스님에게 불출마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자승 총무원장은 선거 출마에 무게를 뒀다. 그리고 최대 지지 계파인 불교광장은 9월16일 임시총회를 열고 차기 총무원장으로 자승 스님을 추대했다. 이 자리에는 16개 교구 본사와 종회 의원 스님 등 120여 명이 참석했다. 자승 스님 또한 불교광장의 추대를 수락했고, 이틀 후인 9월18일 총무원장 후보로 등록하면서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저의 출마를 둘러싸고 여러 논란이 있는 줄 알지만 어떠한 이유로도 변명하지 않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사부대중께 머리 숙여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로써 ‘백양사 도박 사건’을 계기로 종단을 쇄신하겠다는 그의 약속은 흐지부지됐다. 이번 선거에서도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불교계의 한 인사는 “자승 총무원장에게 ‘불출마 약속 번복’은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 될 수밖에 없다. 비록 연임에 성공한다고 해도 전 종단의 지지를 받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자승 총무원장의 최대 경쟁자인 전 중앙종회 의장 보선 스님(현 해남 대흥사 회주)은 명분에서 앞선다. 지난 선거에서는 무차회 소속으로 자승 원장을 지원한 뒤 제14대 후반기와 제15대 전반기 종회 의장을 지냈고, 종단 내에서 두루 신망을 받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보선 스님은 사회 참여 활동에 적극적이다. 불교환경연대 공동대표와 한국다문화센터 공동대표를 역임하고, 현재 한국다문화센터 상임고문, 경제정의실천시민연대 대표 등을 맡고 있다.

보선 스님은 이번 선거에서 ‘청정승가(맑고 깨끗한 교단) 구현으로 위기의 한국 불교를 바로 세우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그는 경쟁자인 자승 스님을 염두에 둔 것인지 “(총무원장이 되면) 계파를 관리하지 않고, 재임에도 나서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조계종 총무원 청사가 있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 시사저널 최준필
‘금오문도회’ 향배에 희비 갈릴 듯

자승 스님은 선거 슬로건을 ‘교구 중심, 한국 불교의 미래입니다’로 정했다. 그는 “이 슬로건은 중앙종무기관과 교구의 조화로운 발전만이 한국 불교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는 소신과 선거대책위원회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강조했다.

현재 판세는 2강 3약으로 분류된다. 현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은 조계종 종책 모임인 불교광장(화엄·법화·무소속)이 후보로 추대했고, 보선 스님은 반(反)자승 연대라 할 수 있는 ‘3자 연대(무량·무차·백상도량)’가 밀고 있다. 불교광장은 자승 총무원장의 최대 지지 계층인 화엄회가 주축이다.

실제 선거에 돌입하면 누가 유리할까. 현재 구도로 보면 자승 스님과 보선 스님 누구도 승리를 점치기 쉽지 않다. 지난 7월 불교광장이 창립될 당시만 해도 전체 종회 의원 81명 중 절반이 넘었으나 무량회가 이탈하면서 세가 줄었다. 반면 3자 연대는 무량회가 가세하면서 세가 더 커졌다.

불교계 관계자는 “‘금오문도회’가 이번 선거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고 말했다. ‘금오문도회’는 법주사·불국사·금산사 3사가 주축이다. 이번 총무원장 선거는 간선제로 치러진다. 선거인단은 중앙종회 의원(국회의원 격) 81명과 24개 교구 본사가 각각 선정한 10명의 대표자 240명을 합해 321명으로 구성된다.

이 중 금오문도회가 확보하고 있는 선거인단은 41명에 달한다. 자승 스님과 보선 스님이 팽팽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금오문도회’ 표의 향방에 따라 총무원장이 결정될 수도 있다. 한때 금오문도회는 자체 후보를 내기로 하고, 전 포교원장인 도영 스님을 총무원장 후보로 추천했으나 실제 후보로 등록하지는 않았다. 도영 스님은 평소 자승 총무원장의 연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교계 일각에서는 “총무원장 선거 후를 염두에 둔 ‘협상 카드’가 아니겠느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최근 금오문도회의 행보를 보면 보선 스님보다는 자승 스님 쪽에 무게감이 실린 것처럼 보인다. 도영 스님을 후보로 추천한 불국사 전 주지인 종상 스님(현 불국사 관장)은 자승 총무원장을 추대한 불교광장의 고문이며, 전 금산사 주지 원행 스님은 자승 총무원장 선대위 공동위원장이다. 또 불국사 주지 성타 스님과 금산사 주지 성우 스님은 자승 총무원장 후보 추대식에 참석했다.

조계종 총무원 청사가 있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 시사저널 최준필
군소 후보들 얼마나 선전할까

하지만 금오문도 3사에서 주요 소임을 맡고 있는 스님들 중에는 이해관계에 따라 ‘자승’과 ‘보선’ 지지 세력으로 갈려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누가 금오문도회의 마음을 얻느냐에 이번 선거의 승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약’으로 분류되는 후보들도 본격적인 선거 채비에 들어갔다.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했던 내장사 백련선원 회주 대우 스님은 29대·32대·33대에 이어 네 번째 출마다.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은 2006년 11월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추천과 제14대 중앙종회의 만장일치 동의로 제5대 포교원장이 됐다. 2011년 11월 퇴임할 때까지 5년 동안 포교원장을 맡으면서 맞춤형 포교 전략으로 종단 포교 종책을 이끌었다.

전 포항 오어사 주지 장주 스님은 “조계종 백년대계를 위해 총무원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7월 조계종 고위층 스님 10여 명이 수십억 원대 도박판을 벌였다며 폭로한 당사자다. 8월에는 2009년 제33대 총무원장 선거 당시 특정 후보와의 밀약설을 제기하며 그 근거로 스님들의 사인이 들어 있는 각서를 제시했다. 그는 또 법원에 자승 총무원장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아울러 직무집행정지 기간 동안 자승 원장의 출마를 금지해줄 것을 법원에 요구했다. 이들 군소 후보가 자승 총무원장과 보선 스님의 대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자승 스님·보선 스님 캠프에서 누가 뛰나 


자승 총무원장과 보선 스님은 각각 선거 캠프를 꾸렸다. 여기에는 조계종단 스님들이 주로 포진하고 있다. 9월16일 총무원 청사가 있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에서는 자승 총무원장 후보 추대식이 열렸다. 여기에는 조계종 24개 교구본사 주지 24명 가운데 과반이 넘는 16명이 참석했다. 주요 참석자는 신흥사 주지 우송 스님, 백양사 주지 진우 스님, 화엄사 주지 영관 스님, 마곡사 주지 원경 스님, 통도사 주지 원산 스님, 선운사 주지 법만 스님, 봉선사 주지 정수 스님 등이다.

이 자리에서 선대위원장을 비롯한 선대위원 명단도 발표했다. 공동선대위원장 8명에는 불교광장 공동대표 지홍 스님, 월정사 부주지 원행 스님, 전 군종특별교구 자광 스님, 전 금산사 주지 원행 스님, 수원사 주지 성관 스님, 동국대 교수 보광 스님, 중앙종회비구니의원연구회장 일운 스님, 전국비구니회관 법룡사 주지 정엽 스님이 포진했다.

집행위원장은 중앙종회 의원인 정도·초격 스님, 홍보본부장은 전 총무부장 지현 스님, 대변인에는 전 금산사 수련원장 일감 스님, 종책본부장은 흥천사 주지 정념 스님, 국장에는 원명 스님, 사무처장에는 아름다운 동행 사무총장 혜일 스님 등이 맡고 있다.

보선 스님 선거 캠프도 만만치 않은 진용을 갖췄다. 상임고문에는 19명의 스님이 포진했다. 이 중 전 호계원장 법등 스님은 종책 모임 무량회를 대표하고 있으며, 한때 총무원장 출마가 유력했으나 본인이 고사했다. 무량회가 보선 스님을 지지하는 ‘3자 연대’에 합류하면서 보선 스님 편에 섰다. 법등 스님과 함께 무량회를 이끌고 있는 전등사 회주 장윤 스님도 보선 스님을 적극 돕고 있다. 옛 보림회(현 백상도량)의 주축이던 전 동국대 이사장 영배 스님도 고문단에 포함됐다.

상임선대위원장은 전 송광사 주지 영조 스님이 맡았다. 공동선대위원장 6인은 전 신흥사 주지 도후 스님, 전 송광사 주지 현봉 스님, 송광사 율원장 도일 스님, 중앙종회 의원 법보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 석남사 주지 도문 스님(비구니) 등이다.

공동집행위원장에는 종회 의원 무애·혜림·태연·범해 스님, 전략기획실장에는 총무원 기획실장을 역임한 장적 스님, 대변인에는 장명·법인 스님, 홍보위원장에는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과 동국대 정각원 교법사인 마가 스님이 임명됐다. 수국사 주지 원담 스님, 전 불교방송 이사장인 영담 스님(현 석왕사 주지) 등이 보선 스님 당선을 위해 뛰고 있다. 옛 보림회의 대표 격인 영담 스님은 지난 선거 때는 자승 총무원장 후보 공동추진위원장을 맡았고, 당선 후에는 부원장급인 총무부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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