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주홍글씨 새겨 야권 연대 판 엎는다
  • 안성모·이규대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10.0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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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내란 음모’ 수사 후폭풍…내년 지방선거 겨냥해 공안 칼바람

“이번 같은 대형 공안 사건은 최소한 1년은 간다고 봐야 한다.” 사정기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여권 인사가 최근 기자에게 한 말이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 단기간에 마무리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는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여권의 바람이 담겨 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 연대의 위력을 실감했던 여권 입장에서는 ‘종북 딱지’를 통해 민주당의 발목을 잡아둘 필요가 있다. 현재 상황이 내년까지 지속된다면 민주당이 통합진보당에 손을 내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민주당은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서도 통합진보당과 ‘선 긋기’에 나선 모습이다.

공안의 칼바람이 매섭다. 이석기 의원을 내란 음모 혐의로 수사 중인 검찰이 9월26일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지하혁명조직 ‘RO(Revolution Organization)’가 주체사상을 전파하는 내용의 강령을 채택했으며, 올해를 북한의 전쟁 위협이 있을 결정적 시기로 판단해 국가 기간시설 타격을 모의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약 4시간이 지난 오후 6시, 국민행동본부·선진화시민행동·한국시민단체협의회 등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종북 척결’ ‘통합진보당 해체’를 소리 높여 외쳤다. 전직 국회의원 및 관료, 보수 성향 논객, 성남시의회 소속 새누리당 시의원 등 참여 인사의 폭도 넓었다.

그런데 장소가 의미심장하다. 집회는 경기도 성남시, 지하철 분당선 야탑역 부근 광장에서 진행됐다. 보수 시민단체들은 지난 8월부터 매달 성남에서 ‘종북 척결대회’를 열고 있다. 이른바 ‘경기동부연합’ 세력이 암약하는 본거지가 성남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성남만이 아니다. 내란 음모 의혹이 불거진 이후, 현재 수도권 지방정부를 대상으로 여권 및 보수 세력의 ‘종북 사냥’이 한창이다. 수도권 지역이 통합진보당 주축 세력의 활동 근거지로 알려졌고,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야권 연대가 가장 활발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 통합진보당은 야권에게 ‘주홍글씨’다. 통합진보당의 모든 연관 검색어에 빨간색이 덧칠됐다. 통합진보당 인사를 지방정부 운영에 끌어들인 야권 연대 지자체에 대한 공세가 맹렬하다. 검찰이 휘두르는 ‘공안’의 칼도 관련 의혹을 겨눈다. 지금 야권 지방정부들이 떨고 있다.

현재 새누리당과 보수 시민사회의 의혹 제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많은 야권 후보가 단일화를 통해 승리했다. 선거 이후 공동 정부를 수립해 운영하는 과정에서 야권 연대 파트너였던 통합진보당 관련 인사들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산하 기관과 사회적 기업 등에 이들을 채용하고 자금을 지원했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 불법적인 특혜는 없었는지, 재정 지원이 어떤 용도로 사용됐는지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 여권의 주장이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내란 음모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9월5일 경기 수원남부경찰서에서 수원구치소로 이송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성남시 ‘나눔환경’ 특혜 의혹 다시 불거져

가장 심하게 홍역을 앓는 곳은 역시 성남시다. 검찰로부터 ‘RO’의 일원으로 지목된 김미희 통합진보당 의원이 현 이재명 시장 당선 당시 단일화 파트너였다. 보수 단체들은 김 의원과 단일화 후 정책 연대를 이루어 공동 정부를 구성했던 이 시장을 ‘종북 시장’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성남시의 현재 권력 구도로 보면 여야가 팽팽하다. 시장이 민주당 소속이지만 시의회는 새누리당이 14석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민주당은 1석 적은 13석이다. 국회의원은 새누리당이 2석,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각각 1석씩 갖고 있다. 각종 의혹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러한 권력 구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이 공세를 펼치는 핵심은 청소업체 ‘나눔환경’을 둘러싼 특혜 의혹이다. 지방정부 출범 초기인 2011년부터 지속적으로 논란이 된 문제다. 2010년 12월 설립된 나눔환경은 석 달 후인 2011년 3월 성남시의 민간 위탁 청소용역업체로 선정됐다. 나눔환경에는 통합진보당 관련 인사가 상당수 소속돼 있다.

성남시는 나눔환경에 매년 15억여 원을 용역비로 지급하고 있다. ‘후보 단일화에 따른 대가’라는 특혜 논란이 불거졌던 이유다. 이에 대해 성남시는 “과거 검찰·경찰·감사원이 고강도로 수사를 벌였으나 특혜나 불공정한 내용이 없어 수사를 종결했다”고 밝혔다. 2010년 모집 공고 당시 12개 업체가 신청했고, 조례에 따라 민간 위탁 적격심사위원회를 구성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선정했다는 것이 성남시의 입장이다.  

명확히 결론이 나지 않았던 논란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떠올랐다. 성남시의회 새누리당협의회는 ‘성남시가 종북 세력의 근거지이고 자금줄이라는 의혹에 대한 해명, 시장직 인수위원의 시 산하 기관과 예산 지원 업체 채용 내역 및 지원 금액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내란 음모 혐의를 조사 중인 검찰은 성남시청 관계자 3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나눔환경의 인허가 경위와 용역 수주 과정에 대해 추궁했다. 특혜 여부가 관건이었던 나눔환경 논란이 ‘공안 사건’이 되어 다시 사정 당국의 수사 대상에 오른 셈이다.

수원 역시 상당한 파장에 휩싸였다. 검찰이 ‘RO’의 핵심 조직원으로 지목하고 구속 기소한 통합진보당 관련 인사들 중 상당수가 수원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은 수원시 사회적기업지원센터 센터장, 한동근 전 수원시 지역위원장은 수원시 새날의료생협 대표를 맡고 있다. 이들 단체는 모두 수원시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다. 검찰은 9월26일 중간 수사 발표에서 이 고문과 한 위원장이 각각 ‘RO’의 경기 남부 지역책 및 세포원이라고 주장했다.

수원시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9월2일 이상호 고문을 센터장직에서 해임했다. 9월8일 통합진보당 관련 기관에 대한 예산 지원 내역도 공개했다. 5개 기관에 국가 지원, 도 지원을 포함해 약 68억원이 지급됐다. 수원시는 “확인 결과 지원된 예산은 관련 사업과 인건비 등으로 적법하게 쓰였다”고 밝혔다. 통합진보당 관련 인사의 채용 경위에 대해서도 “전문성과 활동 경력을 기준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모했다”고 해명했다.

수원시의 정치권력은 야당 쪽으로 조금 기운다. 시장이 민주당 소속인 데다가 시의회도 민주당이 17석으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1석까지 합하면 과반수를 넘긴다. 새누리당은 15석이다. 국회의원도 민주당이 3석으로 1석인 새누리당에 앞선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원시의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은 일찌감치 ‘새누리당 수원시장 후보 연대 대가성 관련 진상 규명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염태영 시장이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과 야권 연대를 한 것과 관련해 선거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통합진보당 인사 등에 지원한 예산의 적법성을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활동은 미미하다. 특위 소속의 한 의원은 “검찰이 관련 자료를 모두 가져간 상황이라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남시도 직격탄을 맞았다. 통합진보당 하남시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근래 경기도당 부위원장이 이른바 ‘5·12 비밀 회합’ 녹취록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김 부위원장은 경기동부연합의 주요 인사로도 거론된다. 한국외국어대 무역학과 86학번인 그는 중국어통번역과 82학번인 이석기 의원의 대학 4년 후배다. 

하남시 ‘RO 재정 사업체’로 돈 흘러들어갔나

국정원은 8월28일 김 부위원장의 자택은 물론 그가 관여해온 사회단체 사무실까지 압수수색했다. 국정원은 또 9월11일 내란 음모 등 혐의로 김 부위원장을 불러들여 조사를 벌였다. 북한의 남침에 대비해 총기 무장과 국가 주요 시설 타격 등을 논의한 것으로 보고 이를 집중 추궁했다고 한다. 하지만 녹취록에 나온 내용 이상의 증언을 확보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위원장에 대한 수사 결과와 무관하게 녹취록 내용만으로도 지역 민심은 들썩였다. 새누리당은 통합진보당은 물론 민주당을 겨냥해서도 공세의 고삐를 죄고 있다. 최철규·윤태길 도의원과 윤재군·김승용 시의원 등 새누리당 소속 지역 의원들은 9월2일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근래씨는 야권 단일화를 통해 야권 시장을 탄생시키는 데 일조함으로써 시의 전폭적인 예산 지원 및 각종 편의를 지원받았다”고 지적했다.

현재 하남시는 외형적으로 볼 때 야당이 권력을 쥐고 있다. 국회의원은 새누리당 소속이지만 시장이 민주당 소속이고 시의회도 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7명의 시의원 가운데 민주당 3명, 통합진보당 2명, 새누리당 2명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 통합이 위력을 발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김 부위원장이 역할을 했다. 당시 민주노동당 시장 후보로 나섰던 그는 투표 며칠 전에 후보를 사퇴하고 민주당 후보로 나선 이교범 현 시장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이후 김 부위원장은 환경하남의제21실천협의회 회장을 맡는 등 하남시에서 지원하는 사회단체 여러 곳에 관여했다. 새누리당은 이 지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하남시가 김 부위원장과 직·간접으로 관련 있는 환경하남의제21실천협의회(3억4800만원), 평생교육원(1억5800만원), 푸른교육공동체(1억4400만원), 문턱없는밥집(8000만원), 장난감도서관(6000만원) 등에 7억9000만원에 이르는 예산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들 단체는 “내란 음모 수사와 무관하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사태가 확산되자 이교범 시장이 직접 해명에 나섰다. 이 시장은 9월13일 시청 상황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환경하남의제21실천협의회·푸른교육공동체·평생교육원은 법령과 조례를 근거로 설치된 기관이다. 또 장난감도서관과 문턱없는밥집도 안전행정부와 경기도가 국비와 도비로 지원하는 사업이다”라고 밝혔다. 

‘종북 사냥’ 경기 북부로 확대될지 주목

이와 별개로 하남시가 2011년 ‘미사리 7080 페스티벌’ 행사 용역(1억4000만원)과 하남문화재단 홍보물 제작(5100만원)을 이석기 의원이 운영했던 CNP그룹에 맡긴 것을 두고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CNP그룹은 검찰로부터 ‘RO’의 재정 사업체로 지목된 회사다. 이에 대해 이 시장은 “지방계약법에 따라 조달청에 입찰 의뢰한 것으로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의혹 제기는 계속되고 있다. 새누리당 소속인 윤재군 시의원은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지원된 예산을 적법하게 사용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착복하거나 전용한 예산이 있느냐를 봐야 한다. 검찰에서도 지원의 적법성을 따지는 게 아니라 자금이 다른 곳으로 나간 게 있는지를 조사 중이다. CNP 쪽으로 흘러들어간 돈이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역 민심이 술렁이자 통합진보당은 물론 민주당도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내년 지방선거까지 논란이 지속될 경우 최악의 상황을 맞을 공산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주당 소속인 방미숙 시의원은 “새누리당이 선거 전략으로 이번 사태를 계속 물고 늘어질 것이다. 지역 민심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려는 것인데 우리도 나름으로 해결책을 찾아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교범 시장이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면서 통합진보당과 ‘선 긋기’를 시도한 것도 논란이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로 해석된다.

시의회 내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당초 새누리당에서 행정조사특위 구성을 요구했을 때 민주당은 일단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다. 총 7석 가운데 2석만 갖고 있는 새누리당으로서는 3석을 지닌 민주당의 협조가 없으면 특위 구성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최근 민주당이 찬성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행정조사특위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이 지역 민주당의 한 유력 인사는 특위 구성과 관련해 “주민들이 많이 원하고 있고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라서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이 9월24일 안소희 통합진보당 파주시의원의 자택과 시의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이번 사건이 경기 북부 지역으로 확대될지가 주목된다. 안 의원은 총 11명의 파주시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통합진보당 소속이다. 

국정원의 수사망이 안 의원에게 향한 것은 그가 이영춘 민주노총 고양·파주지부장의 부인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9월9일 국정원 조사를 받은 이 지부장은 ‘RO’의 핵심 조직원 중 한 명으로 의심받고 있다. 

경기 북부는 전통적으로 여당의 세가 강하다. 휴전선과 밀접한 지역 특성에 따라 안보 이슈에 민감한 곳이다. 하지만 현재 권력 지형은 상당히 달라졌다. 파주시의 경우 국회의원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의석 하나씩을 나눠 갖고 있지만 시장은 민주당 소속이다. 시의회는 총 11석 중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각각 5석인 가운데 통합진보당이 1석으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파주시보다 규모가 큰 고양시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은 민주당이 2석, 새누리당과 정의당이 각각 1석씩을 차지하고 있다. 여당 대 야당으로 나누면 1 대 3으로 야당 쪽으로 무게추가 훨씬 더 기운다. 시장 역시 민주당 소속이다. 시의회의 경우 총 29석 중 새누리당이 13석, 민주당이 12석, 정의당이 3석, 무소속이 1석이다. 새누리당이 제1당이기는 하지만 여당 대 야당으로 보면 13 대 15로 밀린다.

야당이 이처럼 경기 북부에서 입지를 확대할 수 있었던 데는 야권 연대 효과가 크게 한몫했다는 분석이 많다. 특히 고양시의 경우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야권 연대의 성공 모델로 주목을 받았다. 당초 한나라당의 승리가 점쳐졌지만 최성 현 시장이 야권 단일 후보로 선출되면서 전세를 뒤집었다. 지역 도의원 선거는 이보다 더 극적이었다. 야권 후보 단일화를 통해 한나라당과 일대일 대결 구도를 성사시켰고 결과는 8곳 전승이었다. 앞선 2006년 지방선거에서 시장은 물론 도의원 전원을 한나라당이 싹쓸이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진전이다.

고양시에는 아직까지 이번 사태의 여파가 직접적으로 닿고 있지는 않다. 다만 지난해 총선 이후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논란이 일었을 때 경기도의회가 CNP그룹의 계열사인 사회동향연구소에 연구 용역을 발주하는 과정에 통합진보당 소속인 송영주 건설교통위원장이 업체를 추천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연구 용역비는 1840만원이었다. 고양시지역위원장인 송 의원은 당시 “사회동향연구소는 인터뷰 관련 학술 용역으로 유명한 곳이어서 추천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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