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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퍼스트레이디, 주석궁을 흔들다

김정은 부인 리설주 스캔들로 뒤숭숭한 평양 진위 여부 따라 권력 핵심 흔들 수도

이영종│<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ㅣ 승인 2013.10.02(Wed) 11: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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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로동신문>과 조선중앙TV 등 관영 매체를 통해 공개되는 요사이 그의 표정은 무겁다. 평양의 대표적 스타디움인 ‘5월1일 경기장’을 방문한 소식을 담은 9월25일자 <로동신문> 1면에 실린 사진을 보면 김정은 조선로동당 제1비서는 뒷짐을 진 채 표정이 잔뜩 굳어 있다. 김정은에게 뭔가를 보라며 손짓하는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을 비롯한 간부들도 마찬가지다. 24일자에 실린 구강병원 건설장 방문 사진에서는 팽팽한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23일자 문수물놀이장 방문 때 옅은 웃음을 띤 표정이 게재된 게 마지막인 것 같다는 게 북한 정보를 분석하는 당국자들의 귀띔이다.

최근 김정은의 모습은 지난 9월15일 부인 리설주와 함께한 공개 활동 때의 밝은 얼굴과 비교해 확 달라졌다. 평양에서 열린 2013 아시안컵 및 아시아클럽 역도선수권대회를 관람하는 김정은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짧게 자른 머리에 결혼반지를 끼고 나온 리설주도 미소를 보이며 경기를 함께 지켜봤다. 그런데 추석 연휴를 지나면서 김정은의 얼굴 표정에 반전이 나타난 것이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공교롭게도 연휴가 끝나가던 9월21일자 일본 언론에 리설주의 스캔들이 터졌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북한 당국이 리설주 관련 추문을 은폐하기 위해 은하수관현악단과 왕재산예술단 단원 9명을 지난 8월 공개 처형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최근 탈북한 북한 고위 간부’의 말이라며, 이들 9명이 포르노물 제작과 관련돼 있고, 여기에 직접 출연했다는 얘기를 전했다.

문제는 리설주 관련 부분이다. 북한의 인민보안부가 이들에 대해 수사하는 과정에서 도청을 했는데 ‘리설주도 전에는 우리와 똑같이 놀았다’는 대화 내용이 감지됐다는 것이다. 김정은 제1비서는 이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걸 막기 위해 8월17일 9명을 체포했고, 재판도 거치지 않은 채 사흘 뒤 평양시 교외의 강건군관학교 연병장에서 노동당과 군부 고위 간부, 악단 관계자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 총살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처형된 9명의 가족들은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졌으며 두 악단은 해산됐다는 게 <아사히신문>의 보도내용이다.

   
김정은 북한 조선로동당 제1비서의 부인 리설주가 7월27일 전승절을 맞아 모란봉악단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
“리설주도 전엔 우리와 똑같이 놀았다”

북한은 이 보도에 대해 거칠게 반응했다. 조선중앙통신은 9월22일 문제의 기사를 거론하며 “괴뢰 패당이 어용 매체를 통해 우리의 최고 존엄을 비방 중상하는 모략적 악담질을 해대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튿날에는 “남조선 우익 보수 세력들이 우리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비방 중상하는 엄청난 대결 망동으로 민족 화해의 길을 차단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함부로 우리의 최고 존엄을 걸고 ‘인민적 지도자의 의미 부각’이 어쩌고저쩌고 횡설수설하면서 지어 그 무슨 ‘처형’을 떠들며 하늘을 향해 주먹질하는 추태를 부렸다”고 비난했다.

북한이 김정일과 김정은이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 ‘최고 존엄’ 운운하며 격앙된 반발을 보인 것은 이례적이다. 처형설과 관련한 대목을 직접 언급한 것도 놀랍다는 게 우리 당국자들의 지적이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에도 로열패밀리의 구성원과 관련한 비난 보도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대응에 나선 건 전례를 찾기 힘들다. 국내 일부 언론이 김정일의 첫 여자로 알려진 성혜림의 서방 망명설을 보도했을 때도 최고 존엄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대북 정보 분석가들은 김 제1비서가 이 문제에 직접 대응을 지시하고, 사태 진화에 나선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문제는 관련 소문이 당과 군부의 핵심 고위층 사이에 은밀하게 퍼지고,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사정에 밝은 한 대북 소식통은 “평양을 중심으로 리설주와 은하수관현악단 관련 추문이 은밀하게 퍼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북·중 국경 지역에서는 중국 등을 통해 리설주 관련 소식이 급속하게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8월 초부터 북한 예술단 관련 추문이 보도되고, 김정은의 내연녀라는 설이 있던 현송월 처형설까지 나와 어수선하던 차에 리설주 문제로까지 불길이 번져 걷잡을 수 없게 됐다는 관측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관영 매체를 통해 이 문제를 공론화함으로써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일반 주민들이 접할 수 없는 관영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반발하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관심을 부각시키는 부작용만 낳았다는 얘기다.

   
김정은 제1비서가 평양 릉라도 ‘5월1일 경기장’을 찾아 개·보수를 지시하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
리설주 스캔들로 이산가족 행사에까지 불똥

때마침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중단 등 남북 관계의 문을 닫아걸고 나서자 리설주 사태와 관련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를 내세워 이산가족 상봉 행사 연기를 주장했다. 또 유화 제스처에서 돌변해 박근혜정부를 향해 대남 비난의 포문을 다시 열었다. 그런데 조평통의 입장 발표가 나온 게 9월21일 오전 10시였다. <아사히신문>의 보도가 나온 직후 북한 성명이 나왔다는 점에서 김정은이 리설주 추문 보도에 격분해 대남 강경 입장으로 돌아섰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올 초 둘째 딸을 낳은 20대 퍼스트레이디 리설주의 스캔들 보도가 최근 유화 국면으로 치닫던 김정은의 대남 접근에까지 불똥을 튀게 했다는 것이다. 물론 오비이락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남북 관계 속도 조절에 리설주 관련 보도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점에 대북 전문가와 당국은 주목하고 있다.

리설주 사태는 가뜩이나 평양 핵심부에서 뒤숭숭한 분위기가 감지되는 상황에서 불거졌다. 북한이 외교관을 비롯한 외국 체류자 자녀의 귀국을 명령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9월20일자에서 재외 공관이나 국외 무역 기업 등에 근무하는 이들의 자녀를 1명만 남기고 9월 말까지 모두 북한으로 돌려보내라는 지시가 각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 통보됐다고 전했다. 중국에 유학 중이던 평양 인민보안부 간부의 딸이 최근 한국으로 탈북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라 고위층 대상 체제 단속에 나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리설주 추문설이 사실인지 여부는 즉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한 체제의 속성상 더 구체적인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거나 사실관계가 규명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미심쩍은 정황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문제로 지목된 은하수관현악단의 활동이 북한 매체에 두 달 넘게 공개되지 않고 있는 것도 의문이다. 김정일 시대 최고의 찬사를 받던 악단이 하루아침에 모습을 감춘 건 뭔가 중대한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다.

리설주 추문의 진실은 향후 그녀가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서 어느 정도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된다. 사안의 심각성으로 미뤄볼 때 김정은이 직접 보위부나 핵심 측근 세력을 동원해 감찰을 벌였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포르노물과의 연관설 등이 사실로 드러났다면 공개 활동 수행이 어려울 수 있다. 리설주 스캔들은 김정은 체제의 평양 권력 핵심을 뒤흔들 폭발성을 갖고 있다. 지난해 7월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한 북한의 퍼스트레이디 리설주가 건재할지, 아니면 북한 권력사에 또 한 명의 비운의 여인으로 기록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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