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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의 발자취 찾아 바이칼을 가다

소설 <유정>의 처연한 사랑 담긴 곳…한민족의 흔적 곳곳에 남아 있어

러시아 바이칼=심상기 본지 회장 ㅣ 승인 2013.10.02(Wed) 13:5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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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깨어서 창밖을 바라보니 얼음과 눈에 덮인 바이칼 호 위에는 새벽의 겨울 달이 비치어 있었소. 저 멀리 검푸르게 보이는 것이 채 얼어붙지 아니한 물이겠지요. 오늘 밤에 바람이 없고 기온이 내리면 그것마저 얼어붙을는지 모르지요. 벌써 살얼음이 잡혔는지도 모르지요. 아아 그 속은 얼마나 깊을까. 나는 바이칼의 물속이 관심이 되어서 못 견디겠소.”

이 글은 춘원 이광수(李光洙)가 소설 <유정(有情)>에서 표현한 바이칼 호 관찰기다. 소설 주인공의 눈을 통해 바라본 경관이 다소 비감하게 느껴진다.

<유정>에서는 중학교 교장 출신인 최석이 친구의 딸 남정임과 사랑에 빠지고, 서울에서 빠져나와 도피 행각 끝에 홀로 시베리아 눈 덮인 산야를 헤매다 종착지 바이칼 호반의 산장에서 죽어간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정임은 숨을 거둔 최석을 보고 자리를 뜨지 않는다. 두 사람의 정신적 사랑이 도달하는 영적 경계선은 결국 죽음이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소설 <유정>의 ‘바이칼’ 호수 ‘신’이 늘 뇌리에 남아 있던 터라 이번 여름휴가에는 친구들과 바이칼을 찾는 여행을 결행했다.

   
알혼 섬 호수 면에는 (러시아 혁명 후) 유형자들의 어로 활동 근거지가 남아 있다. ⓒ 심상기 제공
시베리아 달릴 땐 <닥터 지바고> 영상 떠올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이칼을 찾는 여행은 꽤 시일이 걸리는 일정이었다. 최근에는 인천-이르쿠츠크를 오가는 직행 일정이 가능해졌다. 몽골을 거치면 울란바토르에서 이르쿠츠크까지 비행기로 2시간 남짓 걸린다. 모스크바까지 가는 시베리아 철도의 중요 정차역이 있는 이르쿠츠크에서 자동차로 5시간가량 달려야 바이칼 호수에 이른다. 시베리아 특유의 숲과 나무와 야생화가 어우러진 길을 달리다 보면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는 영화 <닥터 지바고>의 영상이 떠오른다.

다시 ‘바이칼’ 호수 이야기-. <유정>에서의 바이칼 호수 마지막 기술이다. “인제 ‘바이칼’에 겨울의 석양이 비치었소. 눈 덮인 나지막한 산들이 지는 햇빛에 자주 빛을 발하고 있소. 극히 깨끗하고 싸늘한 광경이오. ‘아디유’.”

   
우리는 여름철에 관광버스를 타고 바이칼 호수까지 갔으나 <유정>

에서의 주인공은 눈 오는 겨울 이르쿠츠크에서 기차로 ‘F’ 역까지 갔고, 거기서 말이 끄는 썰매를 타고 바이칼 호수까지 갔다. 아마도 이 시기(1920년대?)에는 자동차가 등장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바이칼 호수 안에 있는 ‘알혼’ 섬을 찾아 들어갔다. 육지에서 사람과 화물, 자동차 등을 함께 실어 나르는 대형 연락선을 타고 약 15분쯤 후에 알혼 섬에 닿았다.

바이칼 호는 세계 2위의 넓이를 자랑하는 거대 담수호로, 깊은 곳은 수심이 1637m나 된다. 전 세계 인구가 20년간 마실 수 있는 물이 저장돼 있다는 설명이다. 겨울 한철엔 영하 30~32도까지 내려가 2~3m 두께의 얼음이 얼고 그 위로 차량이 자유롭게 오간다. 수십 m 바닥까지 들여다보일 정도로 물은 깨끗하다. 호수 안의 섬만 26개. 유일하게 사람이 살고 있는 알혼 섬 인구는 2000명. 고려인 4세가 한 사람 거주하고 있었으나 힘겨웠던지 근래에는 이르쿠츠크로 옮겨가 살고 있다고 한다. 어떤 이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고 했다.

일행 15명이 연락선에서 내린 후 사륜 구동 11인승 밴 2대에 나누어 타고 울툭불툭한 비포장도로를 한 시간쯤 달려 알혼 섬 중심 마을 ‘후지르’에 도착했다. 한국 이름인 것 같기도 한 ‘불함’ 또는 ‘부르함’ 바위가 신비스런 자태를 호수 면에 드러냈다.

아시아 대륙에 존재하는 아홉 곳 성소 중 하나이고 원주민 ‘코린 부랴트’ 족의 탄생 일화가 서려 있는 바위다. 한민족과 ‘부르함’ 바위는 아무 관련이 없는 듯하지만 이곳 토착 원주민의 샤머니즘과 우리나라 무속 신앙이 유사하고 전통 생활과 풍속이 동일하며 선녀와 나무꾼, 성황당, 돌무더기 등의 설화가 우리 문화의 뿌리와 밀접하다고 일부 학자들은 주장한다.

한국 무속인 200여 명이 이 바위를 둘러싸고 2002년 대회 겸 대축제를 가졌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의 주장을 들어보자.

“바이칼 호수는 한민족의 진원지이기 때문에 어머니와 같은 땅이다. 알혼 섬에서는 고구려의 조상인 북부여족과 동일한 화석과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고 지금도 바이칼 원주민과 한국인은 신체·용모·풍습이 유사하며 구분하기 어렵다.”

   
필자 부부가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부르함 바위 주변에 있는 장승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맨 위). 일부에서 한국 민속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는 ‘부르함 바위’(가운데). 몽골인들이 사는 천막집 ‘게르’(맨 아래). ⓒ 심상기 제공
“바이칼은 한민족의 어머니 같은 땅”

‘바이칼뷰’ 호텔. 1실 2인용 방 안에서는 멀리 바다 같은 호수 수면이 내다보인다. 섬 전체로는 숲이 반, 나무 없는 야산이 반이라고 할까? 움푹움푹 패인 모래 반, 황토 반의 비포장길을 사정없이 달리다 보면 더러 허리가 꺾이는 듯한 몸의 불균형을 맛봐야 한다. 호숫가 ‘뻬씨얀까’에는 1917년 러시아 혁명 후 끌려와 강제 노역을 했던 러시아 권력자들과 지식인 200여 명의 삶의 터전이 남아 있다. 수용소 건물은 1970년대에 불에 탔고 그들이 고기잡이를 했다는 부둣가 낚시터가 남아 있다. 바이칼 호에서 수심이 가장 깊다는 산봉우리 비탈에서 우리는 이른바 ‘시베리아 사냥꾼’식 점심을 먹었다. 관광객이 높은 절벽까지 트레킹을 즐기는 동안 두 대의 밴 기사가 세 발걸이로 받쳐진 쇠줄에 군용 냄비를 매달고 밑에서 장작불을 피워 쌀과 채소 등이 어우러진 밥죽을 만들어냈다. 두 기사는 숙달된 요리사였다. 바이칼 호수에서 잡혔다는 작은 생선이 죽 속에 섞여 있어 맛이 괜찮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산언덕 여기저기 관광객과 차들이 몰려 있고 비슷한 방식으로 점심 요리를 즐기고 있다. 점심 후 어느 친구는 부인에게 예쁜 야생화를 선물한답시고 절벽 바위틈에 끼어들었다가 꽃을 꺾는 찰나 발을 헛디뎌 100m 이상의 호수 면에 떨어질 뻔했다. 옆에 있던 사람이 급히 손을 뻗어 구조가 가능했다.

호텔 주변에서 벌어진 둘째 날의 ‘캠프파이어’는 별 기대를 안 했으나 인상에 남는 밤이 됐다. 우리 옆 캠프파이어장에서는 유럽인 20여 명이 보드카를 마시며 시끌벅적했다. 클라이맥스는 우리 쪽에서 깃발을 올렸다. 일행 중 변호사 부인 한 분이 깜짝할 사이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나와 공옥진 스타일의 곱사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입속에는 젓가락 쪼가리를 넣어 비스듬히 찢어진 바보입이 돼 있었다. 까만 점박이 이도 드러났다. 요란한 박수와 웃음, 노래가 어우러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분이 춤을 추며 20m 떨어진 외국인 ‘파티장’으로 옮겨가 무대를 장악해버렸다.

외국인들의 환성이 터져 나왔다. 우리보다 먼저 와 술판을 차렸던 그들이 모두 일어났다. 그 가운데 남녀 너덧이 뛰쳐나와 곱사춤을 흉내 내며 함께 어울렸다. 무대와 관객이 완전히 혼연일체가 돼버렸다. 들판 난로에서는 장작 불꽃이 솟아올랐다. 하늘에서는 또렷한 별들이 춤을 추었다. 바이칼 호반의 굿판은 1시간 이상 이어졌다. 너무 많이 웃어서 배꼽이 찢어질 뻔했다.

앞에서 언급한 부르함 바위와 바이칼 호수는 한민족의 시원인가. 나의 상식으로는 전혀 납득도 되지 않았고 그에 대한 전문 지식도 없다. 단재 신채호, 육당 최남선을 비롯한 일부 사학자들은 우리 겨레의 얼의 진원지요, 우리 민족문화의 발상지요, 조상들의 활동 무대로 가장 유력시되는 곳이 바로 바이칼 호수 지역이라고 주장한다. 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우리 선조들은 서시베리아에서 동시베리아, 태평양이 있는 동쪽으로 이주해왔다. 바이칼 호수가 있는 곳이 바로 시베리아이며 조선·부여·고구려·거란·발해 그리고 여진·몽골 등은 이 시베리아에 역사적 태반을 두고 있다고 한다. 최남선의 저서 <불함(不咸·Parkan)문화론>도 한몫하는 듯하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바이칼 호수 인근 지역인 ‘브리야트’에는 ‘쿠리칸’ 부족이 자리를 잡고 있고, 브리야트는 6세기에서 10세기까지 몽골 지배를 받았다. 쿠리칸 부족의 브리야트 자치공화국에 김정일도 방문해 정상회담을 가졌다고 한다. 이들보다도 한민족과 더 유사한 종족이 ‘에벤키’ 족. 브리야트나 에벤키 족은 DNA 조사를 하면 한민족과 가장 닮았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선조들이 빙하기 이후 초지가 생성된 시베리아를 거쳐 만주·부여 쪽으로 이동했다는 통설이 있다고 한다.

이런 민간 통설을 뒷받침할 문헌이나 기록은 없으나 지금도 우리의 아리랑 스리랑과 비슷한 가락이 전래 민요로 이어져오고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한민족 시원론은 학자들의 몫으로 넘긴다.

‘아리랑’과 비슷한 가락 이어져와

우리는 다시 이르쿠츠크로 되돌아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실제 모델이라는 발코시키의 집을 방문했다. 바이칼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앙가라’ 강 주변도 산책했다.

우리나라 전주 크기로 인구 70만명의 시베리아 중심 도시가 이르쿠츠크다. 이곳에는 귀화한 사람까지 합쳐 고려인이 100여 명 살고 있다. 고려인 중에서는 부자 2대에 걸쳐 국회의원도 나와 현재도 의원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바이칼 여행에서 흠을 잡아낸다면 알혼 섬에서 아침 6시에 일어나 조식, 중간 점심, 이르쿠츠크 도착, 관광, 저녁 식사, 관광, 그러고 나서 다음 날 새벽 2시 공항 도착, 3시 넘어서 출발이라는 거의 24시간에 가까운 강행군이다. 너무 무리한 일정이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 3시간 반 만에 도착했던 울란바토르와 하룻밤을 잔 둥그런 천막 ‘게르’가 몽골의 여행 일정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몽골에서 배운 역사 상식 하나-.

칭기즈 칸이 1211년부터 1227년까지 16년에 걸쳐 정복한 나라는 모두 40개국. 1만2000개의 도시가 잿더미가 됐다. 그 후 원나라가 고려의 힘을 빌려 일본 정벌에 나섰을 때는 첫 번째(1271년)가 900척 선박과 4만명의 군대, 두 번째(1281년)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인 4400척과 14만명의 군대가 동원됐다. 몽골의 고려 침략 때는 고려인 인구 중 19%가 희생됐다. 역시 전쟁은 참혹하며 패자는 굴종과 죽음의 계곡을 넘나든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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