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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박근혜’ 기운 여의도에 꿈틀댄다

김무성·유승민·김문수 독자 세력화 움직임 청와대 일방통행에 새누리당 불만 고조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ㅣ 승인 2013.10.08(Tue) 10: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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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한 주 앞둔 무렵이었다. 진영 장관께서 (보건복지부) 간부들을 모아놓고 크게 언성을 높이며 불같이 화를 내셨다. 당시 내가 장관께 급히 보고할 게 있어 방을 찾았다가 밖에까지 들리는 장관의 호통 소리를 듣고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좀처럼 큰 목소리를 낸 적이 없던 장관이었다. 그로부터 약 열흘 후 언론에서 장관 사퇴 의사 표명 보도가 나왔다.” 보건복지부의 한 과장이 전한 말이다.

청와대와 핵심 친박계 내부에서는 진영 전 보건복지부장관의 사퇴를 ‘항명’으로 표현했지만, 부처 주변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장관을 무시하는 듯한 청와대의 일방통행으로 사실상 무기력해진 진 전 장관으로서는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당시는 정부 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기초연금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성안 작업이 막바지를 향해가던 때였다. 알려진 것처럼 진 전 장관은 재정 형편상 기초연금 공약의 후퇴가 불가피하더라도 이를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대신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방안을 선호했다. 하지만 정부의 최종안은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방안이었고, 이는 청와대 참모진이 밀어붙인 결과였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9월30일 이임식을 마친 후 차에 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진 전 장관의 사퇴 파동은 청와대와 새누리당 안팎에 적잖은 파장을 낳았다. 무엇보다 친박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한 영남권 중진 의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 세종시 수정안을 지지하며 ‘탈박(脫朴)’했던 배신자를 박 대통령이 다시 보듬었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며 “(진 전 장관은)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이라고 분개했다.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공식 회의 석상에서 “박 대통령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무성·김문수 등 ‘반박’의 롤 모델은 박근혜

그런데 당 안팎에선 진 전 장관의 사퇴를 둘러싼 논란이 ‘반박(反朴)’ 움직임으로 번질 가능성에 주목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단순히 진 전 장관 개인의 항명 수준으로만 볼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김기춘 비서실장 기용과 홍사덕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 상임의장 선임,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의 10월 경기 화성갑 재보선 공천을 거론한 뒤 “박 대통령이 노회한 친위부대를 앞세워 청와대 직할 통치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 이렇게 가면 겉으로는 일사불란해 보일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내에선 이미 반박 움직임이 일정하게 형성돼 있다. 차기 당권에 이어 대권 도전설까지 나오고 있는 김무성 의원이 대표적이다. 잠재적 대권 후보로 꼽히는 정몽준 의원과 비주류로 전락한 친이계의 좌장 이재오 의원, 차기 대권 도전을 위해 내년에 도지사 3선 도전을 포기한 김문수 경기도지사, 한때 친박계의 황태자로 불렸던 유승민 의원, 수도권 맹주를 자처하는 남경필 의원 등도 마찬가지다. 진 전 장관 역시 당 안팎에서 유력한 내년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됐던 차기 주자 중 한 명이다.

아직은 누구 하나 명시적으로 반박을 기치로 내걸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들은 상황이 변하거나, 혹은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의식적으로 반박 기류를 형성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당 안팎에서 일정한 지지세를 확보하고 있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박 대통령의 직할 통치 강화는 곧바로 자신들의 영향력 확대와 상충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아이러니컬한 건 이들의 롤 모델이 다름 아닌 박 대통령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이명박 정부 내내 ‘반이(反李)’ 전선의 최선두에 서 있었다. 지난 5년간 집권 세력 내부에 있으면서도 청와대와 끊임없이 긴장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일반적인 여야 프레임을 깼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 수행 지지도가 10%대로 추락했을 때조차 박 대통령에 대한 대선 후보 지지도는 40%를 훌쩍 넘었을 정도다.

여기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박 대통령의 경우 언제든 자신을 지지해줄 25% 안팎의 ‘절대 지지층’이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잠재적인 반박 인사들 중 어느 누구도 이 조건을 충족시킨 이는 없다. 집권 첫해라고는 하나 국정 전반에 걸쳐 청와대의 일방통행이 강화되는 데 대해 비판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진 전 장관 사태 외엔 이렇다 할 만한 내부 반발이 없는 건 이 때문이다.

이 점에서 김무성 의원의 행보는 단연 눈길을 끈다. 그는 최근 ‘역사교실’이란 의원 모임을 만들었는데, 이름을 올린 현역 의원 수가 무려 100여 명이나 된다. 김 의원은 역사교실 창립식에서 “좌파와의 역사 전쟁을 승리로 이끌자”더니, 친일·독재 미화 논란을 빚은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적극 옹호하면서 논쟁의 중심에 섰다. 얼마 전에는 강력한 공권력 집행을 주장하며 시위대를 국가 전복 세력으로 규정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러한 좌충우돌에 대해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다소 극단적이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고정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다면 실보다는 득이 많은 것 아니겠느냐”고 속내를 드러냈다.

   
ⓒ 시사저널 박은숙·시사저널 포토
지방선거 결과 따라 반박 기류 확산될 수도

새누리당 내에선 김 의원만큼이나 유승민 의원을 주목하는 이가 많다. 두 의원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뚜렷하다. 우선 김 의원이 한때 친박계 좌장이었던 것처럼 유 의원도 출발은 친박계 핵심 브레인이었다. 두 사람 모두 박 대통령과 주종 관계 대신 동지 관계를 맺으려 했고, 이 때문에 박 대통령과 소원해졌다. 여전히 넓은 의미의 친박계에 포함되지만 가신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 정치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두 의원은 비슷한 지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정치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김 의원은 보스 기질을 무기로 활발한 외부 활동을 통해 세를 모아가고 있다. 그는 역사교실 외에도 사회복지와 남북 관계를 주제로 한 각각의 의원 모임을 추가로 구상하고 있다. 이미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해 부산시장·경남도지사 등의 후보를 자체 물색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반면 유 의원은 실력과 합리성으로 승부하는 정치인이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통이면서 상당수 야당 의원들과도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꼽힌다. 이 때문에 그가 나서서 조직을 만들진 않지만 출신지인 대구·경북권과 함께 수도권 당원들의 지지세가 강하다. 당내에선 내년 전당대회의 당권 경쟁은 김 의원과 유 의원 간 2파전이 될 것이란 예상이 꽤 있다.

반박 움직임이 표면화하는 시기는 내년 지방선거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사 파문이 끊이지 않는 데다 복지와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대선 공약 파기 논란이 점차 커지고 있지만,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가 60% 안팎인 상황에서 여당 인사가 박 대통령과 곧바로 각을 세우고 나서기는 쉽지 않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론이 언제까지 고공비행할지 단언하긴 어렵지만 지방선거가 임박할수록 다시 여야 간 일대일 대결 구도 양상이 나타날 공산이 크다”며 “내년 지방선거가 집권 2년 차에 치러지는 전국 선거라는 점에서 그 결과에 따라 여권 내부가 본격적인 갈등과 경쟁 국면으로 돌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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