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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외 자식은 죄인이 아니다

TV 드라마, 삐뚤어진 성격과 행동 묘사에 치중

김헌식│문화평론가 ㅣ 승인 2013.10.08(Tue) 14: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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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 자식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이런 가운데 드라마에도 혼외 자식이 곧잘 등장하고 있다. 드라마에 사회적 맥락과 문화 심리가 투영되고 있는 셈이다. 도덕적인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혹여 그들의 인권침해와 차별적인 담론이 횡행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얼마 전 종영된 KBS 2TV 주말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은 초반부터 주인공 이순신(아이유 분)의 출생의 비밀이 핵심이었다. 극 중 김정애(고두심 분)는 업둥이인 이순신의 아버지가 남편 이창훈(정동환 분)이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이순신이 남편의 혼외 자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KBS <힘내요, 미스터 김!>에서 홍해숙은 남편 백재상(이정길 분)과의 사이에 아이가 없어 백건욱을 입양하지만 백건욱이 백재상의 혼외 자식이라는 사실을 알고 배신감에 빠진다. 홍해숙은 남편은 물론 백건욱에 대해서도 싸늘한 감정을 갖게 되고 그를 외국으로 보낸다.

MBC <오자룡이 간다>에서 아내 나진주(서현진 분)가 아이를 못 낳아 입양을 결정하자, 남편 진용석(진태현 분)이 김마리(유호린 분)와의 사이에 혼외로 낳은 자식 솔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한다. 진용석은 김마리의 강력한 반대에도 끝내 숨겨둔 아들을 입양한다.

SBS <결혼의 여신>에서는 홍혜정(이태란 분)이 남편 강태진(김정태 분)의 내연녀들을 찾아다니는데, 대기업 회장의 아들인 강태진은 여배우, 레이싱모델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미술교사와도 불륜을 벌인 파렴치한으로 그려졌다. 여배우 장희경(박탐희 분)이 혼자 키우는 딸 다인은 강태진과의 불륜으로 낳은 아이다.

   
ⓒ KBS·SBS·MBC 제공

SBS <열애>에서는 강무신(전광렬 분)이 내연녀 홍난초(황신혜 분)와 숨겨둔 아들 홍수혁(여의주 분)을 두고 있다.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아는 홍수혁은 자꾸 엇나가서 어머니 홍난초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홍수혁은 홍난초에게 “아버지가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신성그룹의 양태신 회장(주현 분)은 사위인 강무신이 다른 여자와 혼외 자식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영 승계를 파기한다. 그런데 드라마 속에서 이런 캐릭터들은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조롱·차별·모욕의 대상 돼서는 곤란

혼외 자식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배우자 외의 다른 이성과 정사를 벌인 증거라는 사실이다. 사회 통념상으로 ‘불륜’이 문제시된다. 간통죄 등의 법리는 물론, 배우자에 대한 신뢰와 성실 의무에 비추어서도 불륜은 옳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혼외 자식이 조롱과 차별, 모욕의 대상이 돼서는 곤란하다.

일단 혼외 자식은 TV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못한다. 대개 조연이고 삐뚤어진 행동과 성격을 보인다.

혼외 자식은 어떤 특정인이 매우 나쁜 사람임을 드러내는 용도가 되기도 한다. 아울러 매우 고통받는 주인공을 부각시키는 수단으로 쓰일 때도 있다. <결혼의 여신>에서 강태진은 능력도 없으면서 아버지의 부유함에 기대 방탕한 생활을 하는데, 혼외 자식은 그 상징이다. 강태진에게 혼외 자식은 세상에 드러내지 말아야 할 존재가 되고, 거꾸로 강태진의 아내는 혼외 자식을 남편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수단으로 띄운다.

혼외 자식이 떳떳한 주인공인 곳은 사극이다. 드라마 <구암 허준>에서 허준은 기생 어머니를 두어 좌절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지만 끝내는 최고의 의원이 된다. 이런 캐릭터의 모델은 홍길동이다. 그는 혼외 자식이지만 엄연히 주인공이다. 전통 사회에서는 혼외 자식들이 신분제에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에 사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혼외 자식은 존재를 인정받기가 더 힘들어졌다. 강력한 일부일처제에서 오히려 혼외 자식의 존재를 더욱 근본적으로 은폐하고, 존재 가치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윤리적 흠결의 증거가 혼외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아 미성숙의 유아로 나오거나 사물화되기 일쑤다. 전체적으로 혼외 자식의 현실은 잘 나오지 않고, 나와도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그들은 분풀이하듯 욕망의 화신이 되거나 악당·악녀로 변해 착한 주인공들을 괴롭힌다. 이런 묘사는 왜곡된 인식을 낳는다. 사회에 이런 편견이 있다면 혼외 출생을 숨기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심지어 미혼모의 낙태를 당연시하는 풍토를 만들 수 있다.

혼외정사는 죄가 돼도 혼외 자식들이 죄인은 아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 없다. 혼외 자식 딱지로 고통받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해친다. 픽션이나 현실에서나 그들의 존재를 어떤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나쁘다. 특히 혼외 자식의 사생활이나 개인정보의 무차별적 공개는 인권유린이다. 더구나 그들의 존재 이유가 누군가를 파멸시킬 때만 유효하다면, 이보다 더 인간 존재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혼외 자식 둘러싼 갈등 부각에 골몰

혼외 자식의 존재는 일부일처제 안에서 존립 토대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불안감으로 자리 잡는다. 욕망이 큰 혼외 자식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기득권을 뺏어갈지 모른다는 불안이 그것이다. SBS <열애>에서 홍난초와 그의 아들이 이를 잘 말해준다.

혼외 자식이 나오는 드라마의 배경은 대개 재벌가나 부유한 가정이다. 그들이 삐뚤어진 성격의 소유자인 것 역시 그들을 악인으로 그려야 상대적으로 혼인 가정이 더 낫다는 것을 역설해주기 때문인 듯하다.

우리 사회에는 엄연히 혼외 자식으로 태어난 이들이 있다. 그들은 항상 존재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고 있다. 언론 매체에 오르내리는 혼외 자식에 대한 무분별한 이미지와 담론은 한 사회의 구성원인 그들에게 상처를 준다. 그 상처는 그들을 인생의 나락으로 빠뜨릴 수 있고 전체 구성원들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안겨다줄 수도 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출생을 딛고 성공해가는 내용을 담은 드라마가 더 많아져야 한다. 사극만도 못한 현대극이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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