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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김정일 ‘음원 파일’ 판도라 상자 열리나

‘NLL 포기 발언’ ‘대화록 삭제 지시’ 등 남북 정상회담 4대 핵심 쟁점

조해수 기자 ㅣ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3.10.16(Wed) 13:4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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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이다. 지난해 10월8일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에 의해 제기된 ‘노무현 전 대통령 NLL 포기 발언’ 의혹 이후, 여야는 1년째 진흙탕에서 한 발자국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빠져나오기는커녕 서로를 물고 늘어지며 제 발로 진흙탕 한가운데로 더 들어갔다. 사생결단을 내기 전까지는 싸움을 멈추지 않을 모양새다.

이전투구의 손익계산서를 들여다보면, 현재까지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는 쪽은 야당이다. 민주당은 대화록 정국이 조성된 후 번번이 새누리당에 주도권을 내주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왔다. 내분도 격화됐다. 예상치 못했던 ‘대화록 실종’ 사태가 터지면서 ‘친노’(親盧)와 ‘비노’(非盧) 간의 갈등이 폭발했다. 대화록 정국이 장기화하면서 NLL 포기 논란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을 경우, 박근혜정부의 중간 평가 성격을 띤 내년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선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게 야권의 전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2차 회의를 마친 후 웃고 있다. ⓒ 청와대 제공·시사저널 전영기
여당, 연일 “음원 파일 공개하자” 공세

대화록 정국은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사태의 본질은 의외로 간단하다. 당초 새누리당 주장대로 과연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실제 존재하는가 여부가 최대 쟁점이다. 그다음은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 과연 삭제 지시가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이 두 가지가 최대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 외에도 대화록이 사전에 여당에 유출됐는지 여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대화록을 국가기록원에 이관하지 않은 이유도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4대 핵심 쟁점에 대한 의혹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검찰 수사뿐이다. 그런데 칼자루를 새누리당이 쥐고 있다.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권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국가기록원에 이관하지 않았으며, 대화록 초본이 이지원에 등재된 후 ‘삭제’됐다”는 검찰 발표를 근거 삼아 대화록 폐기의 책임을 친노, 나아가 민주당에 따져 묻겠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권이 대북 굴종 발언, NLL 포기 발언과 같은 민감한 내용을 숨기고자 대화록 초본을 삭제한 뒤 국가기록원에 넘기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밝혀내기 위해 새누리당이 꺼내든 승부수가 국정원에 보관된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음원 파일 공개다. 국정원에 보관된 대화록 사본과 음원 파일을 대조해보면 명백히 밝혀질 일이라는 것이다. 양국 정상 간의 대화록도 모자라 녹음 파일까지 공개할 경우 미칠 수 있는 외교적 파장쯤은 안중에도 없다는 투다.

   
정치 공방 부추기는 검찰의 애매한 표현

코너에 몰린 민주당으로서는 반격 카드가 마땅치 않다. 민주당은 일단 ‘정쟁 중단’과 ‘민생 정치’를 촉구하며 한 발짝 물러서는 모양새다.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에 이관되지 않은 이유와 대화록 초본 삭제 논란은 정치권에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사안”이라는 것이 민주당의 입장이다. 민주당이 음원 파일 공개를 반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NLL 포기 발언 의혹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처하고 있다. 민주당의 입장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대화록은 있고, NLL 포기 발언은 없다”는 것이다.

“(대화록) 초본과 수정본 내용은 별 차이가 없다. 단, 의미 있는 차이는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10월2일 ‘대화록 실종’ 중간 수사를 발표하며 언뜻 이해하기 힘든 말을 남겼다. 현재 여권과 보수 진영의 공세는 모두 이 ‘의미 있는 차이’라는 검찰의 애매모호한 말에서 비롯되고 있다. 처음에는 노 전 대통령의 ‘저자세 표현’이 문제가 됐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대화에서 자신을 ‘저는~’, ‘제가~’ 등으로 표현했고, 김 위원장을 부를 때 ‘~님’ 자를 붙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대화록 최종본에서 모두 수정됐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이와 같은 내용이 별로 반향을 못 얻자, 한동안 잠잠했던 NLL 포기 발언 의혹을 다시 꺼내들었다. 새누리당은 이미 공개된 국정원본에 나와 있는 ‘NLL 말만 나오면 막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다. NLL이라는 것이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 돼 있다’ 같은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삭제된 대화록 초본에는 “(노 전 대통령의) 더 심한 발언이 들어 있다. 사실상 NLL 포기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언론 보도도 뒤따랐다.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는 “삭제된 부분 중엔 ‘미국은 우리 민족의 공동의 적이다’라는 노 전 대통령의 말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즉흥적 발언이 나중에 문제가 되겠다 싶어 심한 부분을 빼도록 했다”는 한 관계자의 증언을 방영하기도 했다. TV조선 측은 이 관계자를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측근이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쯤 되자 새누리당은 대화록 음원 공개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한 대통령기록물 열람과 달리 국정원 음원은 여야 합의가 없어도 공개할 수 있다는 게 새누리당의 주장이다.

   
참여정부 관계자들은 대화록 삭제와 관련해 “표제만 삭제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참여정부 관계자들은 대화록 삭제와 관련해 “표제만 삭제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새누리당이 이처럼 거칠 것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지금의 ‘대화록 실종’ 정국에서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공개된 대화록 내용만으로 NLL 포기 논란을 이어온 새누리당이다. 음원 파일에 명백한 NLL 포기 발언이 없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야당을 궁지에 빠뜨릴 수 있다. 이 논란을 내년 6~7월 선거까지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는 게 여당의 노림수다. 북한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바람 잘 날 없는 ‘북풍(北風)’의 덕을 여당은 톡톡히 누리고 있다. 새누리당으로서는 NLL 포기 논란이 표심을 끌어오기에 더할 나위 없는 ‘효자’인 셈이다.

새누리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쥐고 있는 또 하나의 무기가 있다. 바로 ‘대화록 삭제를 지시한 인물이 누구냐’는 의혹 제기다. 이 또한 NLL 포기 발언 논란만큼 만만치 않은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공식적인 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이미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삭제를 지시한 것 아니냐”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동아일보>는 10월10일 ‘노 전 대통령이 2008년 1월 청와대 회의에서 “안 좋은 이야기, 불리한 거는 지정물로 묶자”는 말을 한 사실을 검찰이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새누리당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또 하나의 타깃은 바로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다.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회의록 작성과 보관·이관의 총책임자였던 문 의원이 대화록 실종에 대한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대화록 공개를 처음 제기한 당사자로서 정치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새누리당의 주장이다. 문 의원은 “검찰은 정치를 하지 말고 수사를 하라. (검찰은) 대화록 최종본이 국가기록원에는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밝히는 데 노력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죄 없는 실무자들을 소환해 괴롭히지 말고, 나를 소환하라”고 전에 없이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지금 문 의원의 처지가 얼마나 절박한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민주당과 검찰 사이 파고든 ‘한랭전선’ 


   
검찰이 ‘대화록 삭제’를 발표한 10월2일, 김관영 민주당 수석 대변인이 당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한동안 온난전선이 형성됐던 민주당과 검찰의 기류가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퇴 이후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 ‘대화록 실종’으로 수세에 몰린 민주당은 국정원에 보관된 음원 파일 공개를 반대하며,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자”는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민주당의 반격 카드는 별로 없어 보인다. 그나마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의혹에 대해서는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0월9일 국방부가 전해철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열린 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앞두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존중 및 준수(수호)’ ‘NLL 기준 등면적 원칙으로 공동어로수역 설정’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갖고 회담에 임하도록 승인했다. 또한 노무현 정부 시절 국방부장관을 역임한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노 전 대통령이 NLL 문제와 관련해 (회담을) 소신껏 하고 오라고 말했고, 그 결과 NLL을 지킬 수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초 폐기 논란으로 인한 ‘노무현 정부-문재인 책임론’에 대해서는 대화록 사전 유출에 대한 ‘이명박근혜 정부-김무성 책임론’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여당이 사전에 입수해서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대선 때 유세장에서 낭독했던 대화록을 이제 와서 실종됐다고 말한다면 도대체 그 대화록은 무엇이었느냐”며 대화록 사전 유출에 대한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모호한 발표로 대화록 폐기 논란에 불씨를 당긴 검찰에 대해서는 “이지원에서 삭제됐다 복구한 대화록 초본을 공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초안의 성격은 대화록 폐기 논란의 핵심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검찰은 “초안이 원안에 더 가까운 완성본”이며 “(이 초안이) 이관이 안 됐으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 삭제가 됐다면 문제가 더 크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에서는 “초안은 최종본과 동일한 내용이다. 따라서 중복을 피하기 위해 제목 등의 표제부만 삭제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초안과 최종본의 면밀한 대조가 필요하다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다. 만약 둘 사이에 차이점이 없다면, 새누리당이 주장하고 있는 ‘대화록 폐기’ 논란은 애초부터 성립되지 않는다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다. 하지만 검찰이 “대화록 초본 공개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민주당과 검찰 사이에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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